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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명동성당, 화염병 대신 촛불 든 시민의 등장'
게시물ID : sisa_10203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명바타
추천 : 15
조회수 : 120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8/02/05 19: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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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명동성당, 화염병 대신 촛불 든 시민의 등장'

과거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국내 촛불시위는 1970년대부터 등장한다. 
가두집회가 엄격하게 제한된 상황에서 촛불시위는 대학가 학내 집회나 천주교 사제들의 시국기도회에서 제한적으로 진행됐다.

시민들이 촛불시위에 본격 동참한 것은 1987년 6.10 민주항쟁부터다.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 논의를 금지하자, 민주화를 원하던 대학생과 시민들은 이에 반발해 도심 시위를 벌였다.
 6월 10일 시위를 마친 학생과 시민들이 명동성당 점거농성에 들어가면서 명동성당은 6월 항쟁의 구심점이 된다.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에 김수환 추기경은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저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도 밟고 가십시오"라고 맞섰다.

명동성당 농성은 5일간 지속되다 자진 해산으로 끝을 맺었다. 
농성이 끝난 6월 15일 저녁,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집전한 시국미사가 열렸다. 
명동성당에서 먼저 천막농성을 하다 6.10 항쟁 시위대의 숙식을 도맡았던 상계동 철거민들과 퇴근길에 합류한 넥타이 부대가 학생들이 떠난 자리를 대신 메웠다.

군사독재에 맞서 화염병과 돌을 들었던 시위대를 대신해 평화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촛불을 든 시민들이었다. 
만 5천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촛불시위가 처음으로 명동에서 펼쳐졌다.

출처 [1987년부터 2016년까지…촛불시위의 진화]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83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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