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전남자 결혼식 깽판치고 왔습니다.
게시물ID : gomin_14335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hrtkdgody
추천 : 8/27
조회수 : 7775회
댓글수 : 29개
등록시간 : 2015/05/18 11:42:36
옵션
  • 본인삭제금지
20대 여성입니다. 5월 17일 낮12시 춘천 도착 
네 어제 일입니다. 2년동안 사귀었던 전남자 결혼식장 깽판치고 나왔어요.



2012년 막바지 겨울 12월 소개를 통해서 한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때당시 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평범하게 살고있엇습니다.
오래된 친구를 통해 소개를 받고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그남자는 저보다 한살 위로 인천 모 헬수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엇지요 그당시.
첫 느낌은 순수해보였어요. 자기 일에도 열정을가지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응원해주고 싶고 옆에서 격려해주고 도와주고싶었어요.
처음 그남자 집으로 놀러를 갔는데. 4평 남짓한 원룸골방에서 이불도 제대로 없이 생활하더군요.
그때당시 월급도 뭐 기본 생활도 안되는 만큼 받으면서 일했죠.
마음이 아팠어요. 운동하는 사람이 새벽 부터 나가서 일끝나고 자기 운동도하고 새벽에 다되서야 들어오는데 여름 차렵이불 한장이라니요. 그날 이후로 두툼하고 따듯한 이불한채 사들고 무작정 연고지도 없는 인천으로 이사를 왓습니다. 동거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옆에서 도와주고싶었거든요.
저는 그냥 평범한 직장 여성이였습니다. 가진것도 없고 물론 그 사람도 시작하는단계라 서로 가진게 없었지요. 그래도 마냥 좋았습니다.
부평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게 되자 힘이 들었어요. 뭐 다들 출퇴근하고 한다지만
전 모든지 그남자에게 맞췄거든요. 제가아니라 그남자요 
특수성을 띈 직업을 가지고 있잖아요. 식단 혹은 시간 모든게 일에만 치중되어있는 남자였어요.
제가 옆에서 도와줄수 있는건 힘들게 일하고 들어왔을때 따뜻한 밥한끼. 편안하고 쉴수있는곳. 그리고 조금 욕심 내자면 같이 힘들고 같이 행복하자.
일을 하루에 15시간이상을 센터에서 보내는 그사람 안쓰러웟어요.

제 일과는 일이끝나고 버스를 타고 집에도착하면 밤10시정도. 그사람 운동복이며 집안청소 뭐 그런것들 하다가 보면 12시되면 집구석 들어와서 제가 차려준 밥 먹고. 씻고 자고.
전 그때부터 그사람이 내일 처먹을 도시락 4끼를 준비해야하기때문에 항상 새벽 3시쯤 잠이들면 6시면 다시 일어나 출근하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사실 결혼한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이러고 있지만 그래도 힘들잖아요.



지금에와서 서운함 말해봅니다
연애 2년이란 기간동안 데이트라곤 동네 집앞 영화관이 다였습니다.
단한번도 투정부린적도없고 서운해도 내생일 못챙겨줘도 우리 기념일 까먹어도
집에 자주 안들어와도 항상 존중하고 응원해줫어요.
어디한번 바람쐬고싶어도 그사람 바쁘니까. 하루 운동 빼먹으면 안되니까
시합때 우승 메달한면 목에 달아주고싶었으니까. 
하루하루 운동끝나면 팔두께는 얼마나 커졌는데 하체는 얼마나 더 두꺼워졌는데 
줄자가지고 매일매일 인치 제주면서 덕담도해주고 자신감더 불어넣어주고 그냥 그사람한테
해줄수 있는 모든거 뒷바라지하는게 행복했어요.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2014년 2월.



