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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항쟁 1부 - 2. 어긋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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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Lemonade
추천 : 4
조회수 : 116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05/30 15: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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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심스러운 접촉

"거란병이 너희 나라에 도망해 있은 지가 3년이나 되었는데도 이들을 소멸하지 못한 때문에 황제가 군사를 보내어 이를 토벌하니, 너희 나라는 오직 군량을 도우라"

"황제의 명은, 적을 격파한 뒤에는 형제의 의를 맺으라 하였다"

서북면과 동북면을 한꺼번에 휩쓸며 내려온 몽고군과 동진군은 강동성을 공격하지만 실패합니다. 여기에 눈이 내려 군량 수송이 안 되면서 난감한 상황에 빠졌죠. 그런 가운데서 고려와 몽고의 접촉이 시작됩니다. 몽고군 장수는 합진이었고 동진에서는 완안자연을 파견했죠. 이에 조충이 개경에 문의하니, 개경에서는 이런 답이 옵니다.

"대국이 군사를 일으켜 환난을 구제하려고 하니, 모든 지휘에 다 응하겠다."

다만 사신을 누굴 보내느냐가 걸렸는데, 김양경이 자원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 했죠.

"내가 어릴 때부터 손자 오자 병법 배워서 아는데, 몽고의 진 치는 법이 손오의 병법을 취했다고 합니다."

조충은 김양경에게 1천명과 쌀 1천석을 딸려보냈고, 몽고 진영에 도착하자 합진은 그들을 크게 환영했다고 합니다. 김양경은 자신의 임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싸우든 화친하든 초장에 기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것을요.

그는 자신이 이끌고 온 병력에서 정예병을 추려 진 치는 법을 보여주고 광대들에게 여러 가지 놀이를 보여주게 했으며, 활 잘 쏘는 자들을 뽑아 성에 화살을 쏘게 했습니다. 화살은 백발백중으로 거란군이 성에서 달아났고, 합진은 이를 크게 칭찬했다고 하죠. 이렇게 첫 만남은 무사히 끝납니다.

이후 합진은 계속 고려 조정에 형제의 맹약을 맺을 것을 요구합니다. 이에 대해 최충헌은 대충 비위는 맞춰주지만 확답은 주지 않았고, 조충은 몽고군이 위험하지 않다고 여러 차례 개경으로 보고해야 했습니다. 슬슬 열 받아가던 합진을 달래는 것도 조충의 몫이었죠. 결국 그는 독단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2. 연합군 결성
몽고 진영에 병력을 이끌고 갈 장수를 뽑으려 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죠. 마침내 나선 사람은 다름 아닌 김취려, 사실상 고려군의 중심이었던 그였기에 조충은 만류하지만, 김취려는 단호히 나섭니다. 

김취려를 만난 합진은 우선 몽고 황제와 동진의 포선만노에게 절을 할 것을 요구합니다. 김취려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 하죠.

"하늘에는 해가 둘이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는 법인데 천하에 어찌 두 황제가 있겠습니까?"

당시 김취려는 키와 수염이 크고 아름다웠고 (...) 합진은 그런 외모와 꿀리지 않는 자세를 보고 오히려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김취려는 결국 포선만노에 대한 절은 거부하고 몽고 황제, 칭기즈 칸이 있는 방향으로만 절 했죠. 사나이다 생각한 건지 합진은 김취려의 나이를 물어봅니다. 김취려는 60이 다 돼 갔고 합진은 50이 채 안 됐죠. 

"내가 6국을 정벌하면서 귀인을 많이 보았으나 형만한 이가 없었습니다. 형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휘하의 군사보기를 또한 한 집안 같이 하겠습니다."

요렇게 김취려와 합진은 의형제를 맺게 되죠. 그렇게 몽고와 동진, 고려의 연합군이 만들어집니다. 김취려는 여러 차례 몽고군 진영을 오갔고, 수일 후에는 조충이 직접 왔습니다. 이 때 합진은 의형제 놀이가 좋았는지 조충의 나이도 물어봅니다. 이에 김취려는 자기보다 위라고 대답했죠. 합진은 그 역시 형으로 모셨죠.

