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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집(납량특집)
게시물ID : humorbest_1024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회중시계
추천 : 44
조회수 : 2143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5/08/01 19:13:47
원본글 작성시간 : 2005/07/13 00:04:17
어느분이 겪은 실화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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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은 구미에서 멀지않은 강정이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낙동강을 끼고 논과 밭 과수원이 있는 그림같은 마을이었지요.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국민학교 2학년때 구미로 이사와서 

줄곧 구미에서 살았기때문에 실제로는 구미가 고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국민학교 1학년에 입학하고 얼마후의 일입니다. 

우리동네는 낙동강의 홍수를 대비해 쌓은 방천(표준말로 제방이라고 하나요?)을 따라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과자며, 술, 연필, 공책 따위를 파는 가게가 딱하나 있는 정말 쪼끄만 동네였지요. 

학교는 동네에서 걸어서 거의 40여분 거리에 있는 읍내에 있었습니다. 

아침에 학교갈때는 동네 아저씨가 소달구지에 아이들을 모두 태워서 가곤 했었지요. 

우리집은 동네에서 좀 떨어진 외딴곳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사과와 복숭아였지요.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동네아이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았었습니다. 

집에 누나들이 많았고, 과수원에서 노는것도 재미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 과수원에서 동네로 가기가 어린 저에게는 만만치 않았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동네로 가려면 방천을 따라 가던가, 아니면 과수원길을 따라 

가야 했는데, 과수원길은 아름드리 아카시아나무가 양옆으로 줄지어 있는데 

거의 동굴처럼 되어 있어서 대낮에도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그런 길입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가보니 기껏 100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길이었고 

또 너무나 아름다운 길이었는데…… 

그땐 왜 그리도 무섭고 길게만 느껴졌었는지… 정말 그 길로는 거의 

다녀본 기억이 없습니다. 

마을로 가는 또 다른 길은 방천(제방)으로 가는 길이었는데요… 

마을로 갈 일이 있으면 전 그 길로 가곤 했었습니다. 

대략 400미터쯤 가야 했었는데, 사방이 틔여있어서 과수원길 보다는 

방천길이 더 좋았지요. 

그런데 문제는 방천의 중간쯤에 상여집이 하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상여…아시죠? 장례치를때… 관을 실어 옮기는… 

마을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상여였는데, 사용한후에는 항상 

그 상여집에 보관해두었습니다. 

그 상여집은 … 사과궤짝같은데서 뜯어낸 판자조각들을 얼기설기 덧대어서 

대충 지은 판자집이었는데, 아주 큰 개집을 연상하시면 될겁니다. 

방천의 낙동강쪽 경사면에 지어져 있었고, 지붕높이가 방천길 높이와 

거의 같아서 방천으로 걸어가면 상여집의 지붕윗면을 볼수 있었지요. 

아무튼… 그 상여집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마을엔 왠만해선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니… 사정이 달라졌지요. 

친구들… 친구들이 생겼는데… 당연히 그 친구들은 방천 끝쪽 동네에 살고 

있었지요. 

우리 과수원과 동네는 방천의 끝과 끝이었고… 

우리집 가까이엔 역시 과수원을 하는 두집밖에 없었고, 그 두 집엔 

내 또래의 애들은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마을로 갈수 밖에 없었지요. 상여집을 지나서 

말입니다. 

처음엔 무척 무서웠는데, 그것도 자주 지나다니니까 아무렇지도 않더라구요. 

한번은 판자틈사이로 안을 들여다봤는데… 

색색의 종이꽃으로 예쁘게 장식된 상여가 있었습니다. 

앞쪽에 붙여진 유난히 크고 빨간 종이꽃이 정말 예뻤지요. 

그렇게… 1학기가 거의 다가고 여름방학을 몇일 앞둔때였습니다. 

동네 꼬마들은 10여명정도 되었는데 대장은 5학년인 동철이었습니다. 

덩치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잘 다루었고 의리도 있었던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같이 어울리고는 있었지만, 왠지 아이들과 나 사이에 

어떤 거리감 같은것이 느껴졌었지요. 

