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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와 철학청년 마룬캬
게시물ID : phil_100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서울풍자극
추천 : 0
조회수 : 42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0/26 12:29:38

붓다는 마룬캬(Malunkya)라는 제자를 상대로 다음과 같


이 설한 적도 있다.




    "그러므로 마룬캬여,  내가 설하지 않은 일은 설하지 않은 채로 수


  지(受持 ;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지니는 것. 즉 받드는 것.)함이


  좋고, 또 내가 설한 일은 설한 대로 수지함이 좋으니라.


    그러면 마룬캬여,  내가 설한 것이란 무엇이던가?  '이는 고(苦)이


  다.'라고 나는 설했다. '이는 고의 발생이다.'라고 나는 설했다. '이


  는 고의 멸진이다.'라고 나는 설했다.  또 '이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설했다.


    마룬캬여, 왜 나는 그것들을 설했던가?


    마룬캬여, 그것들은 정말 도움이 되며,  범행(梵行 ; 청정한 행위.


  욕망을 끊는 것.)의 기초가 되며, 적정 , 증지 , 등각 , 열반에 이바


  지 하느니라.   그러기에 설했음을 알라."


 


  마룬캬라고 불리는 이 제자는 오늘날의 말로 하면 철학 청년이라고나


할까? 이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인간은 죽은 다음에도 존재하는가


못하는가, 또는 영혼과 육체는 동일한가 동일하지 않은가, 당시에 유행


하던 이런 문제를 논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붓다는 전혀 그


런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그것을 불만스


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 젊은이가 어느 날 붓다를 찾아와서 그 불만을


털어 놓았을 때,  그에게 '화살의 비유'를 들어 친절하게 설명한 다음,


마지막에 가서 힘을 주어 한 말씀이 이것이었다.  거기에서 붓다는 "내


가 설하지 않은 것은 설하지 않은 채 수지하라." 또 "내가 설한것은 설


한대로 수지하라."고 하여 매우 힘 있게 끊어서 말하고 있거니와, 그러


면 대체 붓다가 설한 것은 어떤 내용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네 가지


성제'였다고 붓다 자신이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성제'는 붓다의 가르침의 중심 골격을 이루는 것


이었다.  이 사실은 저 다섯 비구를 상대로 설해진 이후, 그 생애를 통


해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러면 그것은 어떤 내용이었던가? 지금은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중심 문제요,  그 사상을 설명하는 것은 주제가 아


니나,  먼저 얼마라도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면 최초의 설법소식


은 완전히 그 안목(眼目)을 잃고 말는지 모른다.


  '네 가지 성제'(cattari ariyasaccani)는 흔히 줄여서 '사성제' 또는


'사제'라고 일컬어진다.  '제'는 sacca(Pali) 혹은 satua(Skt.)의 역어


로 '진리'를 뜻하는 말이거니와,  그것은 아울러 '엄숙한 단언'을 뜻하


기도 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오히려 '엄숙하게 진리를 말씀한 단언적


명제'라고 받아들이는 편이 그 뜻에 더 가까울 것으로 생각된다.  붓다


는 아마도 그 생애를 통해 이것을 숱하게 되풀이해서 설했으려니와, 이


제 여러 경에 나타난 바를 검토할 때, 가장 간명한 형식은 앞서 인용한


마룬캬에게 설명해 주던 그 양식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고(苦)이다."


    "이는 고의 발생이다."


    "이는 고의 멸진(滅盡)이다."


    "이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




<아함경 이야기>, 마쓰야 후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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