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물론 아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 당시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분들도 있기 때문에 간략하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직책 등은 생략)
박정희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에 의해 죽고 난 후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5.17 비상계엄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의 과정에서 군력을 동원해 억압하여 김대중·김영삼 등의 정치활동을 아예 묶어 버려놓고 실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당시 최규하 는 허수아비 대통령이었지요.
그 이후 국보위를 설치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대통령이 됩니다.
당시 대통령은 지금처럼 국민이 뽑는 것이 아니라 간선제를 채택했습니다. 전두환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지네들 사람들을 죄다 심어놓고 대통령에 앉은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 초기에 아예 야당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면서 군사독재는 계속 됐습니다.
그러다가 1983년 김영삼과 김대중은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조직했고, 김영삼은 23일간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이후 전두환은 김영삼·김대중의 활동을 허용하게 되면서 1984년 신한민주당을 창당하게 됩니다.
1985년 실시한 제12대 총선에서 신한민주당이 제1야당으로 올라서면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에 전두환은 그러면 야당 너네들이 개헌안을 만들어 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1986년 신한민주당 내 내각책임제 개헌론이 나오면서 신한민주당이 분열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듬해(1987년)인 야당인 신한민주당이 분열을 하기 시작했고, 김영삼과 김대중은 분당을 해서 통일민주당을 창당하게 됩니다. 그러자 전두환은 호헌을 선언하게 됩니다.
호헌이라는 것은 ‘기존 헌법을 지키겠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결국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뽑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군사독재 정권을 연장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자 대학생들은 호헌철폐 시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그린 영화가 바로 1987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