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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로 부터 배워야 할 것!
게시물ID : sisa_10235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둥글이8
추천 : 31
조회수 : 2613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8/02/18 10:22:41
십 오년 전쯤의 일이다. 시청 게시판에 지역의 정치인을 통렬히 비난하던 때였는데, 모 행사장에서 그가 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꼴보기 싫어서 얼굴을 돌렸다. 그런데 성큼성큼 다가온 그는 나에게 고개를 90로 숙이고 두 손을 내밀며 "잘 지내시죠."라며 인사를 해오는 것이다. 응하지 않을 수 없어서 손을 잡았는데, 나는 사실 그때 깜짝 놀랐다.

나는 그를 허고헌날 시청 게시판에 인간 말종 수준으로 비난하고 있었고, 나보다 나이도 열살은 많았던 터였기에 나를 보면 이가 갈렸을 텐데 그렇게 수모를 감수하고 다가와 고개를 숙이는 넉살이라니.

하여간 보수의 (속은 어떨 줄 모르겠지만) 그렇게 겉으로라도 상대방을 인정하고 인간을 배려하는 듯한 '수용적' 태도가 보수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는 듯 싶다.

진보들이 각각의 조직 내에서 마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을 가지고 침소봉대해 이념적으로 갈라지고 철천지 원수가 되어 서로 잘났다고 원자화된 삶을 산다. 사회적 약자의 해방을 달성하고자 하는 '시대정신'에 기반한 진보적 이상주의는 그 '투철한 사명감'으로 인하여 '내 방식의 이념과 활동만 정의이고 진리'라는 독단으로 흐를 수 있고,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진저리를 치고 떨어져 나가게 하며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구실까지도 하게 된다.

이에 반해, 사람을 다독이는 보수의 특성은 진보적 이념싸움에 지친 사람들들마저 포용하는 포근함이 있다. 부녀회, 경로당, 봉사회 등에 허고 헌날 모여 히히덕 거리면서 야금야금 사회를 좀 먹어 왔던 그들의 친화력은 정령 파급력 있는 사회 조직력인 것이다. 사람 질리게 하는 (진보적)이상과 사람 감싸 안는 (보수적)감성의 차이이다.

세태에 바쁜 대중들이 머리 아프고 짜증이 나고 훈장질하는 소리 듣기 싫어서 진보를 멀리하고, 보수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이유도 진보에는 인간미가 없고 이론만 가득한 이유가 크다. 대중들이 왜 자기들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인지를 살필 여력도 없이 줄기차게 자기 얘기만 쏟아내는 '투철한 사명감'과 '이상주의'는 진보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가공할 저주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앞으로의 30년을 내다보면서 그간의 이념과 이상에 치우친 활동 방식을 반성하고 대중의 세계로 파고드는 활동의 세계를 개척해야 한다.

그나마 천운에 의해 보수의 기반이 무너진 이 시기에 진보들은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는 대중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보수들이 다시 기반을 공고하고 전열을 다지기 전에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 우리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

"우파들이 말하는 것은 사기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을 향해 말한다. 좌파들은 사실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물에 대해서만 말한다." - 에른스트 블로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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