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으로 창창하게 복무를 하고 있는 직업군인으로서
솔직히 지금 북한에게 아주 조금은 고맙다.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소식은 훈련나가있을 때 듣게 되었다. 처음 이소식을 들었을때는 불안했다.
최전방에서 북한과 불과 10km안팎에서 근무중인 현역군인으로서(GOP는 아니에요)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되지만 솔직히 무서웠다.
'아, 씨발 X됐다. 전쟁나면 어떡하지...'
정말 무서웠다. 이전에 본 전쟁영화들속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있는 모습이 자꾸 상상이 갔다.
그리고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들이 모두 처참하게 바뀐 모습이 상상이 갔다.
소대원들을 바라보았을때, 그들은 휴식중에 웃고 떠들며 농담도 주고받고 평화롭게 담배피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을 보며 나는 그들중에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병신이 되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그들이 정말 안타까웠다. 나야 자원하여 군복을 입었으니 이것을 명예로 여기자. 라고 위안이라도 할테지만
그들은 솔직히 말해서 창창한 나이에 억지로 끌려온 것 아닌가?
나는 잠시나마 이렇게 나약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훈련이 시작되었을때 우리는 변화가 생겼다.
훈련이 즐거웠다.
실제 전쟁나는것보다 며칠밖에 나가서 텐트치고 자고 몇일 밖에서 뛰어다니고
몇일 추위에 덜덜 떠는거는 정말 행복이 아닌가?
만약 전쟁이나면 나는 이 평화로운 시기에 훈련을 했던 것을 그리워할 것 아닌가?
또한 훈련이 유익했다.
형식적이 아닌 실제적으로 전쟁이 벌어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몸을 움직였다.
소대원들도 그러했다. 살아남기위해서, 전쟁을 막기위해서 우리는 전투력을 키워나갔다.
하루 훈련이 끝나고나서 소대원들은 아무 불만없이 체력단련에 참가했고 잠시 다른 일때문에 늦게 참석한 인원도
남들이 한 운동량만큼을 남아서까지 소화해냈다.
몇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행군을 해서 부대로 복귀 후의 모습도 달라졌다.
병사, 간부라고 할 것도 없이 하루라도 빨리 부대정비를 마치고 전투력복원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킨 페이스북에서도 이미 전역한 친구들의 글도 보았다.
전투복과 전투화를 꺼내어 입어보고 한켠에 잘 두었다는 내용들...
그래서 지금 사실 북한에게 고마운 감정이 조금 있다.
나는 너네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매너리즘에 빠져 형식적으로 훈련을 하고, 소대원들을 교육하고
귀찮아했을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너네 덕분에 항상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게 준비를 해두었고
어떻게하면 살아남을지, 어떻게하면 너네를 쳐부술지 언제나 연구중이다.
전쟁은 나면 안된다. 하지만 그에대한 대비는 해두어야 한다.
나는 너네가 참 바보라고 생각한다. 정말 침략할거면 정전협정 백지화라든지 떠드는게 아니라 바로 행동으로 보였어야 했다.
우리는 덕분에 긴장감을 갖고 만반의 준비를 지금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