그날…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내가 모르는 '본부' 라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마을 뒷산 아래에 제법 깊은 동굴을 파고 위장해놓은 그들만의 본부였습니다. 

안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책걸상이며 전지후레쉬, 나무로 제법 정교하게 깍아 만든 

총기류(ㅡㅡ;) 등이 가득 들어차 있었지요. 

내가 그들과 어울린지 반년이 다 되도록 까맣게 모를정도로 본부에 대한 

그들의 비밀은 철저하게 지켜졌던 것이지요. 

본부요원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테스트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요원'이라 자칭했고,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아이들에 대해 
묘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원이 되기 위한 테스트란 바로 방천에 있는 상여집이었습니다. 

'본부'에서 지정해주는날밤, 혼자서 상여집에 들어가 상여에 장식되어 있는 

종이꽃 한송이를 따오면 요원이 될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상여장식용 종이꽃을 만드는 얇은 습자지같은 종이는 동네에서는 

구하기 힘든 귀한것이었기에 집에서 몰래 만들어 온다는건 꿈도 꿀수 없었고 

종이가 있다해도, 꼬마들이 그렇게 예쁘게 만들수도 없었지요. ^^; 

나는 테스트를 자청했습니다. 

몰랐다면 또 모를까… 알고도 하지 않을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한밤중에 상여집은 더할수 없이 무서웠지만, 겁쟁이로 소문나는건 

죽기보다 더 싫었으니까요. 

… … 

예정된날 밤. 자정이 다되었을 무렵. 

나는 '요원'들을 뒤로하고 상여집을 향해 마을을 나섰습니다. 

그날따라 구름에 걸린 초승달은 더욱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시골 동네 생활리듬이 밤 9시만 넘으면 다들 잠자는 시간이었기에 

마을은 몇몇 개들이 짖는 소리외에는 적막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마을끝에 위치한 유일한 가게를 지나자 방천이 보였습니다. 

드디어 방천길에 올랐을때… 달빛이 생각보다는 밝다는것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방천 아래로 동네의 윤곽이 어슴프레 보이고, 저 멀리 과수원의 우리집 지붕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상여집도. 



나는 무서움을 떨쳐버리기위해 학교에서 배운 노래도 부르고 

과장되게 발을 쾅쾅굴러보기도 했지만, 시선만큼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딛을때마다 다가오는 상여집. 

달빛을 받아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상여집 지붕에서 단 한순간도 눈을 뗄수 없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쉴새없이 말을 걸면서 한걸음씩 내 딛었지요. 

'별거 아냐. 아무것도 아니라구' 

'비록 낮이었지만… 수도없이 이길을 지나갔잖아. 별거 아니라니까!' 

'후딱 해치우면 돼. 넌 저안을 들여다보기까지 했잖아.' 

'그냥 문열고 손을 뻗어서 하나 따오면 돼. 들어갈 필요도 없어. 별거아냐.'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여집이 가까와질수록 심장은 

터질듯이 쿵쾅거렸습니다. 발걸음은 한없이 느린듯한데, 상여집은 

왜 그리도 빨리 다가오는지…… 



한순간, 나는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상여집 문앞까지 갈려면 방천에서 약 2미터 정도 내려가야 했는데 

지금도 내가 어떻게 내려갔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정신을 차렸을때, 나는 이미 상여집 문앞에 서있었으니까요. 

문은 판자조각으로 잇대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자물통은 없었고, 그냥 바깥쪽으로 걸쇠만 걸려 있었습니다. 

안쪽에서는 열수가 없었지요… 당연히, 안쪽에서 누가 열 이유는 없으니까. 

나는 내가 해야할 행동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걸쇠를 젖히고, 문을 연후에, 들어가… 아니, 들어가지 않아도 돼! 

그냥 팔을 뻗어서 꽃을 딴후에, 뛰면 된다. 

간단했지요. 그리고 대장에게 자랑스럽게 꽃을 건네주면 되는거였습니다.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천천히…… 

철로 만들어진 걸쇠에 손끝이 닿았습니다. 그 차가운 느낌… … 

걸쇠를 젖히고… 걸쇠를… 젖히...고… 

… … 젖혀!! 걸쇠를 젖히라니까!! 

