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을 분노케 한 日 청소년들의 비행...성인범죄보다 잔인성 높아
'사랑의 법률' 소년법을 '무관용의 법'으로...2010년 첫 소년에 대한 사형선고
[위클리오늘=김성현기자]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의 가해자 1명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가 11일 오전10시 30분께 부산서부법원에서 열리며 영장실질심사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해 여중생인 14세 A양은 이달 1일 저녁 부산 사상구의 한 공장 인근 골목길에서 피해 학생(14)을 1시간 30분 가량 공사자재와 의자, 유리병 등으로 100여 차례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가해 학생들은 피투성이가 된 피해학생의 사진을 주변에 퍼뜨리며 자신의 범죄 행위를 과시하기도 했다.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강릉 폭행사건 등 10대들의 강력범죄가 잇따르며 미성년자 처벌을 강화하자는 '소년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에서도 청소년에 대한 형량완화 제도를 폐지하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담은 소년법 개정안이 앞다퉈 발의되고 있다.
소년보호를 위해 제정된 소년법이 더 이상 소년을 보호하지 않고 엄벌만을 위해 개정된 나라가 있다. 바로 옆 나라인 일본이다.
일본이 1922년 처음 소년법과 교정법을 제정할 당시 소년법은 ‘사랑의 법률’ 등으로 불리며 일본 형사입법사상 가장 획기적인 법으로 평가됐다.
제2차 세계대전 폐전으로 일본의 소년법은 여러 차례 개정됐지만 여전히 ‘소년보호’라는 이념은 반영돼 왔다.
하지만 2001년 7월 1일부터 소년법은 전면 개정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소년보호가 아닌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했다.
소년범죄의 최대 형을 무기징역까지 늘리고, 그 조사에 있어서도 성인범죄와 같이 강력한 수사를 진행하도록 했다.
무엇이 일본의 소년법을 이렇게까지 바꿨을까?
1990년대 초부터 대두된 청소년 문제가 원인이었다. 소년법을 등에 업은 청소년들의 잔인하고 반사회적인 범죄에 여론은 더 이상의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2010년 청소년 범죄에 대해 첫 사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1993년, 야마가타 매트 살인 사건
1993년 1월 13일 저녁, 일본 야마가타현의 한 중학교 체육관 공구실에서 한구의 시체가 발견됐다.
시신은 감겨서 세워진 체육용 매트에 뒤집힌 상태로 들어있었다. 사인은 질식사였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들어가 당시 사망한 학생을 괴롭혔던 14세의 상급생 3명과 13세의 동급생 4명 총 7명을 체포했다.
혐의는 상해 및 감금치사로 체포된 학생들은 모두 체포당시 범행은 인정했다.
하지만 얼마안가 아동상담소에 구금된 1명을 제외한 6명이 범행 자백을 철회하고 무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당해 8월 23일 야마가타 가정법원은 체포된 상급생 3명에 대해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무혐의 판결을 내린다.
동급생 3명 중 1명은 소년원에 송치됐다. 2명에게는 교화원에서의 보호처분이 내려졌다.
피해자 가족들은 가해 학생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며, 해당 민사사건은 지난해까지도 일본의 관심사였다.
해당 사건을 시작으로 일본에서는 소년법 개정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지메(왕따)의 심각성도 이때부터 일본 사회의 주요 청소년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1997년, 고베 ‘술 도깨비 장미’ 살인사건
1997년 5월 27일 새벽 일본 고베시 스마구에 한 중학교 정문에 절단된 소년의 머리가 방치돼 있는 것을 행인이 발견했다.
피해자는 3일전 행방불명된 11세 소년인 것으로 밝혀졌다.
시신의 머리는 입에서 귀까지 흉기로 찢겨있었으며 입에는 ‘사카키바라’(술도깨비 장미)라는 범인의 이름이 끼워져 있었다.
