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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약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환경오염과 고령화의 극적인 만남은, 그들로부터 오래된 책을 꺼내 들게 했다. 그리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그 낡은 책에서,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물론 그들은 알았다, 사람들은 그 단어만 들어도 절대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은 것처럼 공포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들은 또 알고 있었다, 그것의 위험성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을. 얼마 뒤 그들은 또 다른 낡은 책을 꺼내 들었다. 여러 노력 끝에, 그들은 그 무언가를 완곡하여 말할 방법을 찾았다.
"곤충도 멸종위기인 세상에서, 대체식량 따위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날은 내일의 전날이자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젠 식량 생산량을 줄이는 게 불가피합니다. 모든 사람은 이전보다 더 적게 먹을 필요가 있습니다."
"더 적게 먹는다니,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입니까?"
물론 반론을 제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인류를 소형화시키는 겁니다. 인류를 10분의 1 크기로 줄이면 소비하는 식량은 1,000분의 1이 됩니다. 획기적으로 식량 위기를 막는 방법이죠."
"그게 가능합니까?"
"모든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인류를 소형화시키는 겁니다. 또한, 적자생존을 통해 인위적으로 우월한 유전자만 남기게 되면…."
"그건 우생…."
"GMO라고 불러주십시오. 물론 부작용이야 압니다만, 인류 멸망 직전에서 그걸 따지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소비와 공급을 통한 부가 영원히 영원할 거라는 환상이 지금 우리를 이 자리에 서게 하였습니다. 당장 인류 개조를 시행해야 합니다. 그냥 넋 놓고 과학을 부정하며 사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어요?"
그의 주장은 엄청난 반발에 부딪혔지만, 수십 년이 지나자 젊은층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젊은 학자들은 그의 주장을 보완해나갔고, 인간을 개미 크기로 바꿀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또 수십 년이 지나자 심지어는 수명마저 개미처럼 짧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기존 인류의 몸 크기를 줄이는 건 불가능합니다. 오직 새로 태어나는 아기의 몸만 줄일 수 있습니다."
즉, 인류는 새로운 인류와 공존해야 하는 셈이었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새로 태어나는 개미 크기의 인간들이 살 곳을 만드는 겁니다."
"이들이 진정한 인류의 미래입니다. 지금까지 태어났던 모든 인류가 100년 뒤에 사망할 테니, 100년 뒤에는 이 개미들이 지구를 정복할 수 있도록, 우리의 문명과 과학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합시다."
그렇게 뉴욕 크기의 분지에 커다란 개미인간 도시가 만들어졌다. 탄소배출예술금지법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할리우드 예술가들은 건물을 짓고 도시 안을 알록달록하게 꾸미는 역할을 맡았다. 준비가 다 끝나자 정부는 개미인간을 도시에 풀어줬고 소량의 음식으로 이들을 키워나갔다.
한 3년 즈음 지났을 때였다.
"개미인간 도시의 인구가 현 인류의 인구수를 초월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1,000분의 1 크기인 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리 칩을 통해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고대시대, 중세시대를 거치고 이제는 산업혁명을 막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저희끼리만의 종교를 만들었는데, 우리 정부는 곧 우리가 신이라는 사실을 밝힐 예정입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신이 내려오는 줄 알겠죠."
사람들은 TV를 통해 생중계되는 개미인간 도시를 지켜보았다. 한 정치인이 고개를 숙이고 돔 형 천장으로 뒤덮인 개미인간 도시를 향해 스피커를 들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늘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개미인간들을 도시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로 관찰하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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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인간들은 생전주기가 짧아 10일을 살고 죽었다. 그러다 보니 한 세대도 3일 정도에 불과했고, 개미인간을 개조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개미인간 정부와의 12시간 남짓한 만남으로 자신들이 신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던 정부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다.
"이제부터 개미인간들은 누가 자신들의 창조주인지 서서히 깨닫게 될 겁니다.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간섭할 권리가 있다는 걸 인정할 것이며 우리의 갑작스러운 개입을 수용해줄 겁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개미인간들은 자유의지가 없었던 거냐며 분노하기도 했지만, 창조주인 인류를 믿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앞으로 개미인간을 개조해나가는 건 어떻겠습니다. 말하자면 업데이트 같은 겁니다."