하지만 걸쇠를 잡은 내 손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소리… 그 소리를 들었기때문에. 

그 소리는 뒤에서 들려왔습니다. 상당히 멀리서 들려오는듯한 소리였지요. 

마치… 양은으로 만든 세숫대야를 방천위에서 아래로 굴리는듯한 소리… 

탱… 탱그렁… 탱… 

난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귀신이 바로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을것만 같았습니다. 

걸쇠를 쥔상태로 얼마를 있었을까… … 실제로 그리 오랜시간은 아니었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도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았지요. 

별거 아냐… 누가 세숫대야 들고 가다 떨어뜨렸을거야… 

젖히고… 열고… 따고… 뛰면 돼. 뛰면 돼. 

막 걸쇠를 젖히려는 순간, 그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습니다. 

훨씬 더 가까이에서… 훨씬 더 또렷하게… 

탱그렁… 탱… 탱그렁… 탱…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심장은 미친듯이 쿵쾅거렸고 

온몸은 마치 흠뻑 비를 맞은듯이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걸쇠를 젖히고, 있는 힘껏 문을 열어 제꼈습니다. 

삐이이~잌~ 콰앙~ 

문이 열리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날줄은 몰랐습니다. 

순간적으로 무섭다기 보다는, 동네사람들이 다 깨는줄 알고 

깜짝 놀랐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내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는것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상여는 생각보다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고, 꽃을 따기 위해서는 

한발을 들여놓을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문하나 열었을뿐인데, 나는 백미터를 전력질주한것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 이제… 어떻하지? 들어가야 하나… 

나는 왼손으로 문설주를 잡고 최대한 팔을 뻗어보았습니다. 

… 시팔… 20센티만 더 길면 되는데…. 

정말 내 자신이 아직 쪼끄만 꼬마라는게 화가 났습니다. 

대장만큼만 컸어도… 그냥 딸수 있을텐데. 

나는 천천히… 오른발을 들어 안쪽으로 들여놨습니다. 

그리고 발을 디디는 순간, 발밑으로 먼지가 뽀얗게 피어올랐습니다. 

퀘퀘한 곰팡내… 무언가 썩고있는듯한 고약한 냄새… 

거미줄… 거미줄이 얼굴에 처~억 감겨왔습니다. 

이제 손만 뻗으면 닿을곳에 꽃이 보였습니다. 

유난히도 붉은, 예쁜 종이꽃…… 

나는 그 붉은 꽃을 땄습니다. 

이제 나가서 뛰면 된다. 두번다시 안올거야! 

발을 들어 밖으로 몸을 뺐을때… 또다시 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로 뒤에서! 

탱그렁!!! 탱…탱탱…탱그렁!! 

나는 외마디 비명소리를 지르며 방천아래로 굴러떨어졌고 

구르는 중에도 그 소리는 계속 귓가에 울려퍼졌습니다. 

나는 거의 울부짖으면서 방천을 기어오르려 했습니다. 

방천의 경사면은 그리 가파르지 않았습니다. 평소엔 

평지나 다름없이 뛰어다니며 오르내렸는데…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듯이 조금 기어오르다 

미끄러지고… 기어오르다 미끄러지기를 여러 번…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순간 나는 방천위에 엎드려 

헐떡이고 있었고, 한숨을 돌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나는 보고 말았습니다. 

상여집 지붕위에 앉아 나를 노려보고 있는 할머니를. 

상여집 지붕은 삼각형처럼 뾰족했습니다. 절대로 앉을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는 허리 아래가 없었습니다. 

허리 아래가 없는 할머니는 상여집 지붕위에서 팔짱을 낀채 

꼼짝도 하지 않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내가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그곳을 벗어 났는지, 

어떻게 마을까지 왔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는 문닫힌, 하나뿐인 가게앞 하나뿐인 가로등아래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오른손엔 구겨진 종이꽃이 쥐어져 있었고, 옷은 온통 흙먼지 투성이었습니다. 

이대로 갈수는 없었습니다. 

