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부천사가 싫다
이선영
“후원 신청하시려구요?”
“어, 방송을 봤는데, 부모 없이 할머니랑 사는 아이를 돕고 싶어. 나 혼자 애들 키우기가 너무 힘들었어…. 꼭 그런 아이를 찾아줘요. 그래야 내가 살겠어….”
모금 방송이 시작되고 안타까운 아이들의 사연이 전파를 탄 후 한 할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후원 접수를 받고 있던 나는 “그래야 내가 살겠어…”라는 할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목이 메었다. 돕지 않고는 못 살겠다니…. 그 깊은 마음을 채 헤아리기도 전에 절절한 한마디만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진 것이다.
사회복지 기관에서 일하면서 주책없이 눈물을 흘린 기억이 또 한 번 있다. 중국집 배달원으로 생활하면서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온 후원자의 갑작스런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빈소를 찾았을 때였다.
고아원 출신으로 고시원에서 외롭게 지내온 고인의 빈소는 ‘철가방 천사’ 소식을 듣고 찾아온 기자들과 유력 인사들의 조문으로 북적이고 있었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보낸 근조 화환도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높은 분들의 이름이 붙은 꽃이 오토바이 헬멧을 쓴 채 환하게 웃고 있는 고인의 영정 앞에 놓이는 순간, 그 순간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장례식장 분위기를 취재하고 있던 한 기자가 다가와 “근조 화환을 보고 왜 우셨나요?”라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을 도와야 내가 살겠다는 할머니의 마음, 햇볕도 들지 않는 고시원에 살면서도 아이들을 도와온 후원자의 마음, 그 소박하지만 숭고한 정신, 작지만 거대한 실천이 감히 가늠할 수 없는 크기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언제까지 아픔을 겪어본 사람끼리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나’, ‘언제까지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해 그 팍팍한 지갑을 열어야 하는 걸까’라는 원망이 밀려왔다. 우리나라는 고액 기부자마저 평생 어렵게 돈을 벌어온 김밥 할머니, 채소 장수 할머니, 폐지 줍는 할머니이지 않은가?
철가방 천사로 알려진 후원자를 비롯해 기부자 할머니들은 자신들과 똑같은 고단함과 아픔을 겪고 있는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해왔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기 때문에 모른 척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살고 있음에도 정치인들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시민들의 고통을 보지 못하고 그들의 외침은 들리지 않는다.
국민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나라, 불행한 가정환경이 평생 굴레가 되어 가난을 벗어날 수도 고시원을 벗어날 수도 없는 사회를 만든 사람들이, 철가방 천사가 된 고인의 삶 앞에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 꽃을 선물할 수 있을까? 고인의 기사를 연일 대서특필하며 ‘이렇게 어려워도 나누며 산다’는 메시지를 전한 언론들은 나누며 살지 못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고 죄책감마저 느끼게 했다.
하지만 재벌과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지 않고, 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부당한 혜택에는 침묵했던 언론이 시민들에게 지갑을 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장례식장에서 만난 기자에게 대답하지 못한 내 눈물의 이유이다.
나는 더 이상 어려운 환경에서 힘겹게 나눔을 실천하는 후원자의 소식을 듣고 싶지 않다. 주책없이 눈물 흘리고 싶지도 않다.
더 이상 천사들이 자신의 고통을 타인의 삶에 투영하고 염려하며 힘겹게 나서지 않아도 되길 바란다. 철가방 천사가 되는 대신 어려운 과거는 훌훌 털고 토끼 같은 자식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사회이길 바란다. 할머니가 도움이 필요해 텔레비전에까지 나와야 했던 아이들을 걱정하며 다급히 전화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길 바란다. 불행한 일이 닥쳤다 해도 사회와 나라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보호해줄 거라는 믿음이 존재하는 나라이길 바란다. 도움을 주면 천사가 되고 도움을 받으면 위축되는 자선과 시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연대하는 방식으로 기부가 존재하길 바란다. 그래서 감히 ‘기부 천사’가 없는 세상을 꿈꾼다.
글쓴이 사회복지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