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 단조 크리마"
힘든 일이 있으면 암송하라고 알려준 진언이다.
입으로 소리 내지도 말고,
종이에 쓰지도 말고,
오직 마음속으로만 외우라 했다.
그리고 필요할 때 스물세 번 암송하라 했다.
스물세 번을 넘기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고,
그녀는 마치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집중해서 암송한다면 스물세 번을 넘길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정말 그랬다.
스물세 번째 암송이 끝나면 시야가 살짝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시야가 밝아지면..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길의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도로의 한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뜻 보면 마치 택시나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나에게 진언을 알려준 이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한다.
은발이 무척 잘 어울렸던 노년의 여인이라는 사실과,
내가 그때 그녀를 친근하게 느끼고 있었다는 정도가 내가 기억하는 전부다.
참고로 나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두 분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누구였을까?
그래, 그건 어쩌면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꿈처럼 흐릿한 그 기억의 끝자락.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검은 옷을 입은 그들이 설사 아는 척을 하더라도 무시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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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이 잘 해결될 것이라는 말은 정말이었다.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 진언을 암송했고,
그러면 복잡했던 일은 거짓말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 번은 회사 일로 해외 출장이 잡혀 있었다.
회사에서 준비하고 있는 사업의 사전 협상을 위해 상무급 임원과 함께 나가는 중요한 출장이었다.
임원과 함께하는 출장은 비자 발급에서 시작해서 비행기 티켓팅, 호텔 예약까지 비서실에서 준비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출장 하루 전 부서 내 회식이 잡혔고,
다음날 늦잠을 자고 말았다.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시간은 오전 8시가 조금 넘어 있었고,
5시 반으로 맞춰둔 전화기의 알람은 꺼져있었다.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 3시간 남짓 남아있었다.
그리고 인천공항에서 상무님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 20분 전이었다.
5분 만에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며 진언을 암송했다.
택시에 올라타고 상무님에게 전화를 하려고 하는 순간 전화기가 울렸다.
함께 출장을 나가기로 한 상무님이었다.
접촉사고가 나서 늦으니 각자 체크인을 하고 비행기 탑승 게이트에서 만나자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였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비행기 출발 현황판을 확인했다.
'2시간 지연'이라는 표시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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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퇴근길 거리는 어두웠다.
토요일인 내일 오전.
고향 친구들과 스키 리조트에 만나기로 약속이 잡혀 있었다.
주말 내내 많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고,
단톡방에는 스키와 보드 타기는 글렀다는 아쉬움 섞인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리조트 숙소를 예약한 녀석의 예약 취소 불가를 알리는 글이 떴고,
숙소에서 낮술이나 마시자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우산을 어깨에 걸친 채로 걸으며 전화기를 두드렸다.
'다들 날씨 걱정은 그만하고, 스키랑 보드나 잘 챙겨 와.'
전화기를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내일과 모레 비가 그치게 해 달라는 생각과 함께 진언을 외었다.
스물세 번째 암송을 마치자 시야가 밝아지는 듯했다.
골목길의 모퉁이를 돌자 한 무리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검은 옷의 그들이 공포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특히 우산도 없이 빗속에 서있는 모습은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들이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그들로부터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은우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오른손을 그녀의 귀로 움직였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로 자신의 귓불을 잡아 보였다.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손을 내리며 다른 검은 옷의 사람들이 응시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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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우는 2년 전 헤어진 여자 친구였다.
이전 회사의 직장 상사였던 그녀와 나는 3년을 함께 했다.
결혼 이야기가 나왔고,
은우를 어머니에게 소개해주었다.
세상 모두가 반대해도 나의 편을 들어줄 것 같았던 어머니께서 결혼에 반대하셨다.
어머니를 설득해보겠다며 말다툼이 잦아졌고,
서운한 마음에 어머니와 소원해질 무렵..
나는 어머니의 말기암 소식을 들어야 했고,
암 선고를 받은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 은우를 만났을 때 죽은 어머니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나는 은우에게 잠시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다른 회사로 직장을 옮기면서 우리는 헤어졌다.
그녀와 함께 일했던 이전 회사에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었다.
사내 결혼은 허용, 그러나 사내 연애는 불가.
회사 내 다른 직원과 사귀더라도 주위 사람들에게 티 내지 말라는 의미였다.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은우와 나는 우리 둘만의 수신호가 몇 가지 있었다.
