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인 1915년 시멘트를 마구잡이로 부어 보수해 흉물스럽게 변했고, 문화재위원회는 1999년 해체·보수를 결정했다. 이어 2000년 정밀조사와 가설 덧집 설치를 거쳐 2001년 10월 고유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체 작업에 돌입했다.
31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미륵사지 석탑은 지난 11월 석재를 6층까지 올리는 조립 공사가 마무리됐고, 노출된 석재 면의 강화 처리와 색맞춤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타향에 머물던 보물급 문화재 1점이 최소 한 세기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조선 후기 대표적 고승인 묵암 대사(1717∼1790)의 초상화 ‘묵암당 진영(默菴堂 眞影)’이 본가인 전남 순천시 송광사로 전격 환수됐다.
송광사 성보박물관(관장 고경 스님)은 3일 “일본 개인 소장자가 갖고 있던 묵암당 진영을 오랜 협의 끝에 송광사로 모셔오기로 결정했다”며 “묵암 스님이 입적하기 직전에 남긴 것으로 알려진 이 그림은 송광사는 물론이고 한국 불교 전체의 소중한 보물”이라고 밝혔다.
묵암 최눌(默菴 最訥)은 한국의 삼보(三寶) 사찰인 송광사에서도 손꼽히는 학승으로 화엄학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다. 임진왜란 때 서산 대사(1520∼1604)와 함께 송광사를 지켰던 부휴 대사(1543∼1615)의 적통으로 불교 해설서 ‘제경회요(諸經會要·동국대도서관 소장)’, 시문집 ‘묵암집(默庵集·규장각 소장)’ 등 다수의 문헌을 남겼다. 묵암을 기리는 비와 부도는 지금도 송광사에 남아 있다.
정선이 여러 화첩으로 남긴 진경산수가 무더기로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은 정선이 그려서 화첩으로 묶은 ‘해악전신첩’(보물 제1949호) 등 5건이 보물로 지정됐다고 26일 밝혔다.
농다리는 1984년부터 2007년까지 모두 19차례나 장마 때마다 유실돼 거의 매년 복구공사가 이뤄졌다.
2009년 7월에도 피해를 본 바 있다. 문제는 피해를 줄일 방법이 현재로썬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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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현재로써는 자연석을 쌓은 형태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