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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살아남은 자의 망상
게시물ID : readers_196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널소유하겠어
추천 : 1
조회수 : 45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5/13 12:48:34

다시는 볼 수 없는 나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도록 갈망하는 나는
단지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저 청아한 목소리를 찾아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부서져가는 다리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자각하게 만들고,
인대가 끊어져버린 팔은 가장 자유롭다고 느끼는 나의 일부를 빼앗아간 느낌까지 주었다.

더 이상 들숨을 내쉬는 것도 하지 못한 채, 저 기계에서 연결된 호스로 주입 받는 산소가
폐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고작 고철덩어리에서 흘러나오는 일정한 소리로 내가 살아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처지에
나는 단지 창가 너머로 들어왔다 사라지는 아찔한 태양빛이 한 번만 닿기를 바랄 뿐이었다.

변덕스러운 구름의 움직임은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들은 태양을 둘러싸고 춤추고 있었으며,
임시적으로 나의 보호자의 역할을 자처한, 뛰어다니는 간호사들의 기척은 
상시 나를 두려움으로 몰아갔다.

"제발 누군가가 나를 죽여줘."

희미하게 움직이는 나의 입술의 반응을 본 누군가는 말한다.
흐려진 초점 너머로 긴 머리의 여인이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지 주사바늘을 끼워넣는 것으로 그녀가 간호사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 무엇도 아닌 당신의 존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이와 침대에서 나뒹굴 수 있으리란 추측과 함께
나 또한 그랬었길 상상해보았다.

먼 날의 추억을 떠도는 기차에 올라 긴 여행을 시작했다.
아, 나도 누군가에게 원망을 샀었었지.
문득 만약 그가 나를 죽였더라면 어땠을지 궁금했다.
나는 상상으로나마 그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어 나에게 복수하는 것을 꿈꿨다.

하루에 5번, 오늘로 8993번째.
그들은 알고 있을까?
고작 살아남은 정신이 나의 존재를 이렇게 극명하게 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죽어버린 육신에서 벗어나길 갈망하는 나의 욕심을.

살아있는 한 영원히 멈추지 않는 이 폭주기관차에서 나는 끝없이 여행한다.
그는 사고에서 살아남았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아니 그는 죽었을 거야. 그래도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딱 한 번만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러면 나를 죽여달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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