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변화는 그 때를 살았던 각 개인의 크고 작은 (실존적) 결정과 행동이 결국 역사의 큰 물줄기로 유입되면서 세태를 뒤바꾸는 것으로 절정에 치닫는다.
이렇기에 그러한 변화, 개혁, 혁명의 과정에 참여해 크고 작은 역할을 한 모든 이들이 다 소중한 것이다. 투쟁현장에서 경찰의 체포에 맞서 싸운 대학생들의 힘찬 외침 뿐만 아니라, 영화제에 참석한 배우들이 가슴에 단 작은 세월호 리본 역시 세상을 바꾼 물줄기의 일부인 것이다. 이렇기에 각자 자기가 위치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찾아서 하는 것의 소중함이 있는 것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가 그야말로 ‘초인적 영웅상’으로 광주항쟁을 다뤘다면, ‘1987’은 각기의 현장에서의 각 개인의 크고 작은 결단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음을 보이는 영화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대중들은 이제 ‘다양한 실존적 인간이 작용하는 투쟁’영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결과 나온 작품인 것이다. 과거 같으면 상황을 주도하는 영웅이 없는 이런 영화는 ‘산만해서’ 관객들이 집중을 못할 터인데, 대중들이 투쟁의 다양성을 많이 경험 해 온 덕에 이런 수준의 영화를 접할 수 있게 된 듯 하다.
사실 영화는 '대중성'에 기반하기 때문에 인간이 지향해야 할 바를 선구적으로 드러내는 청사진이 아니라, 작금의 우리의 욕망을 반영하는 지극히 보수적이며 결과론적인 습관의 창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야 우리 영화에서 투쟁을 다루면서 인간군상의 '다양성'과 '실존'을 이렇게 담아낸 것이다. 그나마 뒤늦게라도 이런 시도가 이뤄진 것에 대해서 환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사회는 진보, 민주 운동한다는 이들이... 이
뉘늦은 영화적 시도에도 못미치는 정신을 가진 이들이 가득하다. 자기 방식과 같이 생각하고 활동하지 않으면 싸잡아서 비난하고 비하하는... 다양성을 부정하고 획일성을 지향하는... 초인적 영웅상을 갈구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하여 그러한 영웅상에 어떤 인물이 부합하면 합장하고 나서고, 아니면 개차반 만들면서 자신의 분노를 다 풀어 놓는다.
이는 현재 다음의 두 가지 모습으로 우리 현실에 드러나고 있다. (1)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극단적인 지지로 문재인 정책에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보이는 소성리 할매들과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분노를 막 풀어 놓는 이들과 (2) 문재인 정부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로 문재인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망하라고 거의 굿하듯이 하는 이들에게서 보여지는 행태이다.
1987 영화를 보면서 울지만 말고, 인간은 다양한 모습으로 현실에 참여하고 각자의 색깔로 역사의 물줄기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 했음에 대해 그 다양성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즉 (1)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되 잘 못하는 정책까지를 두둔하면서 사드반대자들과 거리투쟁 노동자들 등을 비난하는 추태 부리지 말고. (2)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되 순수한 열망으로 변화를 바라는 (단순히 지지한다는 의미의) 문통을 지지하는 이들 까지를 적으로 돌려 서로 간에 소모전을 벌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