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지는 글이므로 계속 존칭생략합니다. 양해바랍니다.)
1편 [프레임 깨기 1.] 문빠가 아니라 문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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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깨기 2] 비판적 지지 vs 무조건 지지?
비판적 지지 vs 무조건 지지 가 아니라
비판적 지지 vs 전폭적 지지(적극적 지지) 이다.
원래 비판적 지지는, 단순하게 말하면, '지지하지 않지만 표를 주는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는 다르지만, 최악의 결과를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비판적 지지'론은 1987년 대선에서 나타났다.
당시 운동권은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과, 민중독자후보론 양 진영으로 나뉘었지만,
민중후보 백기완이 'DJ지지 선언'과 함께 사퇴함으로써, "비판적 지지론"으로 수렴했다.
이후, 진보진영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라는 과제와 '현실적인 당선 가능성' 이라는 긴장 속에서,
비판적 지지론은 선거때마다 다시 대두되고 전파되어왔다.
그런데, 비판적 지지론의 의미가 어느 순간 바뀌었다.
비판적 지지가 '지지하지 않지만 표를 준다'는 원래의 의미 대신,
'지지하지만 비판 할 것은 비판한다'는 의미로 바뀌어 퍼져나갔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일화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지지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이제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하지요?"라는 질문에
지지자들은 "감시"라고 외쳤다. 프레임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노무현 적극 지지층을 '노빠'라고 공격하면서, 맹목적인 극렬 지지자 이미지를 덧씌우는 프레임공격에
지지자들은 "지지하지만, 비판하면서 감시"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프레임에 갖혀버렸다.
'노빠' vs '비판적 지지자' 의 프레임
'노빠'는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극렬 지지자' 이고
'비판적 지지자'는 '지지하되 비판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민' 이라는 프레임이 완성되고 유포되었다.
'노빠' 와 '비판적 지지자'로 대비되는 프레임이 완성되는 순간,
노무현의 비극은 예견된 것이었겠지만, 그 순간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지지자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정치에 쏟았던 관심과 열정을 뒤로한채,
'지지하지만 비판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민'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국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평화와 번영이 찾아왔다....는 동화같은 결말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
암흑같았던 9년, 그리고 촛불혁명과 탄핵.
2017년 5월 대선을 앞둔 어느 시점에
문재인 적극 지지층을 향해 '문빠' 라는 공격이 시작되었다.
'노빠'라는 단어 대신 '문빠'라는 단어만 대체했을 뿐, 프레임은 동일했다.
그러나, '문빠'라는 공격에 수많은 '문빠'들이 "그게 왜?"라고 받아치는 순간, 프레임은 깨졌다.
'문빠' vs '비판적 지지자'의 프레임 공격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와 유사한 '비판적 지지' vs '무조건 지지'의 프레임도 통하지 않는다.
'비판적 지지' vs '무조건 지지' 프레임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한 편으론 '문빠'들이 각성했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 편으론 '무조건 지지'라는 개념 자체가 허상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지지'의 사용례를 살펴보면, 사실상 '무조건'적인 지지는 없다.
1. 적폐정산이라는 큰 방향이 맞으면, 세세한 부분에서 맞지 않아도 계속 지지한다.
2. 살아온 길을 보면, 문재인이 개혁에 제일 적합한 적임자이기 때문에 지지한다.
3.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한 마지막 기회다. 지키기 위해 끝까지 지지한다.
대략 이 세 가지 정도가 문지지층내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 되고, 공유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무조건'적인 지지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목적의식과 조건이 뚜렷하고, 개인의 이해관계보다 대의를 앞세우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적극적' 지지(또는 전폭적 지지)의 모습이다.
'무조건 지지'가 아니라, '적극적 지지' 또는 '전폭적 지지'인 것이다.
비판적 지지는 두 가지 용례가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원래 의미대로의 '비판적 지지'는 이번 대선에서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진보정당은 출마 당시부터, '비판적 지지'없이 '끝까지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투표결과, 제도권 진출 이래 사상 최대의 득표율을 획득했다(6.2%).
동시에 군소정당중 하나인 바른 정당도 6%대의 득표율을 얻었다.
즉, '지지하지 않지만 표를 주는' 비판적 지지는 거의 없었거나, 미미했다고 봐야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비판적 지지를 한 사람들은 있겠지만, 적어도 '세력'으로서의 '비판적 지지'는 없었다.)
바뀐 의미에서의 '비판적 지지',
즉, '지지하지만, 비판 할 것은 비판한다'는 '비판적 지지'는 비판한다는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비판적 지지자'를 '문빠'와 대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비판적 지지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바람직한 지지자이며, '문빠'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맹목적인 지지자라고 하는 순간,
그것은 프레임 공격이 되고 만다.(그리고, 그 프레임은 이미 깨졌다.)
한편, '비판적 지지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서, '0000정책 때문에 지지를 철회한다'는 주장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상한 일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성'을 가정한 '비판적 지지자'가 한 두 가지 정책 때문에 지지를 철회한다?
바뀐 것은 대통령 하나뿐이고, 곳곳에 적폐가 만연한 상태이고, 적폐청산의 열망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 두 가지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지지를 철회하는 것이 과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인가.
오히려, '문빠'라는 공격을 받는 적극적 지지층의
'적폐정산이라는 큰 방향이 맞으면, 세세한 부분에서 맞지 않아도 계속 지지한다.'는 태도가 훨씬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사실, (바뀐 의미에서의) '비판적 지지'는 실패한 전략이다.
실패의 댓가는 혹독했다.
민주정부 정권재창출 실패와 전직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 그리고 암흑같던 9년.
그 경험을 통해 지지자들이 새롭게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이
'무조건 지지'(로 표현되지만, 실제 의미는 '전폭적 지지' 또는 '적극적 지지')인 것이다.
'비판적 지지' vs '무조건 지지'라는 논쟁은 공회전이 될 수 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프레임 공격'이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념과 용어의 불일치'에서 오는 엇갈림 때문이다.
개념과 용어의 불일치에서 오는 소모적인 논쟁에 지속적으로 휘말리는 것이 안타깝다.
비판적 지지 vs 무조건 지지 가 아니라
비판적 지지 vs 전폭적 지지(적극적 지지) 이다
프레임은 깨졌지만, 용어속에 프레임의 잔재가 남아있다.
'문파'('문빠'가 아니라 '문파'다)의 팬으로서, '문파'들에게 제안한다.
개념과 용어의 불일치에서 오는 혼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지지'가 아니라 '전폭적 지지' 또는 '적극적 지지'라는 단어를 사용하실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