범행의 잔학함으로 인해 해당 사건은 전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으며 경찰은 용의자를 찾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당해 6월 28일 용의자가 검거된다. 범인은 당초 검찰이 예상한 30~40대 건장한 사내가 아닌 14세의 중학생이었으며 단일 범행이 아닌 연속 살해 사건임이 밝혀졌다.
범인은 당해 2월 10일 길을 지나던 초등학생 여자아이 2명을 고무망치로 내리쳐 둘 중 한명이 심각한 중상을 당하게 했다.
같은 해 3월 16일 인근 놀이터에 놀고 있던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에게 길을 물은 후 망치로 내리쳐 사망에 이르게 했다.
같은 날 다른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의 복부를 칼로 찔러 13센치에 달하는 상처를 남겼다.
5월 27일 발견된 시신의 머리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학생의 머리를 절단한 것이었다.
범인이 소년의 입에 남긴 쪽지에는 ‘우둔한 경찰 제군들이여, 나를 한번 저지해 보시게. 나는 살인이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어. 사람이 죽는 걸 보고 싶어 죽겠어’라는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그럼에도 현행법으로 범죄를 저지른 소년을 처벌할 방법이 없었다. 당시 일본의 형사미성년자 기준은 만 16세였기 때문에 14세인 가해자는 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해당 가해자는 의료소년원에서 정신과 치료만 받은 후 2005년 풀려나, 현재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지난 2016년 6월 자신의 범행을 책으로 써 출판하기도 했다.
해당 사건으로 인해 여론이 들끓자 2000년 일본국회는 형사 미성년자의 나이를 14세 미만으로 낮췄으며, 2007년 다시 12세로 개정했다.
◆1998년, 토치기현 여교사 살인 사건
1998년 1월 28일 일본 토치기현 쿠로이소시의 한 중학교에서 13세 중학생이 칼로 여교사의 목덜미와 복부 등을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소년은 여교사의 목덜미, 복부를 포함한 총 7곳을 찔렀으며, 칼에 찔려 쓰러진 여교사를 내장이 파열될 때까지 걷어찼다.
여교사는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출혈과다로 사망했다.
소년은 여교사가 수업에 왜 늦었느냐고 묻자 느닷없이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년은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가정법원은 해당 학생을 교화원에 송치해 보호처분을 받도록 결정했다.
범행을 저지른 학생은 평소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으며, 학교생활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년은 칼을 소지한 이유로 “영화에서 배우들이 칼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해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2010년, 미야기현 살인 사건
2010년 2월 4일 히가시마쓰시마시에서 18세의 한 소년이 자신의 여자친구 할머니 집에서 여자친구(18세)를 쇠막대로 폭행하고 이마를 담뱃불로 지져 전치 1개월의 부상을 입혔다.
이에 만족하지 않은 소년은 공범인 친구와 함께 소녀의 집에 다시 침입했다. 당시 자고 있던 여자친구의 언니(당시 20세)와 여자친구의 동급생(18세)을 18cm 칼로 여러차례 찔러 살해한다.
함께 있던 남성(20세)의 가슴도 찔러 전치 3주의 중상을 입혔다.
이후 소년은 여자친구의 다리를 찔러 1주의 경상을 입히고 납치했다. 소년은 다음날 오후 1시 경찰에 체포됐다.
검찰은 해당 소년을 ‘살인,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법원에 기소했다. 검찰이 구형한 형은 ‘사형’이었다.
1심은 범행이 사전에 계획됐으며 살의가 있었다는 이유 등을 들어 사형을 선고한다.
가해자측은 이에 불복해 고등법원에 항소했으나 고등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지난해 6월 16일 상고심에서도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소년범죄에 대한 첫 사형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일본 내 여론은 물론 법원도 더 이상 소년범죄에 대해 관용하지 않았다. 사랑의 법률은 사라졌으며, 오직 엄격한 형사처벌만이 소년범죄에 대한 답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