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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연대생이 되고 싶었던 고대생.txt
게시물ID : love_100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부르마
추천 : 10
조회수 : 1527회
댓글수 : 41개
등록시간 : 2016/09/03 18: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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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부턴가, 대학이름을 15개정도 댈 수 있을 때부터 내 목표대학은 신촌의 Y대였다. 이게 무슨 어그로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핑계거리는 나름 타당하다. Y대출신 아버지, 같은 지역 E여대 출신 어머니, 역시 Y대로 진학했던 나이차가 꽤 나는 친형, 친가와 외가에도 Y대 출신 친척 분들이 꽤 많으셨고, 집도 신촌 근처였다. 그래서일까, 명절날마다 난 꼭 공부 열심히 해서 Y대를 가라는 말을 들어왔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것을 은근히 원하는 눈치였다. 형이야 뭐, 만날 때마다 Y대 가라! 라고 소리쳤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남들의 부탁은 어느새 내 의지로 바뀌어있었다. 그래, 어디 한 번 가보자. 드디어 소문으로 듣던 고3이 될 때까지 난 단 한 번도 다른 대학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웃기게도, 고3이 되고 처음으로 본 3월 모의고사 점수도 Y대 적정이었다. S대는 바라지도 않았다. 지금의 내 학교, 고려대도 물론 적정이었고 좋은 대학이라 생각했으나 Y대는 이미 우리 가족과 친척 모두의 목표가 되어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었다. 형의 방에는 과잠이 늘 1개 이상은 있었고, 고연전과 아카라카 등 축제 사진들도 몇몇군데 붙여져 있었다. 내가 어떻게 감히 다른 대학을 그릴 수 있었겠는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신념은 고3 3월모의고사가 끝나고 등록한 수학학원 때문에 산산조각이 났다. 선생님이 꼭 학원이나 과외를 할거라면 수학이 낫겠다, 라고 상담때도 말씀하셨으며 어머니도 인강만 듣지 말고 직접 학원 하나쯤은 등록해야 하지 않겠냐는 눈치를 넌지시 주고 계셨다. 멀리 나가긴 싫었고, 가까운 동네 학원을 알아봐달라고 어머니께 부탁을 드렸다. 그러다 일주일 뒤 한 20분 거리즈음에 있는 , 작다고는 할 수 없지만 크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수학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2시간씩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학원자습실에 나와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든 학원이었다. 선생님이 한 분이셔서 그닥 많은 애들이 다니지는 않았다. 강의력도 좋으셨고, 유머도 꽤 코드가 맞았고, 학생들한테 신경 써주시는게 보여 수능 때까지 다니기로 맘을 먹었다. 아마 나같은 문과 고3 학생은 10명쯤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러다 5월 초쯤, 선생님이 여자 조교 한 명을 소개해주었다. 주말에만 나올거고, 간단한 질문이나 입시상담을 도와주는 보조 강사정도로만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아마 선생님의 예전 제자인듯 했다. 교단에 나선 그 조교는 키가 적당히 작았고, 선생님이 그녀를 소개할 땐 민망한지 손을 가리는 20살 대학생이었다.

사실 주말마다 자습을 나오는 인원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나까지 3명정도. 나조차도 가끔 독서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기분전환을 하고자 할 때만 가는 곳이었다. 처음으로 그 분, 누나라고 해야 되려나, 과 자습실에서 대면한 것도 6월 모의고사 직전이었다. 자습실엔 나와 조용한 여학생 하나만 있었다. 그 분은 앞쪽 책상에 앉아 프린트를 뒤적거리거나 핸드폰을 보곤 했다. 학원에서 나눠준 프린트를 풀다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와 마주쳤다. 미분이었나, 적분이었나. 20분을 끙끙대다가 결국 그 분 앞으로 갔다. 누나가 즐기고 있던 여유를 방해하는게 아닌가 싶어 고민하던 시간도 20분안에 포함돼 있었다.