그날 이후 주마다 수십만 개의 아이디어가 정부에 쏟아졌다. 그건, 인간뿐만 아니라 개미인간도 개조 아이디어를 정부에 제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날개를 달아달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혹은 강력한 근육을 달라고 했으며 어떤 개미인간들은 성기의 크기를 좀 더 키워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간은 개미인간들의 요구 따위엔 별 관심이 없었다. 인간이 원하는 건 오직 효율성뿐이었다.
"개미인간 도시는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있습니다. 개미인간이 굳이 걸어 다닐 필요가 있을까요? 개미인간 다리를 유전자 조작으로 제거합시다. 그대신 바퀴가 달린 옷을 개발한 뒤 만들어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과학자들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계속해서 개미인간을 업데이트했다. 인류의 장기적인 목표는 인류의 인구를 줄이고 개미인간 수를 늘리는 것이었다. 인류는 개미인간 연구 예산 확보를 명분으로 노인 복지를 전면 폐지하면서 인구를 과감히 줄여나갔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 건 한 정치인이 생각 없이 뱉은 말 때문이었다.
"굳이 이들이 팔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요? 커다란 머리에 일자형 몸을 갖춘 디자인으로 개미인간을 개조합시다. 기계 팔을 부착해주면 되는 일 아닙니까."
개미인간들은 반발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닙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짜증이 난 정치인은 고개를 숙이고는 역설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당신들에게 무료로 집을 드렸습니다. 무료로 야생에서의 위험을 막아주었습니다. 먹을 것과 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당신들이 원하는 모든 걸 죽을 때까지 이뤄줬습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 우리가 원하는 대로 몸을 바꾸는 게 그렇게 힘듭니까? 누구는 집 못 구해서 미칠 것 같은데…."
생각 없는 정치인의 말은 뜻밖에 많은 개미인간들의 공감을 얻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너무 많은 공감을 얻어냈다.
"인간들 진짜 호구인 것 같아. 아무 이유 없이 우리한테 이렇게 먹을 거 바치는 거 보면. 어휴, 인간들이 집 구하려고 힘들게 살 거 상상하니까 너무 즐겁네."
"인류의 미래니 뭐니 우리 찬양하는 거 보면 인간들은 너무 미개해. 할 줄 아는 게 그런 거밖에 없나."
개미인간들 사이에서는 인간을 미개한 종족으로 보는 시선이 널리 퍼졌다. 개미인간들은 고개를 숙이고는 열심히 벼를 수확하는 인간들의 땀을 보며 "인간은 우리의 노예!"라고 당당히 외쳤다.
한데, 개미인간들도 인류도 도저히 이해 못 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개미인간이 생겨난 이유는 인류의 식량 고갈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인류는 사라지고 개미인간만 남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수백 년이 지나도 인류는 여전했다. 비록 소수였지만 인류는 계속해서 살아남았다.
이상한 건 또 있었다. 개미인간들은 3년 만에 산업혁명을 이뤄냈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런 발전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퇴화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름다운 색으로 꾸며져 있던 그들의 도시는 어느새 모두 회색빛이 돼버렸으며 그들은 레고처럼 촘촘히 싸인 블록형 건물에 살아야 했다. 일하지 않아도 인간들이 먹을 걸 주다 보니 직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개미인간 도시는 오직 주거공간만 존재하는 서식지로 변해버렸다.
온종일 집에서만 살다 보니 근육은 사라져버렸다. 그들의 허리는 줄기처럼 얇아졌으며 그들의 몸에는 눈 코 입이 사라진 머리가 여러 개나 달려 있었다.
하물며 인간은 곤충마저 멸종하는 세상에서 뭘 먹고 사는 것일까? 바퀴벌레?
개미들은 몰랐다.
몇몇 인간들이 이걸 농업혁명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농부들도 몰랐다.
가끔 벼 낟알에서 이상한 철 조각이 발견되는 이유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