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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혁명 두번째 제언-'교육' 이란 무엇입니까?
게시물ID : readers_198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을지로
추천 : 1
조회수 : 34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5/24 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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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안녕하세요. 두번째 제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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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혁명
부제: 교육혁명에 대한 대통령의 제언
 

두 번째 제언-‘교육이란 무엇입니까?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
오늘은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두 가지를 우선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 이 방송은 모든 지상파 채널에서 중계하고 있는데 전파낭비’, ‘시청권 제약 아니냐?’
어떤 분은 기본권 침해 아니냐?’ 라고 하시는 분도 있으십니다.
그러한 의견 역시 일리 있다 생각하지만 교육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교육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육은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일이며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는 우리의 미래를 좌지우지 하고 결정하는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70년이 넘은 지금까지 나라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교육에 대해 사회 전체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 하게 소통해 본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습니까?
그것이 입시제도 변경이던, 세세한 교육정책이건 언제나 결정권은 집권세력 내 소수인원과 교육부처 관료들만이 틀어쥐고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았습니까?
상황이 그렇다 보니 우리 교육은 목표가 무엇이고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 라는 확고한 교육철학 하나 없이 땜질식 입시제도 변경에 그쳐 오지 않았습니까?
저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교육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진지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확고한 교육철학이 뿌리 내려야 한다고 확신했고 소통 방식의 첫 번째로 모든 지상파 채널 중계를 결정했습니다.
 

. 지난 어린이 날 첫 번째 제언 드리면서 서울대를 자주 언급했는데 서울대를 콕 집어 자꾸 거론하는 것이 열등감 표출 아니냐?’ 하는 것과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편향적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 하는 의견에 대한 답변입니다.
 

현재 너무나 견고한 학벌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최고정점에 있는 서울대를 주로 언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뭐 때문에 서울대 나온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겠습니까?
물론 제가 학교 다닐 때 학업 성적이 서울대 나온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어떻게 보면 비교한다는 자체가 의미 없을 만큼 형편없었지만 제가 그거 하나 빼면 서울대 나온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가질 요인이 딱히 있습니까?
제 입으로 직접 말하자면 자화자찬 하는 것 같아 낯부끄럽긴 합니다만 제가 서울대 나온 사람과 비교했을 때 인격이 덜 성숙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국정 운영자이자 최고 책임자로서 최소한의 상식이나 역량이 모자랍니까?
 

제가 그런 사람이라면 여러분들께서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셨겠습니까?
 

서울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은 평생을 서울대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나라의 학벌체제는 너무나 견고하며 최고정점에 서울대가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자명하며 그로 인한 병폐가 우리 사회를 얼마나 병들게 하고 있는지,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가는 최소한의 상식이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국정최고책임자이자 헌법상 국가원수로서 견고한 학벌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병폐를 해소하자는 대통령의 생각과 주장조차 열등감 표출로 매도되는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저는 대통령 이전에 평범한 한 사람의 소시민으로서 개탄스럽기까지 합니다.
 

서울대는 우리 사회에서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해서는 안 되는 절대성역 입니까?
서울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은 문제를 제기하거나 의문을 품을 자격을 가지지 못한 것입니까?
저의 이런 주장이나 문제 제기가 서울대 나온 사람들의 비위를 거스르는, 소위 역린을 건드린 짓이기 까지 합니까?
 

제가 견고한 학벌체제의 최고정점에 있는 서울대를 계속 거론하는 것이 열등감의 표출이 아닌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살게 하게끔 우리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라는 것은 앞으로 여러분들이 지켜보면서 판단해주실 거라 생각하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교육을 얘기하자면 너나 할 것 없이 할 말이 많고 주제를 나눠보자면 열 개로도 모자라겠습니다만 오늘은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보고 그 물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실타래가 엉키고 꼬인 것처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고르는 것도 쉽지 않은 교육, 바로 그 교육 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지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오늘은 그 속담처럼 차분하게 원점으로 돌아가 봅시다.
 

도대체 교육이란 무엇입니까? 교육이 무엇이냐 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어떤 식으로든 대답을 했다면 자신이 한 대답의 사유나 출발점이 무엇인지까지 어렵지 않게 답하실 수 있으십니까?
 

