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철게에도 인문학. 혹은 그 의의에 대한 논쟁이 꽤 많은 거 같아 짧은 소고를 써봅니다.
제가 그 동안 지켜본 바로는 인문학에 대한 오유님들의 견해는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1. 에휴 인문학 거 참 좋고 꼭 필요한 것인디 요즘 세상이 알아주지를 않네유 세상이 잘못된 거에유
2. 마 인문학은 그 자체로는 쓸모가 없다마 그래도 니기 그거 다 정신에 이로운거 아이가? 그거 하면 정신이 튼튼해져 다른 거 하는데 도움이 된다까네
3. 인문학이 뭐신지도 모르면서 나불되긴 나불대야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아가 없어 그런 거 아니갔소.보소 학곈지 뭐시긴지 썩어빠지갔고 지들끼리 다 해쳐먹지 않소
4 . 인문학 그거 참 괜찮은 거 같드레요 훌륭하드레요 근데 나는 바쁘드레요 딴 게 더 급하드레요
그런데 저는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왜 인문학이라는 걸 만들게 된 걸까요?
인문학은 처음에는 생존의 문제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끊임없이 전쟁을 일삼았던 고대 그리스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가 인문학의 기원이죠. 그 당시에는 전쟁을 멈추고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인문학이 꼭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고 패권국이 탄생하면서 질서가 발생하자 인문학은 생존의 절박한 철학이 아니라 부유한 자들과 귀족들이 잉여 시간을 때우기 위한 고도의 유희로 발전합니다. 지금도 서양의 부유한 가문들은 예술가와 작가들을 후원하고 고고학 연구를 지원하죠.
그렇게 유희로 발전했다고 해서 인문학이 타락했다거나 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부와 권력의 독점으로 자신들이 인간임을 망각하고 타락할 수 있는 지배층들의 정신문화를 수호하고 예술문화를 발전시켰죠. 패권국이 주변국들을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헤게모니는 바로 이 문화의 힘과 인문학적 교양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생존의 문제에 대한 사유에서 지적인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사유로 이동한 인문학은 오늘날 또 다른 전기를 맞게 됩니다. 이는 과학기술의 부흥으로 유래없는 물질을 누리게 된 인류가 이제 더 이상 인문학을 재미있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문학은 교양이고 교양을 쌓는다는 건 힘든 일입니다. 특히 주변에 다른 재미있는 유혹거리가 있을 때는 더더욱요. 게다가 세상이 다원주의화되고 서로 다른 가치관에 대한 존중이 의무화 되면서 인문학은 과학과는 다르게 더더욱 그저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상황을 나쁘게만 보지는 않는 것이 이제 인문학은 소수 부유층이나 귀족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출판사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책들을 접할 수 있죠.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에 독일지방 인민들이 아무도 라틴어로 된 성서를 읽을 길이 없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감사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문학은 마이너일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자본은 우리가 자본의 증식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하길 갈망합니다. 인문학도 결국 CEO들이 부하직원들을 다루는데 쓰는 도구가 되죠. 이런 환경에서는 단지 좋아서 하는, 혹은 멋져 보이니까 하는 본래의 인문학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본의 증식을 거부하자니 남들 다 가는데 나 혼자 남아서 서 있는 꼴이고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남아서 서 있을 사람은 서 있는 겁니다. 굶어죽어도 총살을 한다고 해도 뻗대는 것 그게 더 이상 생존을 위해서도 자본의 증식을 위해서도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기 때문에 하는 인문학의 자부심입니다. 이를 통해서 끝까지 남을 해치기를 거부하고 밢고 올라가는 것도 거부하며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지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