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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이곳으로 돌아와 너희를 마주본다.
게시물ID : sewol_449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다시흙으로
추천 : 10
조회수 : 30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5/13 18:52:19

상당히 긴 글이 될 것 같다.
그래. 난 그래도 너희들에게 할말이 아주 없지는 않다.
아니, 그래도 이젠 니들이 내 선배지. 먼저 간 사람이 선배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그냥 나이터울 없이 허심탄회하게 내 이야기를 좀 써보려 한다.


나라는 사람은 꽤 열등감이 강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런저런 사정과 함께 집안에 몰아닥친 두번의 재난은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뒤로 벌어진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인 사건에 애써 눈을 돌려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고,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해보려 방황했었다.

웃기는건. 그렇게 파고들어가다보니 결국 통찰이라는게 생겨버렸고. 나는 결국 너희들이 이런 큰 사고에 휘말리게 되는 것을 방조한 사람중 하나라는 것을 부정할수 없었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이 긴 글을 어렵게 써본다.

난 그런 상황에서 방황했다. 처음에는 내 작은 공간을 마련해준다던 c세상에서 나의 이야기를 넋두리 삼아 사람들과 교류하길 원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넋두리로 남기고 싶어했고. 결국 우리는 좁은 공간 안에서 물방울 하나에 담긴 산소를 흡입하며 연명하는 초라한 한 개인이라는 것을 자각해버렸지. 이후 누구나 동일한 위치에서 누구에게도 편하게 대할 수 있었던 공간이라 여겼던. 그 몇 안되는 갤러리에서 시작했던 작은 공간이 커지고 사람들이 유입되며 모두가 '동일'하며 '같은 시선'으로 서로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믿은 '착각'속에서 그곳의 변화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이야기들에 지쳐 점차 냉소적인 사람으로 변해가야만 했다.

결국, 이때까지 난 내 갈길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자신이 아는 것만을 이용해 어줍잖은 어른의 행세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후, 촛불을 들기 직전까지만 해도 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지조차 모른채 5월 31일 저녁 11시에 아고라를 통해 세상이 이상하다 여기는 사람들과 초기 그들이 보여줬었던 상호존중의 매력에 내 생각을 점차 풀어가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분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나의 생각, 나의 통찰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공감을 얻었는지 알게 되었고. 적어도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것이 맞는것 아니냐 라는 생각에 김밥이나마 싸들고 늦봄의 새벽에 물대포를 맞고 떨고 있던 사람들에게 먹였었지.
적어도 난 그 부분에 있어서 너희들에게 일말이나마 변명을 할 수 있는 위치라 자위한 것이 아닐까... 지금와선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촛불은 결과적으로 시간을 번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결하질 못했고, 난 이후 그놈의 발언권이라는 것에 광신적으로 미쳐버린 자들에게 횡령범마냥 매도당했다. 물론 제대로 된 진실을 밝히고자 했지만, 결국 유야무야 되버린 감이 있었고. 여론은 한때의 해프닝으로 이를 기억하게 되어버렸지.
그리고 상호 존중의 공간은 집단 광기와 프로파간다의 전투장으로 돌변해버렸고... 나는 다시 방황을 시작했어.

내 자신조차 구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구제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만이 몰아쳤고, 내 개인적인 생의 혹한이 몰아닥치자, 난 결국 타인과의 연결점을 내 스스로 포기하고, 자유의 의미를 알고 있음에도 이를 추구하지 못했던거야.

난 그걸 그제서야 알았고. 08년 그때의 늦봄에 나오지 못한 자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아무것도 변혁하지 못한채 세월을 흘려보내게 된거지.
그리고 이곳에 와서 나의 상처나 나의 고민을 더는 도구로서 이곳을 이용한것에 불과했었다.

너희가 물 속에서 가버린 그날. 난 내 외종사촌을 포항의 불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너희나 내 사촌이나. 가버린 이유는 똑같았어.
결국 너희가 우리대신 룰렛에 당첨되어버린 것 마냥 아까운 삶을 잃어야만 했던거야.
그렇기에 산 사람은 그 룰렛을 멈추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금 얻은 것이지만. 왜 이리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게 되는걸까?

난 지금껏 살면서, 4.19, 5.18 6.27로 인해 삶을 잃거나 생을 살아감에 있어 큰 장애를 얻은 분들에게 빚을 지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 짐을 우리가 나눠 들어야만 했던 거라 생각했지. 그런 생각은 08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

이제, 다시 난 이 작은 공간에서 무엇을 이야기해야할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헤매고 있어.
내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위해라는 말을 되뇌이며 잔뜩 겁먹은 나를 다그치고 있었던 08년 초여름의 그때와 지금은 크게 다르진 않을거야.

다만. 이제 난 너희들의 짐을 나눠들고자 한다.
그게 내 속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너희에겐 약간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그래도 말하자면.
국가의 존재는 결국 그 구성원인 시민을 지킴으로서 존재의의를 다 할 수 있는 거란다.
그렇기에 봉건제의 왕은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영주들을 지켰고. 자신을 비호하는 귀족과 명분을 제공하는 성직자들을 보호했지.
이말은 곧 현대 민주국가에선 세금을 내는 모든 시민들에 대해 국가는 그 시민이 엄청난 위법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보호해 줘야만 했었다.
보호해줘야만 했었다! 이게 내가 분노하는 첫번째 이유가 될거야.

그리고 그 의미는 넓은 의미로서 '최소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며 사람답게 사고하고 사람답게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만 한단다.
물론 너희는 야자도 있고, 공부하기 참 지루하고 짜증났을수도 있지만. 그 과정 역시 이 넓은 의미에 포함되었던거야.

너희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우리나라의 민의를 반영했다 주장한 누군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난에 빠뜨리거나 죽임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려 했단다.
한 시민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체제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기에 구하지 못했을 경우에, 그 체제를 영도하는 지도자는 당연히 시민에게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것이었어.


어른들이 못한거.
어른들이 어떻게든 해줘야지.
나야 어른 같지도 않은 얼치기지만. 적어도 나보다 더 어른인 인간들에게 난 이제 별볼일 없는 이 머릿속에 있는 궁금증을 말하고 싶어.
" 왜 이 사람들을 구해지 못했는가? " / " 그때 당신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
" 왜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가? " / " 왜 제대로된 절차를 거치지 않는것인가? "

수많은 질문들을 해나가겠지.
그리고 그러다보면. 너희들에게 최소한 면목은 생기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난 저번주에 내가 겪었던 외로움에 쌓여 떨고 있던 너희 부모님들과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향해 가려했지만.
08년 내가 그렇게 겪었던 것보다 더, 이젠 그 어디에서도 그 현장을 검색할수 없는 상태가 되었더라.
결국 난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했고. 시간을 번 대신 나 말고 너희들을 죽인것과 다름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는 죄책감에
이제 다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해.

전보다. 조금 독하게 나갈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모르겠고.


미안하다.
찌질한 변명이 너무나도 길다.
그냥 미안하다.


2008. 05. 31. 莊子, 湖蝶夢.
2015. 05. 13. 다시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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