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런 스스로 다 안다고, 또는 거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러나 사실은 잘 모르거나 또는 전혀 모르고 있는 내용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명확한 답을 제시해 보고자 이 글을 쓴다. 안다. 지금까지 수많은 현인들이 그것을 생각해 보았고 그 답을 찾아갔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분들의 그런 결론들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여 본인처럼 평범한 사람이 스스로의 답을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주제 넘는 것인지를 말이다. 그러나 진실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각자 나름대로의 깊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일 거라는 확신이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그리고 이 글의 근본이 되는 가정과 골자는 이러하다. 즉, 1. 인간을 포함하는 동물은 어떤 '특정 목적'을 이뤄 나가려는 존재들이고, 위에서 언급된 2. 온갖 종류의 마음과 관련된 관념들은 이런 목적을 지향해 가는 과정에서 파생되었으며, 따라서 3. 그런 마음과 관련된 온갖 관념들은 동물의 그 특정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관점으로 해설되고 정의 내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좋다’(好)라는 마음관념을 동물이 자신의 그 ‘특정 목적’에 부합되는 현상을 맞이함에 따른 내적 상태 정도로 정의하거나, ‘선’(善)을 자신과 공동체의 목적에 부합하는 상태로 정의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마음관념들의 개념은 확립될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그렇게 확립되어야만 할 것 같다는 것이다. 글의 토대가 이러하기 때문에 (수학에서의 공리처럼) 이 글은 '특정 목적' 같은 몇 가지 특별한 근거도 없는, 그러면서도 핵심이 되는 가정을 기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가정들이 직관적으로 크게 어긋나지가 않음을, 그리고 큰 그림을 설명하기 위한 최소한의 도입임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이글의 목적이기도 하지만, 이런 마음을 주제로 하는 종류의 글에서는 각종 추상적인 용어들이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이 글에서는 (부족하나마)최대한 그런 용어들을 엄밀하게 정의 내리면서 써 내려가고자 한다. 추상적인 용어에 대한 관념은 구체적인 용어에 대한 관념과는 달라, 객관적인 자료 같은 것으로가 아닌 주관적인 느낌(?)으로 형성이 되는 것다. 그래서 추상적인 것은 사람마다 그 용어를 이해하는 내용이나 깊이가 조금씩, 또는 상당히 다를 수가 있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현인들이 마음에 대해서 골몰했음에도 아직 서로가 주제에 대해서 명쾌한 합의가 되지 못하고, 때로는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하기까지 하는 이유는 어쩌면 서로가 사용하는 용어를 정확히 정의하지 않거나 또는 용어에 대한 정확한 확립이 없는 막연한 상태에서 생각들을 펼쳐나가서 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쓰는 용어의 의미를 자신조차도 정확히 모른다면 자신의 생각은 별로 명쾌하게 정리될 가능성이 없다. 설사 용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쓴다 할지라도 그 의미를 명시적으로 기술하지 않는다면 같은 용어를 다른 의미로 쓰고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해와 혼란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결국 자신이 사용하는 주관적인 용어들에 대한 최대한의 명확한 정의 없이 글이나 생각을 펼친다면 서로의 생각은 만나서 소통될 가능성은 멀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이 글은 (너무나 많이 부족하지만)최대한 쉽고 편하게 써 보려고 노력은 하려고 하였다. 글은 가능한 짧고 간결하게 쓰려고 하며, 애매하고 막연한 용어는 가급적 쓰지 않으려고 했고, 써야 한다면 그와함께 그 용어에 대한 최소한의 정의도 내릴려고 하였다. 엄밀한 글은 어쩔 수 없이 딱딱하고 갑갑해 질 수 밖에 없는 반면, 쉽고 편한 글은 또한 어쩔 수 없이 내용이 엉성해질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고전적 철학서들이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한 이유들 중에는 아마도 그 엄밀하고 정교한 관념에 불구하고 불가피하게도 그것을 설명하는 내용에서의 딱딱하고 갑갑하고 난해한 내용이나 표현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설사 그 내용에 진실이 있다 할지라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를 파악하기가 힘들다면, 또는 아예 어느 정도 지적 수준이 있어야지 간신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 글은 사실상 대중들과의 교감에서는 포기 또는 실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가 글을 써서 출판까지 하는 이유가 자신의 생각에 대한 정리를 기념하기 위한 것 때문만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읽혀서 대중을 공감하게끔 하는 것일 텐데, 글을 난해하고 따분하게 전개한다면 그것은 공감은커녕 아예 다른이들에게 읽힐 가능성 마저 차단하는 것일 것이고 이는 글 쓰는 목적에 반하는 행동인 것이다.
본질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을 쉽고 엄밀하게 풀어나가는 것은 아마도 대단히 어려운 것일 것이다. 그래도 최대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쾌하게 정리해서, 그리고 최대한 성의 있게 기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본격적인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