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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자랑스럽던 때가 있었습니다.
게시물ID : mers_8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pombe
추천 : 10
조회수 : 639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5/06/02 13: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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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2003년 초쯤에 영국으로 유학을 갔었습니다.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SARS 창궐 소식이 들리더라고요.
아시겠지만 영국이라는 나라는 흔히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는 1918년 독감 대유행을 직접적으로 겪은 나라 중 하나로, 이러한 전염병 유행에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습니다. 정부던, 의료계건, 언론이건, 일반 국민이건 전부요. 

제 친구들 입장에선, 날마다 뉴스에 SARS가 어느 나라서 몇 명이나 더 걸렸다느니, 몇 명이 더 죽었다느니 하는 소식이 나오는 와중에 웬 중국놈같이 생긴 놈이 들어온 겁니다. 

거의 매일 들었던 것 같습니다. 너희 집은 SARS 안 걸렸냐. 너는 안 걸렸냐. 너 가까이 오지 마라 옮을라. 농담조였긴 했지만, 신경이 쓰였으니 그런 말들을 했겠죠. 


전 그 사이에서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그 전에도 여러번 말했겠지만, 난 대한민국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홍콩과는 다르다. 
우리나라 병원들 무시 마라. 절대로 퍼지게 냅두지는 않을 거다. 
나한테 신라면이라는 시원한 물건이 있는데 묵어볼래. 

안 되는 영어로 어떻게든 그렇게 전했고 결국 그 친구들 중 몇은 수 년 후 그 학교를 같이 졸업할때까지 저한테서 신라면 컵을 박스로 사갔습니다. 아, 이 얘기가 아니지... 


SARS보다도 전염성이 약하다고 알려진 메르스바이러스가 휩쓸고 있는 걸 며칠동안 보아하니, 그때 우리가 뭔가를 특별히 달리해서 SARS가 퍼지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때 우리가 그저 운이 좋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부끄럽습니다. 이 사태는 우리나라가 의료 후진국이라는 걸 전세계에 광고하고 있습니다. 
낙타타고 다니는 그 나라 사람들이나 걸리는 풍토병일 뿐이라 치부하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은데다 때로는 귀찮아하기까지 한 행동의 결과물이 세계 메르스 발병율 3위, 메르스 중국 수출국이라는 오명입니다. 

오로지 정부만 탓할 건도 아닙니다. 학계/의료계에서, 그리고 우리 국민이 사전에 이러한 (불과 10여일 전의 시점으로써) 만약의 사태에 대해 구체적인 행동방침을 요구하지 않은 탓도 큽니다.  

영국같은 다른 나라가 딱히 더 잘나서 그런 체계가 잘 갖춰진 건 아닙니다. 그네들은 이미 100년 전에 한 번 호되게 겪어봤으니까요.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흑사병도 있고요. 

중요한 건, 그 놈들은 거기서 배워나가서 앞으로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그리고 앞으로 우리도 그래야만 합니다. 

앞으로 전염병은 메르스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누구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시행정이 아닌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효과가 있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물론 우리 국민의 절대다수는 관련 지식이나 결정권이 없거나 부족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 줄 알아야 영화를 평하고 자동차를 설계하고 조립할 줄 알야야 차를 평할 수 있는 건 아니듯이, 우리는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에게 결정권을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우리니까요. 순진한 생각이라 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전 적어도 아직까진 그렇다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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