서울로 출퇴근하기 힘들자 일을 쉬고 인천쪽에서 구했는데 막상 오래다닌 직장을 때려치우고
새로운 직장을 구해서 일한다는게 쉽지 않더라구요. 알바식으로도 일해보고 직원으로도 일해보고 그러나 몇달을  버티질 못하겟더군요. 
제나이 26살 어떻게보면 많이 먹은나이지만 한없이 저한텐 힘들었어요
살림과 일을 병행한다는게 막말로 결혼한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다가 임신을 하게되었습니다.
전 기뻣어요 사실. 너무 좋았어요. 그남자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엇고 수입도 원만한 회사원 월급 2, 3배 정도였으니가요 둘이만나서 셋이 될수있겠다.
일자리도 불안정하고 관계도 소원해진거 같은 느낌을 여기서 새롭게 출발할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근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임신했다고 말하니깐 첫 마디가 뭔줄아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수님도 실패번번히 하고있고, 지금 센터 분위기도 안좋고 사장님도 아이때문에 속상하실텐데
우리가 아기가졌다고 어떻게 말하녜요 말못한대요 자기는.
???????????????????????????????????????????????????
뭔 개똥 처먹는 소리인가
그때당시 그남자나 사장이 결혼하고 아이가 안들어섯었거든요 뭐 시험관도 하고 여러가지한다고
저에게 그랬어요. 많이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아니 내가 임신했다는데 사장이 애 아직 못만들은게 내탓인가.
말돌리더군요. 바로 중절수술 시키고 싶어 안달하는 표정. 
회유하더라구요 바로 지금은 때가 아니다. 아직 준비가 되지않았다. 나중에 더 성공해서
아이 낳자.



당시 죽이고 싶을정도로 정떨어지더군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남자인데. 아이낳고 그사람이 절 싫어할것 같았어요
그래 지금 아이낳고 힘들게해서 이남자 한테 조금은 부담감 덜어줘야하나...
아빠가 기뻐해주지도 않는 아이 어떻게 나아서 혼자 기를수있을까
그때부터였죠.
참을수 없는 감정조절. 우울증 찾아온 여러가지 변화들


심지어 중절수술하는곳이 지가 일하는 곳 에서 걸어서 4분 거리도 안되었는데. 
그 수술 저 혼자 했어요. 눈오는 겨울 2014 2월. 네 작년 2월이요
수술 왜 혼자 했냐구요.
일이 바쁘데요. 사장이 기분이 안좋다고 센터 다시 내려가봐야한다고 수술다끝나고
회복실에 잇으면 집에 데려다주러 다시 온다더군요.


그쵸 ㅋㅋ 사실 쫌 모자른게 저긴하네요. 여태까지 그사람 배려해주느라
제가 사람대접 못받고있다는거에 대한 자각마저도 없어진 상태였어요. 
'아. 그사람 바쁜게 당연하지 맞다'
예전에 집에 동화책대신 위인전이 많이있엇는데요 그 위인전 중에 신사임당이란 책 제일좋아했어요 아이라서 그게 누군지도 몰랏는데 장군들 아저씨들 할아버지들 그림만 잔뜩있는 위인전 중에 몇안되는 여성 인물이였거든요. 내조잘하고 똑똑하고 바른 여자.
당연한거였어요. 저에겐 남자가 밖에서 일하는데 여자가 부담주면 안된다.
그래도 속상하잖아요. 슬프잖아요 우리 아기잖아요.
그래서 한번만 같이 있어달라고 말하려 하는데.
하는말이 또 개드립 치더라구요

사장이 센터에와잇어서 자리를 비우면 안된다. 너 애지운다고 말을 어떻게하냐 못한다. 사장이랑 형수님도 아직 아이도없는데 어떻게 수술하냐고 얘기를 하냐 못을 박더라구요

혼자 쓸쓸히 받고 집에서 잤습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그게 2014년 2월 입니다. 설연휴에요

일때문에 바쁜 집안행사 , 잡다한 집안일들 그남자 어머니 재혼식 심지어 아들인 그새끼도 바빠서 늦게가거나 못간다고한 그런 재혼식 제가 어머니 옆에서 메이크업도해드리고 딸처럼 자식처럼 그남자에 모든것 제가 자식인마냥 아내인것마냥 열정을 다했어요. 그사람 일에 열정적 미쳐있다고햇죠. 전 그사람한테 열정적 으로 미쳐있엇어요. 
그새끼 꿈은 최고 보디빌더겠지만. 제 꿈은 그 보디빌더 아내가 되는게 꿈이였거든요.