예를 들면, 손으로 코를 만지고 팔짱을 끼는 것은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였고,
엄지와 검지로 귓불을 잡았다 놓는 것은...
도와달라는 수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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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으며 검은 옷의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고,
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늘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은우가 서 있던 자리에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넣었던 전화기를 다시 꺼내었다.
은우의 번호는 지우고 없었지만,
나는 아직 그녀의 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EW로 이어지는 그녀의 전화번호 여덟 자리는 내가 오랫동안 사용한 인터넷 포털 비밀번호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며 생각했다.
2년 만에 전화를 해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수신음과 함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자기야! 나 다 왔는데!"
그녀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아- 다른 사람을 사귀고 있었구나.
지금 그 사람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를 그 사람으로 착각한 건가?
그녀의 거친 숨소리와 다급하게 뛰고 있는 그녀의 구둣발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전화를 끊으려 하는 순간 그녀의 의도적으로 높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야! 나 안 보여? 자기도 다 왔다고? 그래, 나는 도착했어! 이제 나 보이지?"
조금 전 도움을 요청하던 그녀의 수신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여기야! 여기! 너 지금 보이는데! 나 안 보여?"
"어디? 어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여기야! 여기! 은우야!! 은우야!! 나 안 보여?!"
그녀의 대답이 없었다.
"은우야!! 은우야!!"
잠시 후 그녀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워. 이제 간 것 같아."
그리고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그때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길로 나갈 때까지 끊지 말고 잠깐 기다려줄래?"
"어.. 그래.."
그녀의 규칙적인 구둣발 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한참이 지나 그녀가 말했다.
"정말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
"응. 그냥 그렇지...... 그런데... 방금 전.. 무슨 일이야?"
그녀의 이틀 전부터 퇴근길에 자기를 따라오는 사람을 느꼈다 했다.
그래서 오늘도 한 남성이 자신을 따라오는 걸 느낀 그녀의 원룸이 아닌 다른 길로 빠졌다고.
큰길 방향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인적이 없는 좁은 길로 들어섰고,
길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남자가 그녀를 향해 뛰기 시작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고 했다.
남자는 전화통화를 하는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안부를 묻는 짧은 대화가 이어졌고,
은우와의 2년 만의 통화는 그렇게 어색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
다음날.
나는 계획대로 고향 친구들과 함께 스키장을 찾았다.
물론 토요일과 일요일 비가 오지 않았고,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월요일.
회사에서 퇴근할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은우였다.
그녀는 고맙다며 밥 한 끼 사고 싶다 말했고,
우리는 다음날 저녁 식사를 위해 약속을 잡았다.
다음날.
은우는 식당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유쾌한 성격 역시 여전했다.
그녀는 나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말했다.
"있었으면 이렇게 누나를 만나러 나오지 않았겠지?"
나의 대답에 그녀의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어머.. 그럼... 나만 나쁜 사람 된 거네."
그녀의 대답에 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제 저녁 그녀에게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두근거리던 가슴에 찬물이 끼얹어진 것 같았다.
순간 그녀가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너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해? 너 아직도 나 좋아하는구나!"
나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무.. 무슨 소리야?"
"하하. 장난이었어. 사실 나도 만나는 사람 없어."
나도 모르게 바보처럼 웃음이 나왔다.
"하여간 사람 들었다 놨다 하는 건 여전하구나."
식사를 하며 은우는 말했다.
자신을 따라오던 남자가 경찰에 잡힌 것 같다고.
그리고 나에게 지난주 토요일 뉴스를 봤느냐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난 주말에 고향 친구들이랑 놀러 갔었어. 그런데 경찰에 잡힌 건 어떻게 알았어?"
"뉴스 보고 알았어... 뉴스에서 경찰들에게 잡혀있는 모습이 나왔는데, 붉은색 점퍼 보고 알았어."
그녀는 식사를 하던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지난주 금요일 생각하면 아직도 손이 막 떨려. 그때 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기도 싫어."
나는 그녀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그녀를 그녀의 원룸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녀는 혼자 원룸에 들어가기 무섭다며 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녀의 방은 2년 전 그대로였다.
외투를 벗은 은우는 나에게 안겨왔다.
그녀의 살 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녀와 관계를 가지고 우리는 그녀의 좁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가 말했다.
그때 골목길에서 그렇게 무서웠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나였다고.
그래서 마음속으로 나의 이름을 불렀고,
그리고 정말 마법처럼 나에게 전화가 왔다고.
