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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 발렛파킹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게시물ID : car_101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愛童
추천 : 27
조회수 : 2089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2/04/11 01:16:35
자동차 게시판과는 전혀 상관없는 글인데, 술을 마시고 글을 씁니다.
술게가 있지만 왠지 이 곳에 글을 쓰고 싶었어요.

일하는 곳은.. 백화점이라 하긴 뭐하고, 아울렛에 가까운 매장입니다.
부지가 좁아서 주차타워 라인을 여러개 돌리며, 하루에도 정말 기백대의 차를 타지만

정작 차를 한번 탈때의 주행거리는 아무리 길어도 50m 를 넘지 않습니다. 
타워에 넣고, 타워에서 빼서 고객님께 드리고.. 주차타워를 기계로 본다면, 기계의 부품 같은 일이에요.

막말로 하루동안 티코부터 벤츠까지 차라는 차는 다 타볼 수 있습니다.
흔히 남자들이 하는 말중에, 백화점 매장 여직원은 눈이 높아서 만나선 안된다.. 같은 말이 있죠.

제 경우엔 이 일을 하면서, 왜 사람들이 외제차 외제차 하는지 몸으로 느낍니다.
당연스레 차를 보는 눈은 높아집니다. 하지만 나는 타인의 재산 위에 타고 있다는 마음가짐이 됩니다.

벤츠를, BMW를, 아우디를, 폭스바겐을, 포드를, 푸조를, 크라이슬러를, 캐딜락을, 랜드로버를, 
포르쉐를, 심지어 한번뿐이지만 덜덜 떨면서 람보르기니도 타봤습니다. (차종이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언제나 그 생각이지요. 남의 재산 위에 앉아 일하는 주제에 나 이거이거 타봤다- 라는 말은
길가다 우연히 연예인을 봤는데 정말 멋있더라- 정도의 이야깃거리지, 자기 자랑이 되서는 안될 말이란걸요.



퇴근할때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20대 중반이니까요.
용역업체 소속이지, 대그룹 백화점 정직원은 아니니까요. 

이 일을 마음 속으로 생각해둔 기한까지 하며, 나름대로의 제 길 준비도 하며.
하다못해 타지에 직장을 잡게 되었을때 원룸 보증금은 제 손으로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조금 힘들었습니다.
사실 후덜덜한 남의 재산에 타지만, 결국 타워에 넣고 빼고 하는 단순 노동 일거리의 하나에요.

이젠 어떤 외제차를 보더라도 그저 그냥 심드렁히.. 저건 타워에 못들어갈 싸이즈인데? 생각이나 하지요.
하지만 제가 유일하게 도망치는 차가 있어요. 절대 타지 않으려 했던 차가 있어요.

이젠 이 곳에서 짬이 좀 되니까, 다른 직원들 (저와 같은 20대의 알바생들) 이 함부로 타지 못할
그런 외제차들을 대신 타주는 고참이 되었음에도, 유일하게.. 재규어가 오면 도망쳐 왔습니다.



첫사랑과 헤어진지 일년반 정도가 지났습니다. 이유는 경제적인 것과, 나이 차이 (제가 너무 어렸어요.)
언젠가 첫사랑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차중에서는 재규어가 제일 예쁘다고..

흔한 차는 아니지만, 분명히 쇼핑하러 오시는 고객님들 중에 재규어는 있습니다.
익숙해진 다른 고가의 차들과는 다르게, 재규어는 마음의 울렁임 없이는 볼 수가 없게 되었어요.

그렇게 이 일을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재규어는 타지 않았습니다. 피하고, 도망쳤어요.
다른 짬 되는 친구를 시켜서 타게 했지요. 그냥 저는 재규어가 슬펐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점심 시간이라 팀으로 나뉘어져 있을때.
저희 팀에 유일하게 짬되는 외제차 처리반이 저 혼자였을 때에,

재규어가 들어왔고, 어쩔 수 없이 제가 그 차를 운전했습니다.
그렇게 마냥.. 무너지는 오후였어요, 무너지는 하루였어요.



10년지기 고환친구들과 술을 마실때, 가끔 머릿속에 있는 자신의 미래 상상도를 꺼내보곤 합니다.
어느 날의 술자리에서, 우리 그럼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얘기해 보자고 했을 때에.

주저없이 재규어를 타고,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했던 저 자신이,
비 내리는 오늘 참 처량하고 서러워 견딜 수 없는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투표일, 백화점은 정상영업, 저는 열심히 (출근전에 투표하고) 또 다른 타인의 재산을 운전하겠습니다. 
차게와 관련 없는 뻘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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