그리고 점점더 망가지게 됬어요. 어느순간 집에도 잘안들어오고 핸드폰도 집에오면 잠궈놓고 
그냥 별거아닌 일에도 집착과 히스테리... 정떨어지는 여자로 변해있더군요 제가. 
마음은 그렇다고 쳐도 
몸이 망가지게됫어요. 처음엔 생리불순 골반통증 복통 
도대체 일을 할수가 없더라구요. 경제적은 능력은 점점 없어지고. 겹겹히 쌓인 우울증.
결핍....... 헤어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 4월 다시 서울로 올라왔어요. 
헤어짐을 통보하고 서울에서 차차 마음 추스리고 생활을 하려는 찰나
하혈을 시작하게됬어요. 왜 영화에서 보면 주르륵 허벅지 사이로 타고내려오는 피가아닌
폭포수같이 응고된 혈이 손바닥만하게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듣도보도 못한 하혈이요.


새벽에 아픈몸을 이끌고 신촌에 모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갔습니다.
하늘이 무너졌습니다.
중절수술로 인한 자궁 동맥 과다 파열 그걸 방치해 자궁을 들어내야한다고 하더군요.
죽고싶었어요. 난 그새끼를 위해 모든걸 희생하고 사랑한다는 마음하나로 그렇게 모든걸 줬는데

난 고작 26이란 나이로 임신도 못하게 된 몸뚱아리 하나 남았다니
우리 아이 때문에 난 벌을 받는거다. 달게 받아야한다.


일단 대학병원이라 비용도 만만치 않고 저희 엄마한테 말하자니 엄마마음에 못을박는거 같아서
주변에 도움을 청할때도 없고. 다시 그남자에게 연락했습니다.
몸이 이렇게 됬으니 도와달라.
그사람 일단 병원와서 몇일 지켜봐주더군요 죄책감 들었겠죠. 근데 병원에 있는 와중에도 여자문제로 마음을 찢어놓더군요 저랑 잠깐 헤어졌을때 만난 여자래요. 그래요 만날수있죠~ 헤어졌는데 다른 사람 소개 받을수 있어요 근데 나 병실에 그렇게 누워있는데 기집이랑 연락이라니요 마음은 또한번 수천갈래 찢어졌습니다. 병원비는 저희 엄마랑 반반씩 해서 지원해줬어요.

자궁을 들어내진 않았어요. 의사말론 아직 20대여성이고 호르몬불균형이나 여러가지로 봐선 그냥 동맥쪽 혈관수술로 대체를 하자구 하지만 임신을 해선 안된다고 그러면 자궁은 그때 확실히 들어내야 제가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더군요.
수술하고 치료하고 7월달이였습니다. 2014년 7월 한 여름

그남자가 다시 시작해보자고 잘하겠다고 하더군요 죄책감? 
순간 병신같았지만 믿었습니다. 엄마집에서 요양을하면서 다시 시작해나갈 생각으로 추스르고 잇었습니다. 그런데 다시한번 여자문제 생기더군요.

그게 어제 결혼시 깽판친 그기집년입니다.

그여자로 말할것 같으면 그남자 친구 전 여자친구였던 사람이고. 같은 트레이너 생활을 하는걸로 알고있어요. 같은 대학 후배라는걸로도 알고있고. 둘이 같은 지역 춘천 사람인거 알고있었습니다.

수술후 집에서 그사람과 휴식을 취하고 자고있는데.
새벽 3시반 
"오빠 나 잠이 안와 무서워서 깼어"
이한마다 카톡을 보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올게왔구나.
그남자 깨워서 해명을 하라고했죠. 그냥 직원이라고 트레이너라고 둘러대더라구요
그여자한테 전화해서 어떻게 된건지 해명하라고 했더니
그여자도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이런일 없게 만들겠다고 죄송하다고 하고 전화를 끊더군요


