▲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교전 중인 남북한 해군 함정ⓒ연합뉴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오전 4시. 김일성으로부터 암호명 '폭풍'을 하달 받은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기습 남침을 감행했다. 일요일이라 전방군인 3분의1이 휴가 등으로 병영을 떠난 상황이었다. 철저하게 계산된 기습공격이었다.
그로부터 52년이 지난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나흘 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달성으로 대한민국이 붉게 물들었던 이날, 연평도 NLL(북방한계선)을 넘은 북한 경비정들이 대한민국 해군 함정을 향해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또 한 번 비겁한 기습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상황에서도 대한민국 해군 장병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NLL을 사수하고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기꺼이 바치며 장렬하게 싸웠다.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 357호'는 교전 후 예인 중 침몰했고, 승무원 중 6명이 사망, 19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우리의 소중한 아들인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조천형 중사, 박동혁 병장이 전사했다.
우리 군의 피해가 컸던 가장 큰 원인은 북한의 기습공격도 이유였지만, 당시 정부가 정한 이해할 수 없는 교전수칙 때문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북한과의 친선관계를 유기지하기 위해 북한이 먼저 공격해야만 반격을 할 수 있는 교전수칙을 하달했던 것이다.
2002년 6월 30일. 애꿎은 우리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다 희생당했음에도 김대중 정부는 산화한 애국장병들과 그 유족들을 외면하고 오로지 북한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유족들을 찾아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손을 잡아주긴커녕 일본으로 출국, 일본국왕 내외와 함께 월드컵 결승 경기를 관람했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서 본분을 망각한 행동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이런 정부에서 전사자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질리 만무했다. 법적 근거 미비를 이유로 '전사'와 '순직'을 구분하지 않고 단순히 '공무상 사망자 사망보상금'으로 일괄 적용, 본인 보수월액의 36배만 지급했다. 고(故)박동혁 병장은 약 3,000만 원, 윤영하 소령은 약 6,500만 원을 각각 보상받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1. 대통령 선거전 노무현대통령이 특산품 들고 위문간적은 있음 공식행사는 아니고
2. 상기기사외 금액은 국가가 낸것이 아니라 국민성금으로 보상된것, 정부차원이라 볼수없음
3. 국가보훈처 승격도 2014년 새누리당이 승격시킬려는 움직임외 김대중 노무현 정부 관심없었음
4. 일본 은 비행기로 두시간거리인데 영결식 불참석한 대통령은 이점은 비판받아야 마땅
5. nll 포기선언 , 국제회의에서 북한입장 한시간 이상 대변 ( 본인이 한말 ) 한 모 대통령은 연평해전은 관심밖인건 자명한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