그녀는 나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동화에 나오는 왕자님이 나를 구해준 기분이야."
그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나의 품에 안겨왔다.
그녀와 다시 사랑을 나누었고,
관계 막바지 나의 머릿속에 비서실에서 일하는 현정 씨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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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우 누나를 다시 만난 그날 밤.
왜 현정 씨가 머릿속에 떠올랐을까?
현정 씨와 내가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회사에서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도 아니었다.
지난번 상무님과의 해외 출장을 준비하며 두 번 만난 것이 전부였다.
비자 신청을 위해 여권과 관련 서류를 임원진 비서실에 제출할 때 그녀를 처음 만났는데,
나는 아직 그녀의 첫인상을 기억한다.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었다.
두 번째 그녀를 만난 것은 비자가 발급된 여권을 돌려받았을 때였다.
그때 현정 씨는 여권을 돌려주기 위해 나의 자리로 직접 찾아왔었다.
그날 저녁.
내 옆자리의 과장님이 퇴근 후 나를 따로 불러냈다.
과장님은 나를 꽤 근사한 일식당으로 데려갔고,
식사를 하며 조금은 불쌍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동안 자신이 섭섭하게 한 것이 있더라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무슨 말이냐는 나의 물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말라는 과장님의 대답...
이런 뚱딴지같은 대화가 한참을 오가고 나서야 과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임원진 비서실은 여권을 가져가라고 호출을 하는 곳이지 일개 사원급 직원에게 배달을 해주는 곳이 아니라고.
비서실 직원이 건물 반대편에 위치한 부서까지 직접 여권을 가져왔다는 것은 둘 중 하나라 했다.
여권의 주인이 임원이거나,
아니면 곧 임원이 될 사람이거나.
나는 웃으며 말도 안 되는 오해라고 말했지만,
과장님은 여전히 믿지않는 표정이었다.
아마도 과장님과의 에피소드 때문에 현정 씨의 얼굴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비서실의 현정 씨가 퇴사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현정 씨는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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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이 지나고,
나와 은우는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을 올린 후 진언을 암송하는 일이 점차 줄어들었다.
진언의 효과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진언을 외우고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진 적도 있었다.
한 번은 주말에 아내와 함께 외출을 한 일이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내의 기분이 좋지 않았고,
내가 기분을 맞춰주려고 노력했지만 아내의 기분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
우리는 장을 보러 갔다.
아내는 피곤하다며 집으로 가자 했지만 당장 내일 먹을 음식이 없었다.
빨리 살 것만 사서 집으로 가자고 아내를 설득해 대형 마트에 들를 수 있었다.
장을 보는 내내 아내는 표정이 좋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수입 맥주를 집어 들었을 때 아내는 내뱉듯 말했다.
"그거 사고 싶어서 장 보러 오라고 했지?"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에이, 아닌 거 알면서.."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래, 맞아. 이게 너무 먹고 싶어서 오자고 했어. 우리 누님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번만 봐주세요."
아내는 말없이 카트를 밀고 계산대를 향해 걸었다.
나는 뒤에서 그녀를 따라가며 장난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휴, 정말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아내는 고개를 획 돌려 나를 노려보았다.
"아니, 아니, 농담이야."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야."
"알았어. 미안해."
나는 뒤에서 아내를 따라 걸으며 속으로 진언을 외웠다.
23번째 진언을 마치고 시야가 밝아지는 순간.
나의 뒤에서 날아든 묵직한 과자 상자가 아내의 뒤통수에 명중했다.
아내는 천천히 뒤로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미간에 경련을 일으키며 나를 노려보는 아내의 눈빛.
그녀 눈빛에 어린 살기(殺氣)에 나의 몸과 마음은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렸다.
그날 밤.
나는 안방 침대가 아닌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잤다.
아내의 거듭된 사과에도 나는 일주일 동안 아내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내와 말을 섞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아내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으며 나는 결국 마음을 풀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아내가 내가 잘 모르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아내와 나 사이에 또 다른 일련의 일들이 있었고,
그런 일들로 인해 우리는 결국 갈라서게 되었지만,
은우와 나의 불행한 결말의 시작점은 그날 마트에서의 날아온 과자 상자였음을 나는 부정할 수 없다.
==
돌싱으로서 생활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기본적인 요리와 집안일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굳이 어려움을 꼽자면 심심함이었다.
