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인 팔과 절단된 새끼 손가락 후의 위치
그러나 이 때문에 8월 18일 범인 세 명과 경관 800명이 타이페이 시내 한복판에서 총격전을 벌였고 경관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범인 중 한 명은 6발의 총탄을 맞고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
10월 23일 다른 한 주범이 타이페이 정형외과에 난입해 “자신의 얼굴을 성형하라”고 강요했다.
정형외과 의사가 협박을 받아 수술을 마친 뒤 “내 얼굴을 봤으니 죽어줘야겠다”라면서 의사 부부를 살해하고 간호사는 강간한 뒤에 살해했다.
그러나 11월 17일에 다시 경찰에 발각되었고 이 범인도 자살을 택했다.
마지막 남은 범인은 도주를 계속하다가 11월 18일 주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사관의 주재무관 관저에 침입해 5명의 인질을 잡고 인질극을 벌였다.
그러나 민진당의 사장정이 범인을 설득해 보겠다고 나서 직접 교섭한 끝에 결국 투항하여 체포된다.
이후 재판에 넘겨진 범인은 1998년 1월 22일 5건의 유괴, 강도, 살인에 대하여 모두 사형, 다른 폭행 사건 등으로 징역 59년 6월형을 선고받았고 이듬해인 1999년 10월 6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나머지 범인들 역시 사형까지는 아니지만 범죄에 걸맞는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바이빙빙은 이것으로 정의가 실현된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