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오늘도 또 우리 서폿이 막 쫓기었다. 내가 골렘을 먹고 cs를 먹으러

갈 양으로 나올 때이었다. 봇으로 올라서려니까 등뒤에서 푸드득푸드득

하고 소나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르랴 두 놈이 또 얼리었다.

베인네 서폿이(대강 키가 크고 똑 사신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

덩저리 작은 우리 소나를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하고 평타로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또 푸드득하고 사형선고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쪼일 적마다 인내의 아리아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킥, 할 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체력를

또 쪼이며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내 대강 이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같이

두 눈에서 불이 번쩍 난다. 대뜸 비전 이동으로 달려들어 베인네

서폿을 후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신비한 화살로 떼어만 놓았다.

이번에도 베인이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놈의 계집애가 요새로 들어서서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릉거리는지 모른다.

나흘 전 정글러건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계집애가 자기 cs을 먹으러 가면 갔지 남 cs먹는데 쌩이질을 하는 것은

다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 뒤로 살며시 와서,

"얘 너 혼자만 cs먹니?"

하고 긴치 않은 수작을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도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않고 서로 만나도 본체만체하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로 갑작스레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

항차 망아지 만한 계집애가 남 일하는 놈보고...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듸?"

내가 이렇게 내배앝는 소리를 하니까,

"너 일하기 좋니?"

또는,

"3렙이나 되거든 하지 벌써 cs를 먹니?"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댄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이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제 집게를

할금할금 돌아보더니 행주치마의 속으로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 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사왔는지 아직도 더운 김이 홱

끼치는 피바라기가 손에 뿌듯이 쥐었다.

"느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날 테니

여기서 얼른 가져가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첫 코어템으로는 피바라기가 맛있단다"

"난 피바라기 안 낀다, 너나 껴라"

나는 고개도 돌리려 하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피바라기를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 우리가 이 동네에 들어온 것은 근

삼년째 되어 오지만 여태껏 가무잡잡한 베인이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 게다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석궁을 다시 집어들더니 이를 꼭 악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구르며

논둑으로 힝하게 달아나는 것이다.

어쩌다 동네 탑어른이,

"너 얼른 한타를 해야지?"

하고 웃으면,

"염려 마셔유. 갈 때 되면 어련히 갈라구"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받는 베인이었다. 본시 부끄럼을 타는 계집애도

아니거니와 또한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병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나의 등어리를 선고로 한번 모질게 후려 때리고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주는 피바라기를 안 받아먹는 것이 실례라 하면, 주면 그냥 주었지

"느집엔 이거 없지"는 다 뭐냐. 그러잖아도 저희는 퍼블을 먹었고 우리는

겨우겨우 cs만 먹으므로 일상 굽실거린다. 우리가

이 마을에 들어와 라인이 없어서 곤란으로 지낼 라인을 빌리고 그 위에

cs를 또 먹도록 마련해 준 것도 베인네의 호의이었다. 그리고 우리 라이즈 미드어른도

미드에서 조금 딸리면 베인이 내한테 가서 부지런히 꾸어다

먹으면서 인품 그런 집은 다시없으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열 일곱씩이나 된 것들이 수군수군하고 붙어 다니면

동네의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 것도 또 탑어른이였다. 왜냐하면

내가 베인이하고 일을 저질렀다가는 베인 네가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라인도 떨어지고 cs도 내쫓기고 하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계집애가 까닭 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고 간 담날 저녁나절이었다. cs를 한 짐 잔뜩 지고 라인을

내려오려니까 어디서 라이너가 죽는소리를 친다. 이거 뉘집에서 라이너를 잡나,

하고 베인네 울 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뚱그랬다. 베인이가

저희 집 라인에 홀로 걸터앉았는데 아 이게 라인 앞에다 우리 서포터를

꼭 붙들어 놓고는,

"이놈의 서포터, 죽어라 죽어라"

요렇게 암팡스레 패 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대가리나 치면 모른다마는

아주 와드도 못 박으라고 선고에 은화살 3타를 콕콕 쥐어박는 것이다.

나는 눈에 쌍심지가 오르고 사지가 부르르 떨렸으나 사방을 한 번

휘둘러보고야 그제야 베인이 집에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 잡은 참지게

평타로 라인의 미니언을 후려치며,

"이놈의 계집애! 남의 서포터 와드 못 박으라구 그러니?"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나 베인이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도 없고 그대로 의젓이 앉아서

제 서포터 가지고 하듯이 또 죽어라, 죽어라, 하고 패는 것이다. 이걸 보면

내가 라인에서 내려올 때를 겨냥해 가지고 미리부터 서포터를 잡아 가지고

있다가 내보라는 듯이 내 앞에 줴지르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남의 라인에 뛰어들어가 계집애하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형편이 썩 불리함을 알았다. 그래 서폿이 맞을 적마다

신비한 화살로 미니언을 후려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미니언을 치면 칠수록 마나가 없어서 역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만 밑지는 노릇이다.

"야 이년아, 남의 서폿 아주 죽일 터이냐?"