+) 재밌는 점은 이 때 조충의 나이가 49세, 김취려보다 한참 어리고 합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는 거죠. (...) 그냥 통역이 잘못 돼 누가 직책이 위냐로 알아들었을 수도 있고 그래도 자기 상급자에 고려군 원수인데 아래로 두기 싫어서 김취려가 뻥친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근데 그게 통했다는 것은................ 아마 조충은 꽤나 노안이었나 봅니다.

201102111215779051_1.jpg

김취려는 팍사장님 포지션이라 생각하면 되겠죠 (...)

몽고의 풍습에 서로 칼로 고기를 먹여주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고려 장수들은 이런 행동에 당황했지만 조충과 김취려만은 개의치 않았고 합진도 그걸 보고 즐거워 했죠. 조충이랑 합진이 술 먹기 내기도 했는데 조충이 이겨놓고 "내가 막잔하면 니가 벌 받는데 손님이 그럼 안 됨" 하면서 막잔을 하지 않았고, 합진은 이에 더 대인배라고 칭송합니다.

... 잠깐 전쟁은?

3. 거란, 소멸
이렇게 편성된 연합군은 강동성을 공격합니다. 밖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강동성의 상황은 암울하기 그지 없었죠. 식량도 다 떨어지고 추위는 매서웠으며, 언제 죽나 기다리기만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나마 몇 개월 동안 버틴 게 더 신기할 정도였죠. 내분도 심해져 금산 왕자가 장수 걸로를 죽였으며, 그 역시 장수 통고여에게 암살당합니다. 그는 스스로 황제를 칭하지만 감사 왕자에게 죽죠. 그런 가운데 연합군의 총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김취려와 조충은 몽고군의 실력을 보게 됩니다.

합진은 강동성 남문에서 동문까지 너비와 길이가 10척이 되는 참호를 팠는데, 이 모든 게 순식간에 완성됩니다. 그는 완안자연의 동진군에 서문 북쪽을 맡기고 고려군에 동문 북쪽을 맡기죠. 몽고군의 성 공략법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단지 초원에서 말 달리는 자들이 아니라 오랜 전쟁을 거치며 공성에도 능해진 것이죠. 

거란군은 이를 보고 완전히 전의 상실, 포위되자마자 40여명이 투항했고 나머지도 붕괴돼 버립니다. 감사 왕자는 자살했고, 나머지는 모두 성문을 열고 항복합니다. 거란족의 최후였습니다. 뭐 반항한 이들 외에 많은 수가 몽고에 흡수됐고, 유목민족으로 싸움밖에 모르던 몽고를 제국으로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한 것도 거란인들이었죠. 몽고인의 절반이 좀 못 되는 수준으로 몽고 내에서 하나의 구성원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다만 그렇게 거란족이라는 정체성은 없어졌죠.

3-2_요.jpg

현재 몽골과 중국이 이 거란족의 귀속 여부를 두고 다투고 있으며,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다우르족이 거란족의 후예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발해를 멸망시키고 고려 초부터 참 짜증나게 부대끼고 살았던 거란은 마지막까지도 우리 국토를 휩쓸고 세계 최강의 몹까지 몰고 온 다음에 사라진 것이죠. 마지막까지 도움 하나 안 되는 놈들입니다. -_-; 이건 여진도 마찬가지였구요. 뭐 고려의 주적이었던 거란과 여진이 이렇게 중간보스 수준이 되었다는 것이 참 웃깁니다. 

4. 훈훈한 것 같은 마무리
합진은 거란 포로중 700명을 고려에 주었고, 김취려와 조충에게도 개인적인 선물 (15세 소녀 9명 -_-;) 을 합니다. 이 때 포로가 된 거란족은 고려 곳곳에 집성촌을 만들어 살게 됐죠. 뭐 천민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고려사에서 인물이나 사건을 평할 때 주로 인용했던 최씨는 조충과 김취려의 활약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고려사에 나오는 이씨는 이제현이라 하는데 최씨는 누군지 모르겠군요.

"옛날 서희, 강감찬만이 아름다운 이름을 독점할 수 없을 것이다. 어찌 세상에 드문 영웅 호걸이 아니겠는가?"

