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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8 14: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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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다녀오고 학교 졸업하고 나서 백수로 지내고 있는데 같은 과 여자애가 전화 옴.
분명히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애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했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여자 전화라 반갑게 받음.
반갑고-뭐하고지내-응나는어디서일하는데돈많이줘-회사에서그렇지않아도어머나사람이필요하다네하루와서들어볼래-콜
정도의 과정을 거쳐서 여자애 소개로 거길 감.
딱 들어가서 첫 교육을 받는데 네트워크마케팅? 새끼까면 새끼까는대로 돈 줘? 선진 영업기법? 우와! 다단계네!!
하지만 사회생활도 제대로 안 해본 초짜 마인드는 그들의 교육을 큰 비판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곧 대단한 절망에 빠져들게 됨.
그들이 말하는 것의 반절이라도 하려면 완전 영업의 신이 되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함.
나는 엄청난 I 형 성격이라 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하지만 교육의 효과로 하고는 싶음! 그치만 내 능력으로는 소용없어!
딜레마에 빠져 아노미 상태로 괴로워하며 소리쳐주고 고개끄덕여주고 맞장구 쳐줘가며 있다보니 가르치는 사람도 얘는 넘어왔구나 생각된모양임.
저녁때 밥 사먹여주고 집에 들여 보내주데?? 내일 아침에 또 나오라고.
집에 가서 안티피라미드 닷컴 검색해보니 당연히 불법피라미드업체로 딱 나옴.
바로 여자애한테 전화해서 수줍은 목소리로 따지려고, '야 거기 피라... ' 까지만 말을 꺼냈는데 '싫으면 하지마!!! '하면서 전화를 끊데?
그렇게 감명깊은 전화 매너는 또 오랜만이라서 상쾌한 마음으로 다른 동기, 후배, 선배들에게 전화를 돌려 그 여자애 근황을 전할 수 있었음.
여자애들 대부분은 '어머, 오빠한테도 전화 왔어요? 걔 안돼겠네.' 라는 반응이었던 걸로 보아 학교 아는 사람한테 전화 많이 돌렸던 모양임.
지금은 뭐하고 살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