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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0 21: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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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 모녀를 욕하지 못하겠습니다. 같은 건으로 계속 신고가 들어오고 있다는 경찰의 말이 사실이라면 목격자가 저 모녀만이 아닌데 그 나머지 목격자들도 모두 아무 대응도 못 하고 있다는 거니까요. 그 중에 저 모녀만큼 시답잖은 이유로 신고만 해 놓고 방관하는 사람도 있었을 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모녀만을 비난해도 괜찮은 건지 자신이 없어집니다. 게다가 사내가 칼을 들고 있었고 돕겠다고 나선 성인 남성이 두 명이나 도망갈 정도였는데, 아버지를 깨워서 내보냈다가 해외여행을 포기해야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의 목숨이 위험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 모녀가 '당장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그깟 해외여행 따위 포기하면 어때'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자신들 혹은 자기 가족이 그 이상의 피해를 입지 않는 선에서 여자를 적극적으로 돕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보인다는 겁니다.
경찰이 올 때까지 실랑이만 좀 해 주면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데 그 실랑이 하느라 해외여행을 포기하기 싫다고 모르는 척한 사람에게는 누구라도 분노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도와 주러 보냈다가 시간 좀 날리는 정도가 아니라 피를 보거나 목숨이 날아갈 상황이라면, 결국 도와주지 못했다는 건 마찬가지인데 아버지가 위험에 처할까 봐 못 보낸 사람은 괜찮고 해외여행을 못 가게 될까 봐 안 보낸 사람은 비난받는 게 맞는 걸까요? 누구도 선뜻 도우러 나서고 싶지 않을 상황에서, 하필이면 나머지 목격자들에게는 없었던 해외여행이라는 '목숨보다 훨씬 덜 중요하고 포기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이 많은 목격자들 중 그 가족만은 나섰어야 할 이유가 되는 걸까요? 갑자기 어려운 문제가 주어진 기분입니다.
참, 경찰을 무사태평하게 묘사한 건 독자의 분노를 더 강하게 하기 위한 장치인가요, 혹은 경찰도 나쁜 놈이니 방관하는 모녀만 욕할 일은 아니라는 의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