합진은 거란의 왕족이나 벼슬아치들은 모두 죽이고 나머지는 살려주고 끌고 갑니다. 그러면서 고려에 정식으로 사신을 보내겠다고 한 후, 조충과 이런 맹세를 하죠.

"양국은 길이 형제가 되어서 만대의 자손까지도 서로 잊어서는 안 된다."

1월 23일, 합진은 포리대완을 개경에 보냈고, 2월 22일에 철수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 조충 등이 의주까지 호송했는데 합진은 조충의 손을 잡고 울면서 작별했다고 하죠. 동진의 완안자연 역시 이런 평을 합니다.

"조원수는 기이하고 위대함이 보통 사람이 아니니, 고려에 이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하늘이 준 것이다."

헤어지는 길에 또 잔치를 벌였고, 조충은 취해 완안자연의 무릎을 베고 졸았는데 완안자연은 깨우지 않으려고 가만히 있었다고 합니다. 

참 훈훈한 마무리인 것 같죠. 그 몽고에게도 꿀리지 않는 기개를 보여주었으니까요. 하지만 이게 진심일 지도 알 수 없고, 진심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일선 지휘관급의 친교였을 뿐입니다. 합진은 여진인 41명을 의주에 머물게 합니다. 그러면서 고려의 말을 배워서 자기가 다시 올 때를 기다리라고 했죠.

한편, 사신으로 간 포리대완은 개경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고려 조정은 큰 충격을 받게 되죠.

일단 포리대완은 역관에 머물고 왕이 직접 오라고 협박합니다. 두세번이나 힐책하자 드디어 직접 들어왔는데, 이 때 화살을 차고 들어 왔고, 거리낌 없이 고종의 바로 옆으로 가서 손을 잡고 국서를 직접 건네줍니다.

이전에는 없던 일이었죠. 거란, 여진에게도 겪지 못 한 것을 생전 처음 보는 사신에게 당한 것이었습니다. 고종도 신하들도 당황했지만 아무 말도 못 했죠. 단지 최선단만이 울면서 이렇게 말 했습니다. 

"어찌 추한 오랑캐로 하여금 지존께 가까이 가게 할 수 있는가? 만일 형가의 변(암살)이 있으면 분명 막지 못 할 것이다."

그제야 포리대완도 화들짝 했는지 우리나라 옷으로 갈아 입고 들어옵니다. 이번에도 절은 하지 않고 읍만 했죠. 돌아갈 때도 금은과 수달 가죽 같은 온갖 보물들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몽고에서 온 첫 사신부터 이랬다는 것, 그 뒤의 일은 불 보듯 뻔 했죠.

국내로 들어온 적을 4년째에야 겨우 무찔렀다는 것, 그것도 외국군의 도움이 있은 후에야 이길 수 있었다는 것에서 고려는 몽고에 이미 끌려다니게 됐습니다. 만약 이들을 자력으로 이겨냈다면 어찌 됐을진 모르겠네요.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몽고는 심한 요구를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시작부터 크게 어긋나버린 것은 확실합니다.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조충은 서경에서 논공행상을 하려 했지만 반란이라도 일어날까 두려웠던 최충헌은 거부하고 곧바로 들어오게 합니다. 그러면서 조충과 김취려는 배제한 채 논공행상을 했죠. 그 후에도 최충헌 암살 시도는 있었고, 상을 못 받았다며 불평한 교위는 물론 그 주변 사람 100명까지 죽인 일까지도 있었죠. 

막장이 된 상항에서 고군분투했던 김취려와 조충은 이렇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 합니다. 그래도 이 둘 덕분에 얘기할 맛이 났습니다만... 이건 서전에 불과했죠. 본게임이 시작됐을 때 고려에는 이 둘이 없었습니다.

몽고는 계속 사신을 보내며 많은 공물을 바치기를 요구했고, 9월에는 동진국의 병력과 함께 국경을 넘어서 독촉하기까지 했습니다. 거란이 몰고 온 몹은 이제 고려에서 떠나지 않으려 했죠.

그런 가운데 최충헌의 시대는 끝나 가고 있었습니다.

출처 PGR21의 눈시BBver.2님의 글입니다, 지금은 어떤 닉네임을 사용하고 계신지는 헷갈리네요;

http://pgr21.com/pb/pb.php?id=freedom&no=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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