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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가 함께 싸운 임시정부의 역사
게시물ID : sisa_10035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oolbk
추천 : 3
조회수 : 50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2/18 01:24:04
“1942년 5월 조선의용대가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되자, 임시의정원에도 좌익 계열이 대거 참여하여 관내 독립운동 세력을 모두 포괄하는 통일 의회가 구성되었다. (…) 김원봉 계열의 임시의정원 참여는 조선의용대의 광복군 편입과 함께 관내 지역 한국 독립운동 세력의 대통합을 의미하는 것이자, 좌우 합작·연합의 표상이었다.”(글·사진 230~231쪽)

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919~1945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엮음/한울엠플러스·5만원

한국독립당 제1차 중앙집행위원·중앙감찰위원 전체 촬영(치장, 1940년 5월16일) 앞줄 왼쪽부터 김붕준·이청천·송병조·조완구·이시영·김구·유동열·조소앙·차리석.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 인근의 치장에 도착한 직후인 1939년 8월 좌우익 진영의 7개 정당 및 단체가 단일당을 결성하자는 목표 아래 7당 통일 회의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통일의 방법과 정치적 이념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결렬되고 말았다. 민족주의 세력은 1930년대 중반 이래 김구를 중심으로 한 한국국민당, 조소앙과 홍진이 주도하던 재건한국독립당, 이청천을 비롯하여 만주에서 이동하여 온 독립군 출신들이 주축이 된 조선혁명당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3당은 정치적 이념이 크게 다르지 않았고, 임시정부를 옹호·유지하여야 한다는 입장도 같았다. 이 3당은 1940년 5월 8일 공동 명의로 3당 해체 선언을 하고 한국독립당을 창당하였다.”(글·사진 170~171쪽) 한울엠플러스 제공.
한국독립당 제1차 중앙집행위원·중앙감찰위원 전체 촬영(치장, 1940년 5월16일) 앞줄 왼쪽부터 김붕준·이청천·송병조·조완구·이시영·김구·유동열·조소앙·차리석.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 인근의 치장에 도착한 직후인 1939년 8월 좌우익 진영의 7개 정당 및 단체가 단일당을 결성하자는 목표 아래 7당 통일 회의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통일의 방법과 정치적 이념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결렬되고 말았다. 민족주의 세력은 1930년대 중반 이래 김구를 중심으로 한 한국국민당, 조소앙과 홍진이 주도하던 재건한국독립당, 이청천을 비롯하여 만주에서 이동하여 온 독립군 출신들이 주축이 된 조선혁명당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3당은 정치적 이념이 크게 다르지 않았고, 임시정부를 옹호·유지하여야 한다는 입장도 같았다. 이 3당은 1940년 5월 8일 공동 명의로 3당 해체 선언을 하고 한국독립당을 창당하였다.”(글·사진 170~171쪽) 한울엠플러스 제공.

3·1절 22주년 기념식을 마치고(충칭, 1941년 3월1일) 왼쪽부터 김구, 조소앙, 신익희, 김원봉. “충칭 시기의 사진으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많지는 않지만,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관계자 개개인에 관련된 것들이다. 1941년에 김구와 김원봉이 함께 등장하는 사진이 있는데 여기에는 조소앙과 신익희가 함께 나란히 보인다. 대단히 상징성이 큰 사진이다.”(글 22쪽, 사진 214쪽) 한울엠플러스 제공.
3·1절 22주년 기념식을 마치고(충칭, 1941년 3월1일) 왼쪽부터 김구, 조소앙, 신익희, 김원봉. “충칭 시기의 사진으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많지는 않지만,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관계자 개개인에 관련된 것들이다. 1941년에 김구와 김원봉이 함께 등장하는 사진이 있는데 여기에는 조소앙과 신익희가 함께 나란히 보인다. 대단히 상징성이 큰 사진이다.”(글 22쪽, 사진 214쪽) 한울엠플러스 제공.

송병조 장례식(1942년 2월27일) “송병조가 서거하자 임시정부에서는 국장으로 장례를 치른 뒤, 유해를 충칭 투차오 허상산에 안장하였다. 허상산에는 송병조 외에도 차리석·손일민·이달·곽낙원·김인 등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 그리고 조선의용대 대원들의 묘지가 있었다. 그중 일부는 국내로 이장되었으나 대부분 허상산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고 그 일대가 개발되면서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글·사진 220~221쪽) 한울엠플러스 제공.
송병조 장례식(1942년 2월27일) “송병조가 서거하자 임시정부에서는 국장으로 장례를 치른 뒤, 유해를 충칭 투차오 허상산에 안장하였다. 허상산에는 송병조 외에도 차리석·손일민·이달·곽낙원·김인 등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 그리고 조선의용대 대원들의 묘지가 있었다. 그중 일부는 국내로 이장되었으나 대부분 허상산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고 그 일대가 개발되면서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글·사진 220~221쪽) 한울엠플러스 제공.

한국독립당 임시정부 환국 기념(충칭 임시정부 청사, 1945년 11월3일) 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김구, 여섯번째 이시영, 아홉번째 신익희. 김구 오른쪽 뒤에 조소앙. 한울엠플러스 제공.
한국독립당 임시정부 환국 기념(충칭 임시정부 청사, 1945년 11월3일) 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김구, 여섯번째 이시영, 아홉번째 신익희. 김구 오른쪽 뒤에 조소앙. 한울엠플러스 제공.
출처 http://www.hani.co.kr/arti/PRINT/8008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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