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에 찔려버렸다. 삶과 죽음 사이에 서있던 나는 신념이 유리같이 깨져버리는 것을 느끼며 검의 주인을 바라본다. "왜.... 왜 너인 것이지?" 물론 나에게도 검은 있다. 하지만 검집을 뚫고 나와 그의 가슴을 찌르지는 못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나를 찌른자가 나와 생사고락을 했던 자이기 때문이겠지.... 방금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의 어줍잖은 농담에도 웃었던 얼굴은 석고처럼 굳어버렸고 가슴에 찔린 검에는 단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검식이였다. 하지만 그런 나약함과 오만함이 뒤섞인 검에 나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다. 슬픔, 연민, 고통, 그리고 비탄. 수만가지의 비극적인 감정이 얽히고 설키면서 나는 무릎을 꿇은 체로, 그의 검을 빼낼 생각도 하지 않으며 그를 바라본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줄 알았어... 그런데... 그것이 왜 너인 것이냐!" 소리를 지르면 안되지만 흥분에 찬 내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검에 뚫린 배와 입에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온다. 허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 왜... "왜 너인 거냐고...." 그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는다. 내 배를 찌른 검을 나유타의 시간동안 붙잡고 있다가... 불길한 것을 만졌다는 듯이 황급하게 검에서 손을 땐다. "...미안하네..." "그런 말을 원하는 게 아냐..." 숨이 가빠진다. 시야가 좁아진다. 쏟아지는 핏줄기가 점점 더 굵어진다. "나는... 더 먼 미래를 보았어..." "어떤... 미래를.... 본건가..." "우리가... 더욱더 번성한 삶을 누리는 미래를..." "너는... 우리가 원한 것이.... 그게 아닌 것을 알고 있지 않나...." "알아. 하지만.... 해야만 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말이야... 미안하네... 날 용서해주게..."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석양이 내뿜는 빛이 사그러갈 즈음... 내 몸에서 울컥거며 터져나오는 뜨거은 선혈이 대지를 더욱더 붉게 만든다. "자네가 희생양이 된 것을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네...." 라고 말하며 그는 불결함이 묻어있는 검을 천천히 잡는다. "제발.... 제발 그러지 말게나...." "미안하네...." 라고 속삭이듯 말하던 그는 이내 검을 뽑아 버린다. 그리고는 검에 묻은 피를 닦지도 않은 체로 검집에 집어넣고 나에게서 등을 돌린다. 아마 자신의 왕국으로 가겠지... 이제 그곳은 황국이 되겠지... 그렇다면.... 내가 서있어야 할 곳은 이제 어디인 것일까.... 일어나려 하지만 몸은 반대로 대지에 고꾸라진다. 어느 순간 나오던 피는 점점 색이 옅어져간다. 나의 몸을 채우던 그와의 기억은 옅어져간다. 그리고... 나는 그자리에 기절하듯 잠을 자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