가게 옆 집 마당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얼굴을 씻고, 옷도 털어내고 씻어냈습니다. 

( 그때에는 몇집을 빼고는 대부분 대문같은건 없었습니다. 물론 수도같은것도 
없었고, 수동식 펌프가 있고 그 곁엔 항상 커다란 고무다라이에 
물이 가득 담겨있었지요.) 

본부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은 내 몰골을 보고도 그다지 놀라워하는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당연히 그리될줄 알고 있었다는듯이 

이것저것 물어보지도 않고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나는 그 이상한 소리나 귀신을 본것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헛소리나 헛것을 봤다고 놀림감이 될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대장은 내가 건네준 구겨진 종이꽃을 정성스럽게 다시 펴서 본부(동굴)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은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듯이 엄숙하게 대장뒤를 

따라 들어갔습니다. 저도 따라 들어갔지요. 이제 들어갈수 있는 자격이 있으니까. 

대장이 전지 후레쉬를 켰고, 본부 제일 안쪽 구석에는 커다란 나무상자가 놓여있었습니다. 

뚜껑을 열자, 상자안에는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꽃이 수북이 쌓여있었습니다. 

대장이 연필로 내가 따온 꽃에 내 이름을 적으면서 나를 보며 웃었습니다. 

" 이제, 이건 니꽃이야. 요원. " 

그러면서 후레쉬로 내가 따온꽃을 비추었는데, 

그 꽃은 붉은 꽃이 아닌, 그냥 흰색 꽃이었습니다. 

분명히 붉은 꽃을 따왔는데… 

" 대장, 내가 따온건 빨간꽃인데… " 

" … 알아. " 

대장은 모든걸 다 알고 있다는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 이름이 적힌 꽃을 

상자에 곱게 넣고는 가만히 뚜껑을 닫았습니다. 

" 요원. 이제 우리 본부의 요원으로서 무슨일이 있어도 본부가 있다는것도, 위치도 
발설해서는 안된다… 알겠제? "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대장은 비밀을 누설했을 경우 당하게 될 '응징'들을 나열하며 

다시한번 나의 다짐을 받아냈습니다. 

모든 의식이 끝나고 어디서 구했는지 주전자에 가득든 막걸리를 가져와 나누어 마시고 

한시간여를 떠들고 놀다가 그날밤은 본부에서 잤지요. 

그날 안 일이지만, 대장은 담배도 피웠습니다. ㅡㅡ; 




그리고 나는 한동안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꿈은 매번 똑같았는데… 엄마와 둘이서 방천길을 걷고 있습니다. 

물론 한낮이었구요. 나는 한손에 양은 세숫대야를 들고 엄마뒤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실수로 세숫대야를 떨어뜨렸는데 방천 아래로 굴러떨어졌습니다. 

탱…탱그렁…탱..탱…그렁… 

엄마는 무섭게 야단을 치시면서 당장 줏어오라고 하십니다. 

나는 방천아래로 뛰어 내려갔지만, 세숫대야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혼날것을 생각하면서 방천을 올라오는데… 자꾸 미끄러집니다. 

어찌 어찌 겨우 올라오면, 엄마는 온데간데 없고, 

마을도, 우리집도,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입니다. 

보이는 사방에 집도… 사람도… 개나 소도… 익숙한 그 무엇도 없는 허허벌판입니다. 

나는 악을 쓰며 엄마를 찾다가 깨어납니다. 



거의 열흘간 매일밤 똑같은 악몽을 꾸었고, 해가 갈수록 그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그 꿈을 꿉니다. 똑같은 꿈을. 



그렇게 내 국민학교 1학년의 2학기를 맞았고, 우리 동네에 작은 사건이 

생겼습니다. 대구에서 계집아이가 이사를 왔는데, 공부도 잘하고 무엇보다도 

인형처럼 예뻤습니다. 그 아이는 나보다 3살이 많은 4학년이었고 

우리 동네에 유일하게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앞바퀴가 하나인 바퀴세개짜리 용달차였지만, 우리동네에서는 대단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손으로 힘들게 시동을 거는 이장님의 경운기가 마을 최고의 탈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놀라운것은, 이 계집애가 예쁘장한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대단한 싸움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본부의 요원인 상당수의 형들이 이미 그 계집애에게 무릎을 꿇었으니까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 계집애는 걸음마보다 태권도를 먼저 배웠다고 

하더군요. 진짠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그 싸움 잘하는 예쁘장한 소녀때문에 우리 요원들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소녀와의 

싸움을 피하는 눈치였고, 은근히 대장이 직접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대장도 언제까지 모른척 할 수는 없었나봅니다. 

