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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훈의 잡설] 기자(記者)는 벼슬 이름이 아니다
게시물ID : sisa_10056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서희어딨냐
추천 : 14
조회수 : 74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7/12/21 15: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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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훈 전 MBC논설위원

"코메디네... 코메디야, 코메디."

기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데,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은 묘하게도 아무나 기자가 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14 년 전, 참여정부의 초대 법무장관이던 강금실 씨가 국회에 출석해서 법사위원들의 언행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며 했던 혼잣말이 떠오른다.

"코메디네... 코메디야, 코메디."

최근 수구냐 아니냐 조중동이냐 종편이냐 그만도 못한 유사 언론 매체냐를 굳이 분류할 것도 없이 대부분의 매체에서 내걸고 있는 정권의 '무능' 프레임과, 그 하위 프레임인 '홀대', '혼밥', '방중 무성과' 프레임, '현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취약성' 프레임과 '적폐 청산 피로감' 프레임 따위를 접할 적마다 짜증이 나다가도 말미엔 맥없이 웃으며 애용하게 되는 혼잣말이다.

누가 먼저 멱살을 잡거나 입을 틀어막지도 않는데 요즘의 기자들은 지난 정권 치하에서보다 훨씬 화도 잘 내고, 기백이 넘쳐 보인다. 좋은 일이다.

엊그제 청와대가 출입기자단에게 지난 15일 벌어진 '중국인 경호요원의 한국 수행기자 무차별 집단폭행 사건'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단다.

설명한다구? 청와대, 실수한 거다. 매체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출입기자단에게 감히 '설명'을 하겠다니. 너희가 잘 모르거나 모를 수도 있는 사안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잘 아는 우리가 가르쳐주겠다는 얘기 아닌가. 이런 식이면 기자단의 몰매가 그립단 얘기가 된다. '설명? 필요없고, 우리가 질문을 하겠다.' 기자단 다운 반응이다.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데. 그래서 망했는데.

그러곤 맨먼저 나온 질문이 "왜 중국까지 가서 혼자 밥 먹었나?"였단다. 여기서 일단 '뿜는다'(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못 얻어 먹었다면 '홀대'받은 거고, 손님이지만 사겠다는데도 상대가 사양 또는 거절했다면 '무시'당한 거란 얘기다. 나도 기자질 '해봐서 잘 아는데', 만나서 밥 먹고 돈 내는 기자, 구경하기 어렵다. 취재원의 경제형편이 돈을 내기 어려운 경우는 예외다. 기자들은 밥 (얻어)먹는 걸 정말 중요하게 여긴다. 밥 안 사면 홀대하는 거다. 기자가 밥 먹자는데 안 먹어? 무시하는 거다. 조심하시라,들.

반대로 대통령이 일정에 포함된 식사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중국 요인들과 같이 했다면? 질문은 "밥 먹으러 전용기 타고 갔나?" 내지는 "먹방 찍으러 갔나?"가 됐을 것이다. 거기에 '요란한 식사, 초라한 성과' 라든지 '성과 없는 성찬에 혈세 퍼부어' 같은 복합형 제목들과 '소국(小國) 대통령 밥 나눌 때 주먹 발길질 나눠 준 대국(大國) 경호원' 수준의 고품격 제목들이 등장했음직도 하다. 마술사들이니.

청와대 홍보관계자가 여러 차례 밥 얘기는 하지 말자고 해도 기자들은 집요하게 밥 문제를 둘러싼 추궁을 계속했다 하니, 애초에 저 분들을 설득하겠다고 나섰던 게 실수요, 패착이었다. 앞으론 그런 헛짓거리 안 해야 한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정상(頂上)외교의 루트를 벗어나 급히 아랍에미레이트에 다녀온 이유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는데, 청와대의 대응은 참으로 부적절했다. 그냥 속 시원하게 사실을 이야기했으면 그만인데 이제는 때가 늦었다. 누구처럼 비자금을 숨기러 간 것도 아닐 텐데 숨길 일이 뭔가. 기자님들의 '짜증', 이번엔 드물게 당연했다.

야당이라는 이름의 정치 모리배(謀利輩)들과 공동체적 정체성을 지닌 조중동이 정권 초기부터 꾸준하게 '밀고 있는' (개그맨들이 자신만의 유행어를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는 말) '외교 안보 라인의 비전문성과 취약성' 프레임은 웃음과 구타 욕구를 함께 유발하는 다중적 기능을 자랑한다. '전문성'을 지녔던 개국 이후 역대 정권의 외교 안보라인을 예시하라고 하면 그들의 대답은 단순하다. "지금의 외교안보 라인이 무능하다는 말이다." '묻지마 무능'이라는 게다.

굳이 전 정권과 그 이전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 실패 내지 낭패가 작금의 어려운 상황을 가져왔다는, 옳지만 왠지 변명으로 들리게끔 '형성된' (약간의 철학적 의미를 보태 읽어주시기 바란다) 반론은 거두기로 한다. 저들은 이미 토론은 커녕 논쟁의 대상도 아니니. 박근혜와 그 부하들이 배설해 놓고 떠난 분변을 치우러 중국에 간 대통령이 도대체 어느 수준의 외교적 성과를 거둬야 저들 수구매체들의 썩은 입내를 피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만일 애초에 중국에 가지도 않았다면? "외교안보 위기의식 부재. 정부 손 놓고 정치 보복에만." "무능에 무감까지. 적폐가 따로 없다."" 등등이 저들의 악다구니였음이 틀림없다.

끝으로 저 '기자 폭행'에 대해 언급하자면, 이는 "직업 정신의 분별 없는 발휘, 위험한 걸 몰랐나?" 정도가 될 것이다. 듣자하니 기자를 때리고 발로 찬 경호원들은 행사를 주관한 무역투자진흥공사가 중국의 민간 경호업체와 계약해 고용한 인력이라 한다. 그들 대부분이 전직 공안원(우리의 경찰과 유사한)이며, 현장을 실질적으로 통제한 것은 중국의 공안이라 한다. 반(半)민간, 반(半)기관원적 성격의 인력이었던 게다.

전체주의국가의 경찰국가적 성격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특별히 중국의 공안원들이 얼마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행동규칙을 따르는지도 다른 국가의 기자들이 당했던 적잖은 전례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사진기자의 투지는 좋은 의미의 '곤조(根性)'로 알려졌듯이 그 직업 종사자들의 독특한 미덕이다. 대체로 그렇다. 그런데, 영상물을 통해 알게 된 사건 당일의 투지는 나쁘진 않았으나 부적절했다. (어느 영상에서 한국 기자들의 난무하는 욕설과 머리가 벗겨진 한 기자가 경호원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투지 넘치는 모습을 불안한 마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목숨을 걸고 들이댈 만한 사안도 없는데 왜 그런 만용을 부렸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얻어맞은 기자들을 '기레기' 운운하며 비난하는 일은 부당하다. 그들은 애완동물에게나 어울리는 행동을 맹수에게 적용하다 비싼 댓가를 지불했을 뿐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기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청와대에서 과일 조각과 과자 부스러기에 차를 마시며 대통령과 다소곳한 포즈로 사진을 찍던 그 기자들이, 한없이 착하기만 했던 그 기자들이, 지사(志士)가 되고 투사(鬪士)가 돼가는 급속한 변신의 과정이 이채롭고 재미있다. 다만 기자라는 이름을 벼슬 이름으로 착각하는 코메디만은 보여주지 마시라. It's not funny. 우습지도 않다.

김병훈 전 MBC논설위원 [email protected]

출처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944088058941830&id=104026149599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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