'아, 모르는 문제 있어요?'
'네.. 생각보다 어렵네요. 접근이 잘못 된거 같기도 하고 제가 잘못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문과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풀릴 때가 많아요. 잘 보면 이 함수가...'
깔끔한 설명. 내가 간과했던 부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고, 조곤조곤 설명하는 모습이 예뻤다. 가까이에서 나는 머리의 샴푸냄새도 고3이었던 날 설레게 하기엔 충분했다. 감사하단 인사를 건네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프린트에 남아있던 모든 문제가 어려워보였다. 어려운 문제 모음집이었던건지, 내가 그날따라 집중이 안됐던건지 결국 난 그날만 10번넘게 그 누나의 곁에 서게 됐다. 그 때마다 설명해주는 누나에게서 감탄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그 날 이후로 난 매주 일요일마다 학원을 나가기 시작했다. 토요일에 나가지 않은 이유는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가끔 음료수도 사다 드렸고, 서로의 일상 얘기도 주고 받았으며, 자습실에 나밖에 없었던 날은 잡담도 하곤 했다. 누나는 고려대학교에 다닌다 했으며, 이과였고, 과는 말하지 않았었다. 나보고 어디를 가고 싶냐 물었던 적이 있는데, 난 당당하게 Y대를 말했다. 누나는 장난스레 서운하다며, 고려대의 문과 캠퍼스가 얼마나 예쁜지 열변을 토했다. 그 짧은 몇 분은 Y대를 향했던 내 의지를 살짝, 조심스레, 조금씩 지워내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몇 번의 풋내기 같은 연애를 해보고 썸이란 것도 타보았지만, 누나에게서 느꼈던 감정은 처음이었다. 간질간질 하면서도, 쉽사리 단정지을 수 없고, 대학생이라는 것 때문에 멀게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당장 내 눈 앞엔 수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쉽사리 내 맘을 정하기도 어려웠다. 차라리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인정해버리면 쉬울텐데, 난 일요일마다 풀이과정이 길고 어려운 문제를 일부러 찾아냈다. 일부러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장난을 거는, 어린 남자아이 같은 짖궂은 판단이었다. 번호를 물어본 날은 딱 지금처럼 쌀쌀해지는 날씨였다. 한창 이것저것 물어보고 잡담을 하다 나도 모르게 폰을 불쑥 내밀었다. 모르는게 갑자기 생기면 물어봐도 되냐면서. 그 누난 이건 초과근무인데~ 라면서 내 핸드폰을 받아 번호를 적어주었다. 하지만 난 너무 용기가 없어 그 번호로 연락하지는 못했다. 그냥 내 폰에 누나의 번호가 저장돼 있다는 사실로도 충분했다. 수능 전 주말은 사람이 조금 많았다. 10시가 다가오자 날 제외하고 모두가 떠났고 누나와 나만이 남아 짐을 정리했었다. 같이 나가요, 라며 문을 여는데 누난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초콜렛과 쪽지 하나를 건넸다. 수능 잘 보라고! 라며, 활짝 웃고, 내 머릴 살짝 쓰다듬어준 누나는 나에게 백석의 시보다 아름답고 김소월의 시보다 애절했다. 쪽지는 수능 잘 보고 고려대로 오라는 한 문장이었다. 누나는 숫자말고 한글도 예쁘게 썼다.

수능은 못 봤다. 평소 자신있던 국어에서 발목을 잡힌 터였다. 신채호니, 슈퍼문이니, 아사달이니 온갖 글자가 날 에워메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별표를 친 모든 문제를 2번으로 찍어냈다. 찍은 건 물론이고, 풀어낸 문제도 몇 개 더 틀렸었다. 다른 과목은 다 만점이었지만 국어로 인해 난 재수를 결심했다. 부모님도 당연하게 여기는 듯 했다. 고3때 쓰던 폴더폰을 다시 개통하고 초기화를 시켰다. 젠장, 누나 번호를 적어두지 않았단걸 깨달은 건 초기화버튼을 누르자 마자였다. 등신, 바보천지, 수능도 못 보고 번호도 날리고 이게 뭐야. 수학학원을 찾아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날 믿어주시던 선생님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무서워서. 혹시 누나를 마주쳐 나에게 수능 잘 봤냐는 말을 건넬까봐. 그렇게 난 비겁하게 강남의 D학원으로 도망치듯 등록원서를 내밀었다.

