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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거리도 없고, 10232글 댓글을 끌어 올립니다.
게시물ID : religion_102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와의첫날밤
추천 : 5
조회수 : 454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2/10/30 14:40:47


저....  저는 '지배하라, 차지하고 소유하라'고 말씀드린적이 없는데요? 인용한 말씀에도 그런 부분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1:26)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창1:28)

위에 구절처럼 분명히 저는 '다스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양을 치는 목자처럼 보호해주어야하고 동물 또한 피조물이기에 필요 이상으로 죽여선 안된다 말씀드렸습니다

위의 말씀과 전 댓글에 쓴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애초에 인간을 만든 이유도 동물을 다스리기 위해서 였었고 살생하고 먹는 것 또한 허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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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왕 쓴거니까 새로운 글도 잘 안 올라오고요. 그래서 댓글을 끌어다 붙였습니다.


뉘앙스라는게 있죠. 텍스트에 다스린다를 지배개념으로 쓰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그런 의미로 보입니다.
마지막 글 보면 딱 그런 뉘앙스죠. 말만 다스린다고 안 썼을 뿐. 결국 지배개념이죠.
다른 생명체의 생명을 해하는걸 허락하는게 지배개념이지 평등이나 수평구조로 볼 수 있을까요?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으므로,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풀 한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창 2:5

땅을 갈아줘야 식물이 자라나요? 아니면 창조설화의 기자가 척박한 주변환경에 영향을 받아서 썼다고 봐야 할까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 주변에는 나무도 당연히 자랄 수 있죠.
주변이 대부분 사막인 곳에서는 버려진 모래들이 갈아주지 않아 척박해졌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이러니 인간이 갈아주는 땅이 식물 서식지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이죠.
창조설화의 협소한 인식을 이해하려면 이 당시 상황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를 "삶의 자리"라는 표현합니다. 신학용어인데 요즘에는 사회학, 경제학까지 두루 쓰이는 용어 입니다.

이전에도 언급했었던적 있는데요. 인간에게 진짜 원죄가 있다면 두 가지가 있죠.
지 어미를 열달 동안 불편하게하고 배 앓아 낳게 한 죄.
먹고 살기 위해 무언가를 죽어야 한다는 죄.

인간을 만든 이유를 동물을 다스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현재 대다수의 인간이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군요.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건 비종교인들에게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터무니없는지 그 이유만 제공할 뿐이죠.
왜냐하면 이런 질문과 대답을 이미 기원전부터 줄기차게 해왔고 수많은 랍비들과 변증가들이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했죠.
"동물을 다스리기 위해"를 인간의 창조 이유로 보는건 기독교의 신을 목장주인 정도로 밖에 취급하지 않는 겁니다.
주객전도라는 표현을 이때 쓰는거죠.

창세기만 가지고 인간 창조의 이유를 찾으려고 드니 이렇게 됩니다.
성서 텍스트를 놓고 인간 창조의 이유를 찾는다면 골 1:16를 들먹어야 합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었습니다.

      골 1:16


즉, 기독교의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 그게 예수죠. 그 예수를 위한 것. 그래서 그 창조의 화룡점정이 인간인 겁니다.
동물들 다스리려고 만들었다는 이유는 너무 궁색하고 안스러울 정도의 이유 밖에 안 됩니다.
스스로 비참해지지 않나요? 내 존재의 이유를 지구의 생명체를 경영하기 위해서 밖에 설명이 안된다면요.

보기에 좋았다. 보기에 좋았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피조물이 인간입니다.
"보기에 좋았다"의 궁극적 완성이 인간 입니다.

피식 웃으면서 "어이구 잘났네 잘났어"를 진짜 잘난줄 아는것과 별 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유를 위해 원인을 애써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텍스트, 텍스트, 텍스트 지겹지요? 그 텍스트에 묻혀서 기독교인들이 "본질"이라고 외치는걸 찾는 겁니다.
본질, 본질, 본질, 저는 그 본질이라고 외치는 것이 너무나 지겹습니다. 

신학은 그 원인을 궁금해 하는것이지 이유에 걸맞는 대답을 찾으려는게 아니에요.


사족 1. 이레니우스의 창조론에 대해서 더 쓰고 싶은데..

위의 글로도 충분히 通했다 생각합니다.

도리어 기독교인들이 제가 쓴것처럼 대답해야 옳습니다.


사족 2. 두란노를 언급하셨는데 두란노의 입장은 두란노 서원의 입장만 대변합니다.
그걸 기독교 전체의 입장으로 대표하려고 하지 마세요.


사족 3. 기독교인들 중에 유난히 "본질"을 말하면서 본질을 모르니까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하는데..

그냥 본질을 알려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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