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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관람 후기[스포 없음]
게시물ID : animation_1015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둠의야옹이
추천 : 1
조회수 : 701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3/08/16 11:38:01
어제 여친님이랑 언어의 정원을 보고 왔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를 보는 건 처음이라서 상당히 기대를 하고 갔는데, 역시 기대만큼의 감동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감독이 '짧은 영화인 만큼, 할 수 있는 게 많다(퀄리티 측면에서)'라고 한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보통 2D애니메이션에 3D 오브젝트가 삽입되면 라이팅의 이질감 때문에 자연스러운 화면을 만들기가 어려운데,
도심 씬에서 보여주는 자동차나 전동차의 움직임은 3D오브젝트라는 걸 알아차리기 힘들정도로 자연스러웠습니다.

물론 그것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도시의 모습을 그려낸 작화 역시, 궁극의 사실감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 어떤 애니메이션을 봐도 영상미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언어의 정원은 그러한 선입견을 멋지게 부숴준 작품이 되었습니다.



내용면을 좀 파고들어 보지요.
실상 작화라는 것은 사람과 돈을 투입하면 어느 정도는 해결이 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시나리오는 그렇지도 못한 것이, 최신 기술이나 자본과는 관계없이, 지어낸 사람의 능력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요소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단순한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그 시나리오를 어떤 식으로 연출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중요한 문제인데, 이 역시 자본과는 거리가 먼 개념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시나리오와 연출적인 측면에서 한 가지 뛰어난 장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러닝타임 46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서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와 직접적인 설명, 혹은 사건 전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언어의 정원은 단 하나의 직접적인 사건 언급이나 묘사 없이 주인공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주인공들에게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직접 떠들지 않아도, 복잡하게 얽힌 사건과 감정들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가 있었던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도 매우 훌륭하며, 신선한 경험을 하게 해준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관람하기 적절한 연령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언어의 정원이 일정 연령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극중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컴플렉스는 어느 정도의 인생 경험이 없이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물론 비슷한 구조를 채택한 자극적인 매체들이 많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나마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남자 주인공조차도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남자 주인공은 그 나이 대에 가지기 어려운 강한 의지를 가진 인물인데, 솔직히 요즘의 그 나이 또래 사람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성향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캐릭터는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단편적인 인물상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지한 고뇌와 도전, 좌절, 그리고 달콤했지만 쓰라렸던 사랑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며, 또한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가 아닌가 합니다.


지금까지 장점만 얘기한 것 같은데 단점도 한 가지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언어의 정원이라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다시피, 이 작품은 등장인물의 대사 하나하나가 매우 세련된 형태로 다듬어져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거슬렸던 점은, 자연스런 의역을 추구한 나머지 도치법(문장의 앞과 뒤를 바꾸어 효과를 증대하는 기술)을 사용한
문장들마저도 올바른 순서로 재배치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주로 등장인물의 독백에서)

예를 들어,
'나 혼자만 제자리 걸음이었어... 남들은 모두 달려나가는데...'라는 대사가 있다면 자막에서는
'남들은 모두 달려나가는데 나만 제자리 걸음이었다.' 라는 식입니다.

물론 이렇게 하면 어색함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무래도 조금 더 극적인 효과를 노린다면 적어도 대사의 어순과 동일하게
자막을 제작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자막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끝으로.
언어의 정원은 그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개봉관의 수가 적고, '일본산'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저평가 될 수도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영화의 내용과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스테레오 타입의 일본산 극장판 애니메이션과는 매우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상으로 언어의 정원 감상 후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추신 : 
영화가 끝난 뒤에 포스터를 받으러 매표소로 갔습니다.

즐거운 표정으로 포스터를 달라고 한 저를 바라보는 여직원의 표정이 의미하는 바는 뭐였을까요..?

추신 2: 
영화를 보기 직전에 표를 예매한 여친님께 여쭈었습니다.

"더빙이야?"
"아니?"
"휴... 다행이네..."
"왜?"
"여주인공 성우, 좋아하는 성우라서."
"그래? 더빙이면 화냈겠네."
"울었을 걸?"

어제도 저는 여친님께 새로운 덕후의 낙인을 찍히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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