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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1: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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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광장 동쪽에는 하늘까지 닿을 듯 까마득한 높이의 첨탑을 끼고있는 성당이 있었다. 성당의 그림자는 광장의 사람들을 감싸 안고 있었다. 그림자 속에서 약간은 상기된 표정의 남성들은 광장을 중심으로 둘러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외곽에는 여성들이 아이들과 함께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여성들은 그들의 남편으로 보이는 자를 노려보고 있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광장에는 용감한 기사를 위한 노래를 부르는 시인도 있었다.
"오 찬란한 태양의 기사여, 오 신실한 왕의 기사여. 그 빛나는 마음으로 사악한 마녀의 음험한 저주를 이겨내고 그 강직한 마음으로 진실된 사랑을 찾은 기사여. 오오 그 누굴 이기지 못할 소냐, 그대는 태양의 기사인 것을. 오오 그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소냐, 그대는 왕의 기사인 것을."
시인의 노래에 맞춰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그 기사를 찬양하였다. 어느덧 성당의 그림자가 광장을 가리지 못하자 성당의 종이 울렸다.
댕-댕댕-댕-
"요 며칠간 종지기가 사라져서 종을 안치더니, 오늘은 종을 치는군."
사람들은 오랜만에 들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며 그와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종치기가 끝날 무렵, 사람들은 한 무리의 병사들을 위해 길을 터주기 시작하였다. 그 안에는 눈부신 갑옷을 입고 말을 타고 있는 기사와 그를 따라오는 한 여인이 있었다. 어떤 남성들은 그녀를 더 자세하게 보려는지 몸을 더 앞으로 빼기도 하였다. 어떤 여성은 손으로 아이의 눈을 가리기도 하였다. 그녀를 보자 사람들은 소리치기 시작했다.
"마녀다!"
"마녀를 죽여라! 저 마녀가 날 사악한 마법으로 유혹했어!"
"마녀에게 심판을!! 저 마녀는 내 남편도 유혹했어!!"
"신의 심판이다! 저년에게 교수형을!"
사람들은 그녀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기사와 병사는 시민들에게 그만하라 하였다. 하지만 한번 뿐. 그들은 시민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벌거벗은 채 속옷만 입고 끌려가던 그녀는 날아오는 돌을 맞고 비틀거리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하였고, 이내 그 환호는 여인의 피로 물들었다. 그녀의 검은 머리는 흐르는 피로 붉어졌고 그녀의 갈색 피부는 심한 상처로 인해 점점 검어졌다.
절그럭-
"죽여라!"
마녀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발에 매달린 족쇄가 땅을 끌었다.
절그럭-
"죽여!"
마녀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시민들을 돌을 던지며 외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흘렀건만 태양은, 여전히 그녀의 머리 바로 위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사와 마녀라 불리는 여성은 광장의 중앙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교수형대가 있었다. 기사는 병사들을 시켜 마녀의 목을 걸게 하였다. 마녀는 기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원망과 분노와 좌절이 섞인 눈으로 그에게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이 거짓말쟁이! 배신자! 악마! 나를 그 달콤한 말로 꼬여내고는 이제 나를 죽이려 하는군요. 예전에는 나의 모든 걸 받아가려 했으면서 이제는 나의 목숨을 받아가려 하는군요. 진실한 사랑이라 말했던 당신의 맹세는 그날 당신을 찌른 신부의 칼에 죽어버린건가요. 전 당신을 진정한 사랑이라 믿고 춥고 배고픈 감옥 속에서도 당신의 도움을 기다렸는데, 당신은 살인자 신부를 놔두고 결백한 날 죽이려 하는군요. 당신은 악마야!
아아 태양이여! 영원히 어두워지거라! 추악한 성당의 시대는 이제 무너지리라!"
덜컹-
약간의 발버둥 후, 마녀의 몸은 축 늘어졌다. 늘어진 마녀의 시신을 병사들이 사무적으로 광장에 내려놓았다. 사람들은 마녀의 시체를 구경하고는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다. 기사는 마녀를 보고 혀를 한번 차고는 병사들과 함께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느 새 어둑한 저녁이 되자 성당의 그림자는 그녀를 덮어주었다. 그녀에게 한 남자가 다가갔다.
등에 혹이나고 추한 얼굴을 가진 남자였다. 남자는 한참이나 그녀의 시신을 안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별이 떠서야 남자는 그녀의 시신을 안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 날부터 성당에서는 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