혼술로 주량만 늘었다는 나의 말에 가까운 친구 녀석은 그게 심심함이 아니라 외로움이라 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맞는 것 같다고.
술이 적당히 들어가고,
친구가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늦기 전에 헤어진 아내를 만나보는 것이 어떠나고.
은우와의 이혼 과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이혼이라는 표현이 웃기긴 하지만 그녀와 나의 마지막은 잡음 없이 깔끔했다.
아마도 이혼을 준비하면서 은우가 많은 것을 양보한 탓일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회사 가까운 곳에 작은 오피스텔을 구했고,
오피스텔의 전세금 일부를 내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그녀는 우리가 살던 집의 소유권을 포기했다.
은우는 자기 때문에 우리가 이혼한 것이라 생각했고,
마지막까지 나에게 미안해했다.
친구의 조언대로 나는 은우에게 연락을 했다.
반가운 목소리의 그녀.
그녀를 만나 즐거운 저녁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녀에게 자주 이렇게 만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
은우와 이혼 후 진언의 효력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혼자가 되고 마음과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진언을 사용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어느 주말 오후.
시내의 서점을 들러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지하철역에 들어서자 살살 복통이 시작되었다.
점심으로 먹은 초밥에 문제가 있었나?
견딜 만했다.
그대로 지하철을 탔고,
시간이 흐르자 지하철의 진동 때문인지 복통이 점점 심해졌다.
이대로 집까지 갈 수 없다는 판단과 함께 지하철에서 내렸다.
마침 내린 역은 오래전 은우와 사귀던 시절 은우가 살던 원룸에서 가까운 역이었다.
그래서 다행히도 화장실 위치는 알고 있었다.
남자 화장실에는 대변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 나 말고도 세 명이 더 있었다.
하늘이 노래진다는 표현이 무슨 말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진언을 외웠다.
시야가 밝아지는 순간.
내 바로 앞에서 기다리던 노인이 여자 화장실을 향해 걸걸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자 화장실에 사람 없습니까?"
대답이 없었다.
노인은 다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아무도 없으면 잠깐 실례 좀 합시다."
노인은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며 나에게 말했다.
여자 화장실로 누군가 들어가면 못 들어가게 막아달라고.
노인이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자 노인 앞에서 기다리던 남성이 잠시 눈치를 보다가 노인을 따라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내 앞의 사람이 세 명에서 한 명으로 줄었고,
이내 남자 화장실 대변보는 두 개의 칸에서 문이 동시에 열렸다.
노인의 부탁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대로 대변보는 칸으로 들어갔다.
느긋-하게 볼 일을 보고..
손도 깨끗이 씻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화장실 밖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울고 있는 젊은 여성,
그 여성을 달래고 있는 연인인 듯한 남성,
지하철 공익근무요원,
두 명의 남성과 각각 이야기하고 있는 두 명의 경찰,
그리고 수군거리며 그들을 구경하는 사람들.
순간 경찰과 이야기하던 노인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저 사람이야! 그래 저 사람!!"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몰렸다.
나는 당황했다.
공익근무요원이 나에게 걸어와 나의 팔을 잡고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노인과 이야기를 마친 경찰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 사이 노인이 다시 나를 향해 걸걸한 목소리로 외쳤다.
"젊은 사람이 말이야! 내가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그걸 무시하고 말이야! 그럼 안 되는 거야!"
"아니.. 제가.. 뭘 어쨌다고.."
그때 경찰이 나에게 말했다.
"역내 지구대에 함께 가주셔야겠는데요."
경찰의 말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네? 제가 왜..?"
그때 우리를 구경하던 사람들 중 한 여성이 다가와 나를 가리키며 경찰에게 말했다.
"저, 경찰 아저씨, 제가 이 분을 잘 아는데요. 이 분이 그런 짓을 할 분이 아니세요."
나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상황 파악이 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 여성의 등장으로 나는 다시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저기.. 누구신데.. 제가 그런 짓을 안 한다는 거예요?"
막상 말을 하고 보니 내가 한 말이 이상했다.
경찰을 보고 말했다.
"아니.. 제가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이 아니고요. 저기, 저는.."
경찰은 나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일단 지구대로 가서 이야기하시죠."
경찰 지구대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험상궂은 인상의 경찰이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범죄자들을 윽박지르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경찰 지구대의 내부 모습은 나의 상상과는 달리 그저 한산한 사무실 같아 보였다.
