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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거미줄
게시물ID : readers_195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널소유하겠어
추천 : 2
조회수 : 26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5/11 10:44:21

싫증난다.
배가 고픈 것이 싫었던 걸까 나는 냄새나는 컴퓨터 책상 앞에서 일어났다.

감정이 요동치는 것이 싫었던 걸까 베란다 창문을 열고 조용히 날아다니는 먼지를 얼굴로 느꼈다.

아니면 냄새나는 옷가지가 싫었던 걸까 괜히 불쾌한 느낌에 웃옷을 벗어던지고는 그저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콘크리트 바닥을 쓸고 지나가는 쓰레기 소리와 전봇대에 어거지로 붙들려 펄럭거리는 전단지 소리가 리듬을 갖추고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참새들의 지적이는 소리가 불헌듯 네모낳게 일정한 구멍이 뚫린 방충망 사이로 침범하고 말았다.

세상은 온통 책임이라는 거미줄로 가득하다. 우리는 지금 발정난 어미 거미에게 먹힐 먹음직스러운 먹이에 불과하다.

잠시 생각을 정지하고 싶었다.

책을 읽고 싶었지만 무작정 보이는 재미없는 책들을 읽고 싶지 않았다. 
책더미 속 그나마 가장 마음에 드는 시집 하나를 들고 거리를 나섰다.

따사롭게 내비치는 봄의 햇빛은 어둠 자욱한 싸늘한 그늘 속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누가 나를 이 지독한 거미줄에 걸리게 했는가에 대해선 답을 주지 않는다.

반은 나의 탓이요, 반은 너의 탓이다. 저마다 주저리는 소리는 달라도 그 뜻은 같으리다. 
왜 나에게 탓을 묻느냐는 이기적인 신호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이제는 낡은 상가단지에서 젊음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늙은이들의 둔탁한 지팡이 소리와 하염없이 질러대는 소리 없는 탄식만이 울려퍼진다.

나는 이곳에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더 작고 비좁은 곳으로, 더 서늘하고 메마른 지대로, 
어쩌면 최악의 장소로, 하지만 나를 내려놓기엔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더욱 옥죄이는 이것에 대하여 침묵했다.

왜냐하면 난 아직 어리고 아름다우니까. 
적어도 그런 짓궂은 위로가 지금의 나에겐 가장 어울리니까란 변명으로 지독한 거미줄에 나의 몸을 칭칭 감아버린다. 

언제쯤 잡혀먹을까? 
그 지속적인 두려움에서 벗어나 지금 당장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일시적인 위안은 멍청한 나를 다시 휘파람 소리에 춤추게 만들 테니까. 

하지만 나는 멍청이가 아니다. 버려진 쓰레기도 아니고 비겁한 도망자도 아니다. 
다만 나의 행위는 어리고 아직 아름다운, 그러나 죽어갈 노란 나비의 이른 추락일 뿐이었다. 
더 이상의 날개짓은 없다. 

나는 오직 단 하나만 두려워할 뿐이다. 
언젠가 지금의 고통이 아무런 것도 아니었다고 다 잊어버린 채 웃어버릴까봐...

// 
믿음의 힘을 이용하는 자들에 의해 스스로의 판단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쳐놓은 거미줄에 허우적대는 우리들은 과연 그것이 옳은지에 대하여 묻지 않는 세상입니다.

무작정 타인을 짖밟고 타락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선 옳지 않다고 말하면서,
이 작은 물음에 대해서 침묵하는 우리들은
단지 하나같이 느끼는 이 지독한 피로감에서 해방되어 안식을 찾길 바랄 뿐이죠.

찰나의 순간에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고작 양식장 안에서 피어오르는 꽃들이라도,
우리들은 피어난 아름다움에 대하여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 양분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죽을 것이고, 아름다움은 사라집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과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결국 서로를 죽여가는 싸움은 나의 탓도, 너의 탓도 아니며 모두의 탓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과 남을 탓하는 사람이 갈릴 뿐입니다.
이런 진흙탕 싸움에서 서로가 편가르기하며 누가 옳다고 잣대를 휘두르는 것은
소리 없는 폭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살아 남기 위해서 누군가를 짖밟아야 한다면,
그러나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음을 모른 채...
단지 부정적인 어감이 나를 휘감지 못하게,
사실은 폭력배이면서 폭력배가 아니라는 뻔뻔함을 지녔죠.
그것은 저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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