어렵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쉬운 문제일수록 꼼꼼하고 신중하게 생각하자’, 이것이 제가 세상을 사는 저 나름의 요령 중 하나입니다.
가뜩이나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생각하면 머리만 더 아프고 해결법이 좀처럼 떠오르기 힘들 것이고 쉬운 문제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실수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사람 저 사람 말이 다양하게 나오고 너무나도 복잡해 보이는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차분하게 원점 혹은 출발점으로 돌아가 도대체 교육은 무엇인가를 묻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가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뜻에서 한 번 더 묻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생각하는 교육은 무엇입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답을 들을 수는 없는 상황이니 제가 생각해온 답을 해보겠습니다. 그 전에 우선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제가 조금 있다 드릴 답은 제가 생각한 답이지 그것이 단 하나의 정답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개개인도 그렇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마찬가지지만 초--12년간 미리 정해진 단 하나의 정답만 찾아내는 객관식 시험에 길들여지다 보니 마치 세상살이에 모두 단 하나의 정답만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만 어디 세상살이에 단 하나만의 정답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각자가 생김새가 다 다르듯, 처한 상황이나 생각도 다 다를 것이고 그렇다면 개개인이 생각하는 과정도 다를 것이고 내리는 결론과 선택 역시 다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교육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제가 하는 대답은 어디까지나 제가 생각하는 답은 이렇습니다.’ 라는 것이지 그것만이 단 하나의 정답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교육이 무엇일까 라는 물음을 가질 때마다 이리저리 생각하던 어느 순간,
교육? 교육이 한자로 어떻게 되더라? 가르칠 교()에 기를 육(). 아하! 가르칠 교()에 기를 육() 해서 교육? 그렇다면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서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교육의 본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 제게 당신이 생각하는 교육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에 대한 답을 간결하게 할 수 있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건강하고 밝게 자라 우리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생각하고 궁극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고민과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 하겠습니다.
 

,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까요?
 

웃자고 한 얘기이지만 정말 여기까지만 해도 오늘 제가 드릴 말씀은 다 드렸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께 드리는 두 번째 제언의 핵심이 우리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 이것이 교육에 대해 정답에 가까운 답이라 가정해 봅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라면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는 목적론 즉, 교육의 최우선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 할 수 있을 텐데 현재 교육의 현실을 보기 전에 우선 법조문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교육기본법을 보겠습니다.
 

2(교육이념)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법조문 찾기 전에는 현실은 어떻든 간에 법조문은 훌륭한 구절로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내심 있었습니다. 가령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길러내는 것을 초-중등 교육의 목표로 삼는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법조문을 찾아서 확인해본 저는 제 기대가 맞은 것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지만 법과 현실의 괴리가 떠오르자 기분이 금방 가라앉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교육 현실이 추구하는 목표 내지 목적은 무엇입니까?
법조문에만 있는 아름다운 구절 말고 지금 우리 교육현장이 실제로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이냐를 묻는 겁니다.
 

무엇입니까?
 

저는 강한 어조로 단언컨대 현재 우리 교육의 목표는 서울대를 선두로 하는 소위 명문대에 보내는 것, 오로지 그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등 교육 12년은 입시전쟁만을 위해 존재하고 입시전쟁의 볼모로 잡혀 있습니다.
오로지 입시전쟁만을 위해 지내야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은 어린이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기고, 중등학생은 잠조차 충분히 자지 못 합니다.
 

 

정신적 성숙기를 거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보고 자신의 앞날을 마음껏 꿈 꿔 보지도 못하고 설령 그렇게 할라 치면 입시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되기 일쑤이며 그런 고민은 일단 대학에 가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라는 얼핏 보면 점잖아 보이는 충고를 귀가 아프게 들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 아이들은 학생이기 이전에 개개인 한명, 한명이 소중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모든 권리를 모조리 빼앗긴 채 살벌하기 짝이 없는 살인적인 입시전쟁으로 내몰리고, 입시전쟁의 끝자락에서 극소수의 승자 즉, 서울대를 최고정점으로 하는 명문대 입학에 성공한 학생을 제외한 남은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으로서 본격적으로 사회에 발을 내디딜 때부터 살벌하고 살인적인 입시전쟁 이라는 거대한 경쟁의 장에서 밀려난 낙오자라는 멍에를 스스로 짊어진 채 남은 삶을 시작하는 것이 현실이지 않습니까?
 

서울대에 가지 못하는 수많은 아이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극소수의 서울대 입학생을 위해 들러리 노릇을 해야 합니까?
 

