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당한 후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땀이 흐른다.
수분이 다 빠져 나가버리면
눈물이 나오지 않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영화 중경삼림 中 에서-
<그 남자>
아… 미치겠네.
술 먹고 기억 안 나는 게 한두 번은 아니지만
이건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통화시간 5분 17초
통화한 시간 새벽 2시 21분
통화한사람… 그녀
정확히는 두 달 전 헤어진 그녀.
두 달을 꾹 참았던 맨 정신과는 다르게
술에 취한 나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나보다
이런 대형 사고를 쳐버렸으니.
이렇게 되니 처음 헤어졌다가
다시 사귀었을 때가 생각나네.
기억할까 너는?
그때는 니가 술 먹고 전화했었잖아
혀짧은 소리 내며 진짜 헤어질 거냐고
매정하게 연락한번 없냐고 그랬었지
자존심 강한 너를 아니까
이렇게 전화하기까지 힘들었을 걸 알기에
토닥여주고,
그렇게 서로에게 미안하다며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말했었잖아
우린 아닐 거라 생각했어.
한번 헤어진 커플은, 더 쉽게 헤어진다는 그 말
우리에겐 해당이 안 되는 말 인줄 알았지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다
TV 잠깐 더 보겠다고 약속시간에 좀 늦고
회사 약속이 우선이라며 너와의 약속 미루고
내가 한 프로젝트니깐 빠지면 안 된다는 바보 같은 말
난 참 바보 같은 남자였어.
그게 우리의 사랑을 갉아먹는 줄도 모르고.
…어쨌든 그게 이별의 이유는 아니지만
우린 다시 헤어졌고
그렇게 두 달이 흘렀는데…
꾹 참았던 그리움이
어제는 왜 갑자기 그리 터졌나 모르겠어.
그 시간에 전화까지 하고 말이야
술 먹어서 완전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
나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니?
웃긴다,
너한테 술 먹고 전화한 게 쪽팔리다는 생각보다
술 먹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안나는 게
참 슬프네.
평소에 많이 듣고 싶었어
목소리…
<그 여자>
번호를 바꿨어
딱히 너때문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일이 겹치다보니 번호를 바꿨어
넌 내 핸드폰 번호를 싫어했었잖아
난 단순히 귀찮았을 뿐인데
은근히 신경 많이쓰던게 느껴지더라.
0624 . 내 핸드폰 뒷자리.
아니, 뒷자리였던 번호.
그리고 내가 처음 만나던 남자의 생일.
그땐 참 의미 있는 번호라며 좋았었는데
그 후엔 귀찮아서 그냥 쭉 쓰던 번호야
벌써 몇 년이나 전의 이야기인지…
넌 그래도 싫다며 매번 번호를 바꾸라고 했지
우린 둘 다 자존심이 쎄서 그런 사소한 걸로도 자주 다투곤 했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순순히 바꿀 걸 그랬나보다
어쨌든, 내 번호는 바뀌고 우린 헤어졌어.
그게 두 달… 이지?
이별에 좋은 이별은 없는 거래
좋은 이별, 나쁜 이별이 어디 있어
헤어지면 어차피 남남인거잖아
두 번의 헤어짐을 겪으며 이젠 다 잊을 거라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걸려온 니 전화 때문에 당황했잖아
이제 막 집에 왔던터라 참이라 다행이었지,
길거리에선 받기 싫었을거야
술에 취한 목소리
내 번호는 어찌 알았을까?
횡설수설하며 오늘 후배가 새로 들어왔다느니
부장이 계속 술을 줘서 힘들었다는 말도 하고
내일은 어떻게 출근 하냐며 한풀이도 하고
점점 쌀쌀해진다고 내 걱정도 한번 해주고
아무렇지 않게 잘자라는 멘트도 날리고 전화를 끊는 너
뭐야… 정말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이 감정은 뭐야…
보고 싶다는, 내 생각난다는 그런 말이 없어도
왠지 평범한 그 전화가 왜 날 더 아프게 하는 거야
술 많이 먹은 거 같은데
내일 아침 해장이나 잘하려나 걱정이네…
휴… 이 멍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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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네요.
그 여자는 이제 결혼해서
애도 낳고 잘 살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