근데 제가 몸도 그렇고 우울증으로 예민해져서 여자 직원들 이겟거니 그냥
그렇게 더이상 상처받기 싫어서 믿지 않으려 알면서도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8월 다시 인천부평으로 이사가서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근데 치유가 되짛 않았어요. 더욱더 피폐해지고 그사람은 출장, 시합, 여러가지 일들
집에 일주일이면 3~4일씩은 들어오지않고 전 아픈몸 하나 연고지 아무것도 없는 인천에서
그사람이 오길 기다리면서 또 그사람이 맛있게 먹을 사골이나 끓이고 언제오나 기다리고 
새출발해보려고 회사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도하고 있을무렵

제 생일이 다가왔어요 10월.
생일 당일날 갑자기 일이생겼다면서 미안하다면서 천안으로 내려가봐야한다고하더군요
그기집년이 있는 곳으로
그때당신 몰랐어요. 울음 나오는거 꾹참고
2~3일 갓다와야하니 팬티랑 양말 옷가지들 예쁘게 가방에 싸주고 눈물나는거 꾹참고
내 생일 신경쓰지말고 오빠 다녀오면 우리 주말에 맛있는거 먹자 
억지 웃음까지 지어주면서 현관배웅해주고 텅빈방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ㅋ 바보넹

그리곤 점점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고 우울증은 손쓸방도없이 커졌어요.


어느날 제가 울면서 한번 얘기했습니다.
사랑하냐고 그러니 대답 못하더군요. 나와는 결혼할수가없다.


그얘길 듣고 2014년 11월 그사람 출장간사이에 크게 전화로 싸우고
이성을 잃고 분노 조절이 안된저는 집에있는 그사람 불법 스테로이드 약품 보충제
등등 화장실 변기통으로 다 집어 처넣고 짐을싸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2주일 후에 친구를 통해들었죠.


그 년놈들 그해 5월부터 사귀고 있었더군요.
죽고싶었습니다. 아니 죽이고싶었어요.
근데 제가 무슨 돈이있나요 힘이있나요. 살수가 없었습니다.
마냥 죽어야할것 같았어요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새낀 그냥 저를 아직도 죽을려고 자살쑈햇다고 미친년이라고 
자기 친지들한테 그렇게 떠들고 다닐지는 몰라도 전 그냥 죽고싶었어요.

그사람집으로 향했습니다. 저랑 같이살던 그집에서
그여자랑 같이 살고있더군요 옥상으로 올라가서 목을 매달아 죽으려고했어요.
그런데 그남자 저를 때리고 폭력을 쓰고 저희 엄마 앞으로 다시 데려다 놓더라군요
미친년이라면서 
저희엄마 그때 알았습니다.
저는 엄마앞에서 펑펑울면서 아기를 죽게했는데 더이상 저도 살수가 없다고요.


그러곤 그남자랑 연락이 두절됬습니다. 다신 연락하지 말라고하더군요 소름끼치는 년이라고
주변사람들한텐 제가 그냥 마냥 미친년으로 알리고 있겠지요
그여자랑 그새끼 둘다



그리곤 어제 2015년 5월 17일 둘이 결혼한다고 하더라구요
신이 알려준거 같아요 그전날 꿈을 꿔서 알게됬습니다.
무작정 그냥 결혼식장 찾아가서 깽판쳤어요. 내새끼 니가 죽였으니 니가 그 죄책감 안고가라고
소리 후련하게 지르고 나왔습니다.
저 인형과 함께요.
결혼식장에 그새끼 친구들도 한명 안갓더라구요.
어떻게 살았으면 결혼식 인생에 단한번 있는 결혼식 사회를 봐줄 친구한명이없습니까.
불쌍하긴하네요. 친척들과 회사 직원으로만 구성되어있는 하객들 불쌍하긴해요
인생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바람핀거 들키고 내존재 알리고싶지않으니까 친구들 못부른건가 
싶은데 
때거지로 몰린 회사 직원들? 축하 많이 받고 그여자 뱃속에 아기 5개월정도 되보이던데
내새끼는 개미죽이듯 죽여놓고. 죄책감도 없더니
잘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아이는 잘 컷으면 좋겠네요. 내아이 대신해서
내아이대신해서 전 지옥에 갈테니 
잘키우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태 한남자만 바라보고 그남자만 위해 살았었고 항상 주기만했던
제 마지막 선물이였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549292_1587596934846351_3207749310320561182_n.jpg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