서울대에 가지 못한 수많은 아이들의 존재 이유 내지 가치는 서울대 입학에 성공한 사람을 보다 빛나 보이게 해 줄 들러리 노릇 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까?
 

서울대를 갔건 못 갔건, 우리 아이들 중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시전쟁에 내몰려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기인 10대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것도 모자라 서울대 입학생을 위해 들러리 서야 하고 경쟁이 끝나면 낙오자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야 합니까? 멍에를 스스로 짊어진 아이들이 자존감을 가진,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입만 열면 경쟁으로 시작해 경쟁으로 끝내는 경쟁 만능, 경쟁 우월, 경쟁 지상주의 자들에게 저는 대통령 이전에 최소한의 상식과 양심을 가진 한 사람의 소시민으로서 묻고 싶습니다.
 

무슨 연유로 수많은 아이들이 극소수의 서울대 입학생을 빛나고 우월한 존재로 보이게 하는 들러리 노릇을 해야만 합니까?
 

입시전쟁에서 밀려나 일찌감치 자신이 낙오자라는 멍에를 스스로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할 아이들을 보면서 연민은 단 한 순간도 느끼지 못합니까?
 

그 아이들을 보면 오히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경쟁논리, 경쟁질서로만 움직이는 세상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만족하고 있습니까? 희열을 느낍니까?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아이들이 살벌하고 살인적인 입시전쟁에 내몰리고 경쟁에서 이긴 극소수의 인원만이 사회의 모든 이권을 사실상 독차지 한 채 그걸 바탕으로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짓밟고 무시하며 패자부활전은 존재하지도 않는 지금의 현실이 근대화된 문명사회에 부합합니까?
 

아니면 민주공화국임을 헌법에 천명한 대한민국이 마땅히 추구하고 구현해야 할 사회상에 부합합니까?
 

우리는 무슨 권리로 어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를 박탈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슨 권리로 아이들을 입시전쟁으로 내몰아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지 못 하고 덩치만 커져버린 정신적 박약 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 아니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까?
 

지금 당장 아픈 게 싫다고 썩은 살을 도려내지 않으면 몸 전체가 썩어 결국 죽고 말 것입니다. 우리 교육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살벌하고 살인적인 입시경쟁에서 교육을 해방시켜 제자리로 돌려놔야 합니다. 그러자면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우리의 뼈아픈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정직한 눈으로 정확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교육이 본질적인 목표를 잃어버린 채 갈팡질팡하며 입시전쟁에 볼모로 잡혀 있는 불편하고 뼈아픈 분명한 현실을 외면한 채 단순히 입시제도 변경에 그치는 것은 변죽만 올리는 짓에 불과할 뿐이며 기만이고 위선입니다.
본질을 흐리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비열한 짓일 뿐입니다.
 

아주 잠깐, 단 한 순간만이라도 우리 아이들이 입시전쟁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를 놓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고 최우선 과제가 되어 있다고 한번 상상해 봅시다.
 

얼마나 행복한 상상이고 고민입니까?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를 놓고 끝없이 고민하는 것이 교육이라 할 때, 우리 스스로가 저마다 교육 주체가 되어 다함께 생각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교육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나 목표에 부합하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육이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 임을 한 번 더 강조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우리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길러내는데 교육의 목표를 둘 것인가에 대한 답을 여러분께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답은 다음 방송에서 드리는 대신 여러분께 부탁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다음 방송 전까지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답을 여러분 스스로 답해보는 기회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각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스스로 찾아낸 자신의 답을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답과 비교해보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제가 일방적으로 제 생각만 말씀 드리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고 이 방송을 소통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하는 제 생각에 보다 부합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각자 스스로 찾아낸 답을 서로 주고받으며 상호간 소통과 사회적 합의를 향한 머나먼 여정의 첫 발을 내딛기 전에 오늘은 다시 한 번 불편하고 뼈아프며 가슴 아픈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중고등학생이 입시전쟁에 내몰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보며 자존감 있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커나갈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을 포함해 학생이기 이전에 우리 아이들 모두가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모든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 하는 너무나도 가슴 아픈 현실.
 

우리는 이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직시합시다.
 

정직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교육철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뿌리 내릴 수 있게 해주는 위대한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 모두 이제는 외양간이 어떻기에 소를 자꾸 잃는가를 직시하고 다시는 소를 잃지 않게 외양간을 처음부터 다시 세웁시다.
 

2주 뒤 일요일 오후 3시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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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제언은 2주 뒤인 6월 7일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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