어느날, 대장은 요원들에게 그 소녀를 낙동강변으로 데려오라 했습니다. 

요원들과 함께 나타난 그 소녀는 정말 당당했습니다. 

십여명의 머스마들에게 둘러싸였는데도 조금도 기죽은 기색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장도 만만치 않았지요. 

그대로 앉은채로 모닥불을 뒤적거리면서 소녀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꺼냈습니다. 

" 니, 나무 동네 왔으마… 조용히 지낼끼지… 와 그카노. " 

" 니가 이 동네 골목대장인갑제? 나무 동네 아이다. 내도 이사왔다 아이가? 
이제 여가 우리 동네인기라. " 

그 소녀도 조금도 지지 않았습니다. 

" 그라마… 우리캉 친해질라고 해야지… 와 잘 놀고 있는 아 들하고 싸우고 난리고? " 

" 너들이 언제 내캉 놀아줬더나? 여자라꼬 깔보고 무시하고 안그랬나? " 

소녀가 아이들을 노려보자 모두들 찔끔하는 눈치였습니다. 

대장은 소녀를 한번보고, 우리들을 한번 둘러본후에 다시 소녀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 원래… 우리는 가스나는 안 끼워준다. 어데 머스마들 노는데 가스나가 끼겠노? " 

소녀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주먹을 꽉 쥐더니 아이들을 노려보며 

앙칼지게 말했습니다. 

" 느그들… 다 나한테 졌제? 함 말해바라… 니들이 머스마라꼬 내보다 
잘하는게 머가 있노? 쌈을 잘하나, 공부를 잘하나. 함 말해보라카이! " 

모두들 아무말이 없었습니다. 

대장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한참동안을 웃더니 소녀를 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사투리를 쓰지 않고 또박또박…… 진짜로 화가 났다는 증거입니다. 

그때.. 대장이 나이답지 않게 상당히 멋진말을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뭐…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다… 

아무리 잘났어도 여자가 할수 없는게 있다… 뭐… 그런 얘기였는데 

아무튼 상당히 멋있어 보였다는… ㅡㅡ; 

그때 옆에 있던 한 아이가 상여집 얘기를 꺼냈습니다. 

" 맞다카이, 가스나는 상여집 못간다카이. " 

일순, 모두들 그 아이를 쳐다보았지요. 대장도 무섭게 화난 눈으로 

그 아이를 노려보았습니다. 

소녀는 그게 무슨말이냐고 따져물었지만 다들 우물쭈물 할뿐이었지요. 

그때 또 다른 아이가 결심한듯이 말을 했습니다. 

" 대장! 솔직히 말은 맞다 아이가. 여기 있는 우리는 다 통과했다 아이가. 
저 가스나도 함 해보라 케라! " 

다들 그 아이의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였고, 그 소녀는 계속 그게 뭐냐고 

뭘해야 통과하는거냐고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장도 소녀의 기를 좀 꺽어놔야 겠다고 생각했는지 

본부에 대한 것과 테스트에 대한 얘기를 소녀에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는 얘기를 듣자마자 단호하게 테스트를 받겠다고 주장했고 

당당하게 통과한후에 본부에 들어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처음엔 당황했지만, 테스트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들 지까짓게 할수 있겠느냐… 방천에 올라가기도 전에 울면서 도망칠것이다 

뭐…그런 얘기들을 하면서 삼삼오오 흩어졌습니다. 

드디어 테스트날. 

그날은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정확히 기억합니다. 

그 다음날이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소녀는 태권도복을 입고 나왔습니다. 

그때 알았지요. 소녀가 태권도를 한다는것을. 