그리고 조서를 작성하는 경찰은 타자 실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능숙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경찰의 설명은 간단명료했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남성 두 명은 경범죄로 약식기소될 것이고,
피해자 여성은 정신적 충격에 대해 민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했다.
그리고 아무도 여자 화장실에 못 들어오게 해 달라는 노인의 부탁은 일방적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과실이 없다 했다.
노인은 나 때문에 범죄자가 되었다고 흥분했고,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노인의 말을 끊고 노인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이게 벌금으로 끝날 수도 있는데요. 상황이 심각해져서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될 수도 있어요. 그럼 할아버지께서 이분에게 부탁한 사실이 정상 참작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분이 증언을 거부할 수도 있어요. 사실 평일날 법원에서 증언 한두 마디 하려고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게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거든요."
경찰의 말에 노인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거, 젊은 사람이 좀 기다려주지 그랬어."
경찰 지구대에서 나왔고,
문 밖에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 내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경찰에게 말을 해준 그 여성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아까는 미안했어요. 제가 어떤 상황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미안해요."
따뜻하고 편안한 그녀의 인상.
다시 보니 아는 얼굴 같았다.
나는 말했다.
"저.. 우리 서로 아는 사이인가요?"
"6-7년 전에 제가 ㅁㅁ실업 비서실에 있었어요. 혹시 지금도 그곳에서 일하시나요?"
"아! 현정 씨. 현정 씨 맞죠?"
그녀의 이름을 말하면서도 내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도 놀랐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잠깐 시간이 되느냐 물었고,
우리는 지하철 역 안에 위치한 작은 커피가게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찰 지구대에서 오간 이야기를 들을 그녀는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작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으니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자신에게 꼭 알려달라고.
나는 그녀의 명함을 확인하며 말했다.
"고마워요. 그럼 그때 로스쿨 준비하려고 퇴사하신 거예요?"
"아.. 그건 아니고요.. 그때는... 좀..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있었어요."
그녀의 어두워진 표정에 나는 퇴사한 이유를 물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짧은 대화를 마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녀는 근처에 살고 있다며 지하철 역 출구를 향했고,
나는 다시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개찰구 안으로 들어갔다.
신기한 일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현정 씨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녀의 얼굴부터 떠올랐다.
회사 사무실 반대편 내가 사원 시절 앉았던 자리가 눈에 들어오면,
6년 전 나에게 여권을 건네며 방긋 웃어준 현정 씨가 떠올랐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나도 모르게 그녀의 명함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는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우리는 저녁 약속을 잡았고,
다시 며칠이 지나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처음인데도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편안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는 그녀의 오피스텔에 바래다주었다.
그녀가 사는 오피스텔 건물은 지하철 역 바로 앞 큰 대로변에 위치해 있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도로 소음으로 시끄럽지 않느냐고.
그녀는 웃으며 이제 적응이 돼서 괜찮다고 말했다.
그렇게 첫 만남을 가지고 현정 씨와 나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주말이면 만나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한강공원을 걸으며 처음 손을 잡았고,
영화관에서의 첫 입맞춤,
그리고 키스와 진한 스킨십까지..
마흔을 바라보는 이혼남의 연애는 20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 늦은 저녁.
이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시간.
나는 현정에게 말했다.
보내고 싶지 않다고.
같이 있고 싶다고.
그리고 우리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조금 외진 곳에 있어서 버스에 내려 어두운 골목길을 한참 걸어야 했다.
항상 한적한 골목길이긴 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이 없었다.
잡고 있던 현정의 손에 땀이 차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말했다.
"손에 무슨 땀을 이렇게 흘려?"
나의 말에 그녀는 흠칫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되물었다.
"응? 뭐라고?"
"손에 땀이 많이 나는 것 같아서..."
"아.. 그런가?"
그녀는 잡고 있던 손을 빼내어 그녀의 옷에 땀을 닦아냈다.
내가 그녀의 손을 다시 잡았을 때,
그녀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괜찮은지 물었고,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미안하다며 그녀의 오피스텔로 돌아가고 싶다 말했다.
그때 나는 그녀가 남자 경험이 없어 긴장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었다.
현정은 내가 사는 아파트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있었다.
전 부인과 함께 살았던 집이었다.
현정과 혼인 신고를 하고 살림을 합치며 우리는 아파트를 새로 구하기로 했다.
그녀와 나의 직장 위치를 고려해 우리는 알아본 집들 중 두 개의 아파트로 압축할 수 있었다.