난 재수 때 수학을 가장 적게 했다. 국어가 겁나기도 했지만, 자꾸 어려운 문제를 마주치면 누나의 글씨체로 쓰인 f(x)가 눈앞에 아른거렸고 내 상상과 섞인 샴푸내음이 코를 간지럽혔다. 그래서 난 국어와 영어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누나를 생각하고 공부를 하고 또 누나를 생각하고 공부를 하고 지내는 와중에 들은 노래가 브로콜리너마저의 유자차이다. 그래서 난 어느 카페를 가든 늘 유자차를 주문하곤 한다. 이 얘기는 차치하고, 다시 다가온 수능은 작년과 달랐다. 국어도 쉬웠고, 수학은 그저 그랬고, 영어는 무난했고, 탐구는 살짝 아쉬웠다. 집은 축제 분위기였다. 형도 살짝 눈물을 보이며 지갑에서 30만원정도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었다. 아버지는 이미 자기 아들 두 명 모두 Y대에 보냈다며 기쁨이 코 끝에 초승달처럼 걸려 계셨다. 원서를 써야 하는 한겨울이 다가오고 원서접수 첫날, 사이트를 켰다. Y대의 모든 학과에 지원가능 하다는 글자를 보고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기도 했다. 한국사를 칠걸 그랬나 하는 오만한 생각도 잠시 했다. Y대 원서를 쓰려고 이름을 친 순간, 당시 끼고 있었던 이어폰에서 유자차 노래가 흘러나왔다. 랜덤재생이었다. 나도 모르게 원서 사이트를 닫았다. 난 운명을 믿지 않았지만, 그 때만큼은 이게 운명인가 라는 착각을 했었다. 나도 모르게 코트를 걸쳐입고 고려대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난 그 때까지 단 한 번도 고려대를 밟아본 적이 없었다. 캠퍼스, 지금도 느끼는거지만 참 예뻤다. 한바퀴를 쭉 돌았다. 더 예뻤다. 코에서는 누나의 샴푸 내음이 났다. 사실 거짓말이지만, 난 그렇게 자기최면을 걸었다. 노래가 흘러나온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려는 천덕스러운 짓을 하기 시작한거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에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에게 고려대를 쓸거라고 말씀드렸다. 가족들은 다들 너가 Y대를 가고 싶어하는 줄 알았다며, 갑자기 왜 그러냐면서 엉뚱해했다. 형은 열을 펄펄 냈다. 난, 그냥, 기숙사 생활도 별로고, 신촌에 오래 살아서 다른 동네에서 놀고 싶단 핑계를 댔다. 반대는 거세지 않았기에 난 자연스럽게 고려대에 입학하게 됐다. 설날엔 친척들로부터 장난섞인 구박을 받기도 했다.

누나를 만났냐고? 솔직한 내 대답은 '아니'다. 일부러 난 이과캠에서 열린 강의를 신청해서 이번 1학기에 고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나를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방학이 다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난 사실 내가 느꼈던 운명을 잃고 싶지 않았다. 내가 느꼈던 누나의 감정과, 내게 마침 흘러들어온 그 노래나 모든 것이 우연을 가장한 운명처럼 느껴져 거기에 내가 개입하면 영영 누날 잃게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딱 한 번 누나 이름을 페이스북으로 검색해본 적이 있다. 흔한 이름 때문일까, SNS를 하지 않아서일까 실패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철없는 21살의 짝사랑, 흔히들 말하는 운명의 상대를 기다린다는 착각은 오늘부로 끝났다.
알바가 끝나고 가방에서 가디건을 꺼내 입은 뒤 집으로 향했다. 날씨가 쌀쌀했다. 그래서 누나가 생각났다. 이제 운명을 기다리기엔 지쳤나보다, 난 바로 내가 다니던 수학학원으로 향했다. 선생님은 내 멱살을 잡고 흔드시며, 이 놈의 자식, 수능 끝나고 연락도 없고, 수학 망쳤나 싶어 연락도 못했다! 라고 소리치셨다. 난 죄송하다며 옆 편의점에서 산 비싼 커피들을 우르르 내려놓고, 고려대에 갔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의아하게 쳐다보시며, Y대 Y대 노래를 부르던 녀석이 왜 갑자기 고대생이 됐냐며 물으셨다. 난 그냥 재수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둘러댄 뒤, 누나 얘기를 꺼내려던 찰나, 선생님이 그러셨다. 그럼 OO이 후배네! 라고. 선생님은 번호를 주시며 밥이나 한번 사달라고 연락해보라 하셨다. 저장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속 누나는 여전히 예뻤다. 뭐라 보내야할까. 누난 날 기억할까. 여전히 그 샴푸를 쓸까. 여전히 글씨는 예쁠까. 가을, 아니 겨울 때여도 좋으니 누나 손을 잡고 캠퍼스를 거닐 수 있을까. 난 이제 운명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 누나, 저 기억나요? 라는 글자를 치고 전송버튼을 눌렀다. 난 유자차를 듣고 있다.




출처 * 고대 대나무숲 : https://www.facebook.com/koreabamboo/posts/50609531626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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