대장과 우리들은 지금이라도 포기하라고 말렸습니다. 

나는 그때 또 한가지를 알았습니다. 나만 귀신을 본게 아니란것을. 

아이들은 귀신이 나온다고… 다리없는 할머니 귀신이 나온다면서 

포기하라고 말렸습니다. 

소녀는 세상에 귀신이 어딨냐면서… 그런 거짓말에 내가 겁먹을줄 아냐면서… 

한사코 가려고만 했습니다. 

뒤에서 조용히 보고있던 대장이 앞으로 나서더니 말했습니다. 

" 지금 포기해도 니 겁장이라고 안칸다. 야 들 말… 겁줄라고 카는거 아이다. 
니는 다른 가스나들하고 틀리다는거… 충분히 증명했다. 
안가도 된다. " 

소녀는 그 말에 더 자존심이 상했나봅니다. 

결국 말릴수 없다는걸 안 대장은 소녀에게 당부를 했습니다. 

도시락 흔드는 소리가 들리면 문 열지말고 무조건 뛰어서 집으로 가라고… 

대장에게는 그 소리가 도시락 흔드는 소리로 들렸었나봅니다. 

소녀는 그럴일 없다면서 당당하게 방천을 향해 뛰어 갔습니다. 

10분만 기다리라면서……. 

… … 

소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자정을 넘겨 1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소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거 봐라면서 떠들어댔습니다. 

분명히 지금쯤 집에 도망가서 울고불고 난리 났을거라면서… 

아마 상여집까지 가지도 못했을거라면서… 

우리들은 어떤 승리감마저 느끼면서 싱겁게 끝난 그날의 테스트를 뒤로하고 

각자 집으로 흩어졌습니다. 대장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듯한 

표정이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소녀는 학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악몽에 시달린 경험이 있던 나는 소녀가 악몽에 시달려 

학교를 빠진것이라 생각했지요. 

토요일이라 수업을 일찍 마치고 마을로 돌아왔을때… 

마을은 발칵 뒤집어진 상태였습니다. 

순경아저씨 두명이 마을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고 

어른들은 우리에게 어제 소녀를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쯤이었는지를 

일일이 물어보셨습니다. 

아무도 어젯밤의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어젯밤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이 지나고 토요일 오후가 된 지금까지도 

소녀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그 누구도 어제 이후로 

소녀를 본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두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상여집! 

우리는 어른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마을을 벗어나 상여집으로 향했습니다. 

상여집 지붕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묘하게 빛나는듯 보였습니다. 

문……. 

문은 닫혀 있었고. 걸쇠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걸려있었습니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 바라… 가스나 여기 오지도 않았다카이… 그라모, 도대체 어데 간기고? "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대장이 조용히 걸쇠를 젖혔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문을 열었습니다. 

삐…이…이…. 

문이 열리는 소리가 한낮인데도 소름돋을정도로 음산하게 울려퍼졌습니다. 

… … 

… 소녀. 

우리는 모두 그자리에 얼어붙어버렸습니다. 

소녀는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된채 구석에서 종이꽃을 씹어먹고 있었습니다. 

태권도복은 엉망진창으로, 진흙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를 보자, 소녀는 겁먹은 표정으로 더욱 구석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씹어먹던 종이꽃을 꼭 껴안은채… … 

소녀는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 안돼… 내꺼야… 내 꽃이야!! 꺄악~~ 저리가! 내꺼야!!! " 






다음해… 2학년 초에 나는 구미로 이사를 했고, 

이후로 고향에 간것은 손으로 꼽을정도로 몇번 되지 않습니다. 

자동차로 20분이면 갈수 있는 거리이지만…… 

왠지 가고싶지 않은… … 고향입니다. 

그 상여집은… 그 일이 있은후 뜯어내버렸고 

그 소녀의 집은 서울로 이사를 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소녀는 서울 어디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구미로 이사온후에 그 일을 잊기위해 노력했지만…… 

잊을만하면 예의 그 악몽을 꾸게 됩니다. 

지금까지도…… 

부디… 그 소녀가 완쾌되어 평범한 주부가 되어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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