하나는 조금 낡은 아파트였는데 큰 대로변에 위치해 있었고,
다른 하나는 비교적 조용한 동네에 위치한 신축 아파트였다.
현정은 낡은 아파트가 좋다 했다.
물론 신축 아파트가 비싸긴 했지만 나와 현정의 벌이를 고려하면 대출을 받아 충분히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신축 아파트가 마음에 들었던 나는 현정을 설득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기에 우리는 조금 더 알아보기로 했고,
결국에는 그녀와 나 둘 다 만족하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현정과 함께 살아가며 그때 그녀가 왜 그 낡은 아파트를 택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녀는 큰 대로변의 집을 선호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 겪은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는 평생 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그녀에게 떠올리기 싫은 상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묻지 않았다.
아내에게 그 이유를 직접 들은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내가 밤에 나가기 싫어하는 거.. 자기도 이미 알고 있었지?"
"그렇지.. 내가 좀 둔한 편이어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고마워."
"고맙긴.."
잠시 침묵이 흐르고 아내는 입을 열었다.
"궁금하지 않아?"
"음.. 궁금하긴 한데... 그런데 당신 이야기하기 힘들까봐..."
"아직 힘들긴 한데......"
"그럼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니 해주고 싶어... 그래서.. 아까 이야기를 꺼낸 거야."
그리고 아내는 아직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금요일 저녁.
현정은 회사에서 잔업을 마무리하고 그녀의 원룸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그녀가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고 뒤에서 따라오는 누군가를 인지한 순간..
우산을 들고 있는 그녀의 오른팔 아래 옆구리에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고 했다.
그녀는 그대로 꼬꾸라졌고,
붉은색 점퍼를 입은 손아귀에 멱살과 머리채를 잡혀 건물과 건물 사이 어두운 구석으로 끌려갔다고 했다.
그곳에서 외투에서 시작해 옷이 하나씩 벗겨지는 와중에도 극심한 복부의 통증으로 저항은 커녕 살려달라는 말 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는 아내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그 일이 있고 그녀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래쪽 갈비뼈가 부서져 2주 넘게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정신적 충격으로 한동안 혼자서는 외출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때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면 그녀는 어쩌면 영영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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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렀고,
내 나이 50대 중반을 넘어선 어느 날.
나는 퇴근을 하고 운전을 하며 집으로 가고 있었다.
문득 진언을 외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마음속 고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냥 그러고 싶었다.
작은 교차로 앞에 멈춰 섰을 때,
나는 진언을 암송했다.
시야가 밝아지면서 자동차 창문 맞은편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중 한 명...
비록 늙고 야윈 모습이었지만 나는 은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오른손을 움직여 그녀의 코를 만졌고 이내 자세를 바꿔 팔짱을 끼었다.
잠시 후 그녀는 팔짱을 낀 채 검은 옷을 입은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시야에서 사라졌다.
교차로의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고,
내 앞의 차량들은 출발해 교차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수신호의 의미를 기억한 나는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내 뒤에 기다리는 차들의 경적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교차로의 우측에서 덤프트럭 한 대가 신호를 무시한 채 엄청난 속도로 교차로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집에 도착해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은우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였다.
잘 보내주고 오라는 아내의 말대로 나는 회사에 사흘간 휴가를 냈고,
은우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20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던 은우의 남동생을 자연스럽게 처남이라 부르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은우가 나에게 남긴 유언장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한번 맺은 부부의 인연이 이혼이라고 적힌 종이 한 장으로 간단히 끊어지는 게 아닌 것 같다고...
은우는 나에게 진 빚이 많아 미안하다는 짤막한 말을 유언장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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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내인 현정과 행복했던 순간들이 오래된 영화관의 영사기 화면처럼 스쳐 지나기 시작했다.
빠르게 흘러가던 화면들이 점차 느려지며 멈춰갈 무렵..
나의 메마른 입술에 현정의 입맞춤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정의 차분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야.. 내 말 잘 듣고 기억해... 살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마음속으로 암송해. '옴 단조 크리마.. 옴 단조 크리마..' 이렇게 스물세 번 암송해. 이 진언은 절대 입 밖에 내면 안돼. 글로 적어서도 안되고. 그럼 진언의 효력이 당신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가버리거든. 그리고 혹시 검은 옷의 사람들이 아는 척을 하면 그냥 무시하도록 해."
< 끝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