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제대한지도 어언 이십 년이 다 되어갑니다만, 이런 기억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죠. 몇가지만 풀어 볼께요.
1. 우리 부대는 대구 안에서 가장 큰 부대였습니다. 대부분 참모부 근무를 서는게 주요 임무였죠. 낮에는 참모부 행정병으로 밤에는 근무...
이런식의 패턴을 겪다가 제대하는 전형적인 행정병이었습니다. 뭐, 매일 야근을 밥먹듯이 합니다. 야근하고 잠깐 눈 붙일려면 깨워서 근무 서야 하는
지금 생각해도 참 힘든 하루하루였습니다. 일병때인가, 그날도 야근을 하고 내무반에 들어와 잠깐 눈 붙이다가 고참이 깨워서 2층 지휘통제실 근무를
서로 갔는데, 지통실 문에 =통제구역= 하고 빨간 글씨로 커다랗게 써 있거든요. 그런데, 이 글자가 아무리 봐도 =동대구역=으로 보입니다. 암만 눈을
씻고 봐도 동대구역으로 보여서, 그냥 내가 동대구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 집으로 가고 싶은가보다 하고 생각했네요.
2. 그런식의 근무는 온갖 환영을 보게 하는 것 같은데요, 일병짬밥에는 모든 것이 서투르고 고참이 많으므로 긴장이 되어 있죠. 그날도 2층 지통실 앞에서
근무를 서는데, 정말 졸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1층에서 누가 다다다닥 달려오는 것입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계단쪽으로 갔더니 2층으로
완장 찬 장교가 계단을 뛰어오더라구요. 놀래서 언 채로 그 광경을 쳐다보다가 그 장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리고도 계속 달려오더니 제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더군요.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서늘하네요.
3. 우리 부대 내에는 200미터 사격장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를 가려면 깔딱고개를 넘어가야 하는데, 병장때쯤 완장차고 야간 근무를 많이 서면서 외곽지
순찰을 하지요. 각 포인트에는 흰봉과 검은봉이 있어서 이것들을 교체하면서 순찰을 도는데, 유독 사격장을 지나갈 때면 소름이 오싹 돕니다. 하루는
달이 훤하게 뜬 날 사격장 포인트를 지나고 있는데, 사격장 위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하더군요. 깜짝 놀라서 몸을 숙이고 천천히 살펴봤더니
아주 천천히 사격장 사로를 왔다 갔다 하더군요. 시간이 밤 10시를 넘어서 실루엣만 무섭게 보이더군요. 이거 어떻하지? 하고 생각하다가 용기를 내서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누구세요! 하고 크게 고함 질렀더니 그자리에서 그 그림자가 쑤욱 작아지더니 사라지더군요. 놀래서 사로를 올라갔더니 밝은
달빛에 사로 안이 다 비치는데, 고양이 한 마리 없다는... 놀라서 바로 내려와서 중대로 돌아가서 그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참았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번에는 어릴 적 시골 경험담을 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