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1월 설날의 일이다. 시골 친척댁을 가다가 기름도 넣을겸 잠시 휴게소에 들렀다. 차에서 내리면서 티맵을 끄고 포켓몬을 실행해보니 근처에 잠만보가 있다고 뜨는게 아닌가.
그 당시 내 트레이너 레벨 11. 간절곶에서 성장한 이후 정식 서비스가 되고서 폭렙중이었건만 참 저렙이었지. 나같은 저렙에게 체육관을 차지하고 있던 갸라도스, 잠만보, 이브이 진화3형제를 가진 트레이너들이 부러웠다. 물론 GPS 조작으로 그런거 쓸어담고 체육관 차지하고 돌아다니는 놈들은 그냥 논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들이다.
아무튼 포켓몬 위치를 찍어보니 대충 휴게소 건물 너머인것 같아서 그쪽으로 슬슬 걸어가고 있으니 저 뒤에서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달려온다. 폰 들여다보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달려오는 모습이 딱 트레이너더라. 그래서 그 애가 가까이 왔을때 나는 그에게 "잠만보?" 하고 큰 목소리로 물어보자 그 학생도 "네 잠만보!" 하면서 뛰어간다. 나도 모르게 그 학생을 따라서 뛰어가다가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잠만보가 나타난다.
이날을 위해 나는 커브볼을 돌리고 볼을 수급해뒀지... 는 개뿔 참 잡기 힘들더라. 계단 밑의 쉼터 비슷한 공간에서 그 학생과 내가 열심히 잠만보를 레이드 하고 있을때 하나둘씩 다른 트레이너들도 저 위에서 걸어내려왔고 그때쯤 나는 그들중 제일 먼저 잠만보를 잡을 수 있었다.
기분좋게 계단을 다시 올라가다가 왠지 옆에 리젠된 피카츄까지 잡은다음 도감을 열어서 잠만보를 보고있으니 아까 그 학생도 웃으면서 계단을 올라온다. 내가 "잡았어요?" 하고 묻자 학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내가 손을 올리자 그 학생도 기분좋게 손을 올려서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하고 헤어졌다. 물론 그 학생과는 거기서 처음 만난거다
그렇게 잠만보 잡고 휴게소 화장실에 갔더니 그 옆에서 잠만보가 있는 포케스탑쪽으로 가는길을 몰라서 출입통제 펜스앞에서 쩔쩔매는 트레이너들에게 그쪽으로 돌아서 가는길을 알려줬다. 펜스 너머에는 아까 잠만보를 잡던 그 쉼터가 보였는데 벌써 몇몇 사람들이 거기 모여서 열심히 볼을 던지더라. 아마도 잠만보 잡으려는 사람들이겠지.
그 이후 잠만보를 1빠로 잡았다는 기쁨에 취해 나는 휴게소 불량식품인 피카츄 돈까스(...)를 사서 케찹을 잔뜩 뿌려먹고는 다시 차를 타고 거기를 떠났다.
진짜 뚜벅이로 놀면 이런 소소한 재미도 겪을수가 있다. 조작질이나 하는 놈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그런것을...
-P.S- 그날 휴게소를 빠져나와서 한참을 달리다가 그제서야 더 중요한걸 생각하게 되었다. 차에 기름 안넣고 그냥 출발을 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에게 포풍 갈굼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