내가 도끼눈을 뜨고 다시 꿱 호령을 하니까 그제야 라인께로

쪼르르 오더니 울밖에 섰는 나의 머리를 겨누고 서폿을 내팽개친다.

"에이 더럽다! 더럽다!"

"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끼고 있으랬니? 망할 계집 애년 같으니"

하고 나도 더럽단 듯이 라인께를 힝하게 돌아 내리며 약이 오를 대로

다올랐다.

그리고 나의 등뒤를 향하여 나에게만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이 바보 녀석아!"

"얘! 너 cs병신이지?"

그만도 좋으련만,

"얘! 너 느 아버지가 티모라지?"

"뭐? 울 아버지가 그래 티모야?"

할 양으로 열 벙거지가 나서 고개를 홱 돌리어 바라봤더니 그때까지

라인 위로 나와 있어야 할 베인이의 대가리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그러다 돌아서서 오자면 아까에 한 욕을 울 밖으로 또 퍼붓는

것이다. 욕을 이토록 먹어 가면서도 대거리 한 마디 못하는 걸 생각하니

돌부리에 채이어 발톱 밑이 터지는 것도 모를 만큼 분하고 급기야는

두 눈에 눈물까지 불끈 내솟는다.

그러나 베인이의 침해는 이것뿐이 아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제 집 서폿을 몰고 와서 우리 서폿과 쌈을

붙여 놓는다. 제 집 서폿은 썩 험상궂게 생기고 쌈이라면 홰를 치는 고로

으레 이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툭하면 우리 서폿이 면두며

눈깔이 피로 흐드르하게 되도록 해 놓는다. 어떤 때에는 우리 서폿이

나오지를 않으니까 요놈의 계집애가 와드를 쥐고 와서 꾀어내다가 쌈을

붙인다.

이렇게 되면 나도 다른 배차를 차리지 않을 수 없다. 하루는 우리

서폿을 붙들어 가지고 넌지시 우물께로 갔다. 서포터에게 영약을 먹이면

병든 황소가 살모사를 먹고 용을 쓰는 것처럼 기운이 뻗친다 한다.

우물에서 영약 한 접시를 떠서 주둥아리께로 들여 밀고 먹여 보았다.

서폿도 영약에 맛을 들였는지 거슬리지 않고 거진 반 접시 턱이나 곧잘

먹는다.

그리고 먹고 금시는 용을 못 쓸 터이므로 얼마쯤 기운이 돌도록

부쉬에다 가두어 두었다.

라인에 cs를 두어 짐 져내고 나서 쉴 참에 그 서폿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밖에는 아무도 없고 베인이만 저희 울안에서 cs를 뜯는지

혹은 정글을 터는지 웅크리고 앉아서 일을 할뿐이다.

나는 베인네 서폿이 노는 밭으로 가서 서폿을 내려놓고 가만히 맥을

보았다. 두 서폿은 여전히 얼리어 쌈을 하는데 처음에는 아무 보람이

없었다. 멋지게 쪼는 바람에 우리 서폿은 또 피를 흘리고 그러면서도

푸드득푸드득 하고 올라 뛰고 뛰고 할 뿐으로 제법 한번

쪼아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한번에 어쩐 일인지 용을 쓰고 펄쩍 뛰더니 용맹의 아리아에 파워코드로

크게 데미지를 넣었다. 큰 서폿도 여기에는 놀랐는지 뒤로

멈씰하며 물러난다. 이 기회를 타서 작은 우리 서폿이 또 날쌔게

덤벼들어 다시 크레센도에 평타로 쪼니 그제서는 감때사나운 그 대강 이에서도 피가

흐르지 않을 수가 없다. 옳다 알았다, 영약만 먹이면은 되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아주 쟁그러워 죽겠다. 그때에는 뜻밖에 내가 서폿쌈을 붙여

놓는데 놀라서 울 밖으로 내다보고 섰던 베인이도 입맛이 쓴지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두 손으로 볼기짝을 두드리며 연방,

"잘한다! 잘한다!"

하고 신이 머리끝까지 삐치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넋이 풀리어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큰 서폿이 한번 쪼인 앙갚음으로 호들갑스레 연거푸

평타에 사형선고를 하니 우리 서폿은 찔끔 못하고 막 곯는다. 이걸 보고서 이번에는

베인이가 깔깔거리고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다.

나는 보다 못하여 덤벼들어서 우리 서폿을 붙들어 가지고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영약을 좀더 먹였더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 것이 퍽 후회가 난다. 우물께로 돌아와서 다시 턱밑에 영약을

들이댔다. 흥분으로 말미암아 그런지 당최 먹질 않는다.

나는 하릴없이 서폿을 반듯이 눕히고 그 입에다 궐련 물부리를 물리었다.

그리고 영약을 타서 그 구멍으로 조금씩 들여 부었다. 서폿은 좀

괴로운지 킥킥하고 재채기를 하는 모양이나 그러나 당장의 괴로움은

매일같이 피를 흘리는 데 댈 게 아니라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