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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 군대의 초상 (약스압)
게시물ID : freeboard_8663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유리강물
추천 : 0
조회수 : 20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5/23 15:16:23
사관학교 출신에 대한 특혜와 엘리트 의식은 위험수준이었다.
군대의 규모를 대폭 확충하면서 학사장교나 기타 여러 제도를 통해 장교들을 모집했지만,
대체로 비사관학교 출신들은 사관학교 출신들의 명령을 받아야 했다.
예컨대 토목공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관학교 출신 장교가,
바깥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부임해 온 장교에게 토목 공사에 관한 명령을 내리는 식이었다.

사관학교 교육과정에도 문제점은 있었다.
어렵사리 훈련과 교육과정을 마친 생도들에게 사소한 문제로 트집을 잡아서
"너는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라며 퇴교시키는 일들이 적잖이 있었다.
쉽게 말해서 똥군기 잡느라고 많은 우수한 생도들을 학교 바깥으로 내모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임관 후의 인사고과는 보통 사관학교 졸업성적과 병과에 의해 결정되었다.
업무 도중의 업적이나 개개인의 능력치가 진급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특정 병과 출신이 아니면 장성 진급은 꿈도 꾸기 어려웠으며,
반대로 사관학교 출신에 괜찮은 병과라면 큰 사고만 치지 않아도
대령까지는 크게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다.
반면 비사관학교 출신들은 중령을 다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런 배경들 때문에 장교들은 승진이나 인사고과에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철저한 보신주의와 소극성으로 일관했다.
어차피 열심히 해도 출신이 나쁘면 인정받기 힘들고, 열심히 하지 않아도 출신이 좋으면 승승장구하는 마당에
굳이 앞장서서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괜히 나섰다가 '눈에 띄어' 상관들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진급은 물 건너가는 셈이니,
그저 매일 전례를 좇고 윗분들의 명령과 눈치만 따르는 게 고작이었다.

이러다보니 명령계통에서는 최상급 지휘관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다.
근대식 군사제도와 함께 등장한 참모 제도는 거의 쓸모가 없었다.
대부분의 참모들은 지휘관의 명령을 충실하게 받들어 모시는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게 보통이었고,
지휘관의 판단에 내재한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이에 대한 수정-보완을 요하는 행위 따위는 감히 할 수 없었다.
지휘관이 아무리 바보같은 명령을 내려도 '까라면 깐다'라며 따르는 것을 군인정신이라고 여겼다.

한편 고위급 장성들은 자신들의 본업인 작전 지휘와 부대 통솔보다는 정치 문제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틈만 나면 정치인들과 연줄을 얻으려 했고,
때로는 직접 정치 문제에 개입하여 이런저런 발언을 내뱉기를 삼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쿠데타도 종종 벌어졌다. 한동안은 군인들이 나라의 권력을 쥐고 흔들기조차 했다.
이들은 전 사회를 병영화시키기를 원했고, 자신들의 말에 일제히 '복종'하는 것이 건전한 사회라고 여겼다.

고위급 장성과 방위산업체 사이의 유착과 비리 같은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병들에게 배분되어야 할 자원이 엉뚱한 곳에서 낭비되는 일이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한 세대 낡은 장비를 수십 배의 가격에 구입하여 사용하는가 하면,
정말 필요한 보급물자가 필요한 만큼 일선부대에 전달되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애로사항들에 대해서, 최상급 지휘관부터 일선 부대장들에 이르기까지,
대체로는 하나같이 "정신력으로 극복하라"고 일갈하기 일쑤였다.
정신력은 군대를 지탱하는 가장 큰 기둥이었다.
보급물자가 떨어져서 배가 고파도 정신력, 탄약이 부족해도 정신력,
정상적인 전투를 벌일 수 없는 상황에도 정신력으로 극복하라는 말이 수없이 맴돌았다.
심지어는 정신력을 강화한답시고 사병들을 굶기면서, 이를 '훈련'이라고 강변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사병들끼리의 가혹행위도 만연했다.
계급별로, 기수별로, 층위를 나누어서 불필요한 행동상의 제한을 강요하기도 하고,
혹은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기합을 주거나 구타를 가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원래 장교들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막았어야 했지만, 수많은 경우 장교들은 이를 알면서도 방관했다.
사병에게는 지휘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장교들이 그 일을 애써 하려 들지 않았기에
분대 단위의 부대 통솔을 고참 사병들에게 떠넘기려는 경향이 강했던 탓이다.
심지어는 이런 가혹행위를 은연중에 조장하는 장교나 부사관들도 적지 않았다.
 
 ....

 ....이런 수많은 문제들로 인해,
 
구 일본제국 황군(皇軍)은 태평양전쟁 발발 이전부터 이미 뼛속까지 곪아 있는 상태였다.
 
이런 군대가 전쟁에 임해서 승리를 거둘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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