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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김한윤, 꿈을 이루다
게시물ID : humorbest_1024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기타맨
추천 : 17
조회수 : 2121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5/08/02 12:01:26
원본글 작성시간 : 2005/07/30 12:17:03

약관 전에 국가대표로 발탁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손가락으로 꼽을 수도 있을 만큼 흔치 않은 일이 분명하다. 그런데 나이 서른을 넘겨 A매치에 데뷔하기는 더 힘이 든다.

연령 때문에, 또 그리 변변치 않은 경력 때문에 일단 관심있게 지켜봐주는 눈이 드물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수생활 ‘황혼기’에 해당하는 30대에 접어들어 A팀에 처음 뽑히는 선수는 세계적으로도 그 예 자체를 찾기 어렵다.

한국 축구계도 마찬가지. 근래 사례로 볼 때 이에 부합하는 플레이어는 오직 한 명, 김한윤(부천)뿐이다. 대표적인 늦깎이 스타로 알려진 최진철(전북)도 실은 만 26세에 A매치 신고식을 치렀다. 본프레레 사단이 위기 속에서 캐낸 ‘K리그 진주’ 김한윤을 탐구했다.

▶서준형=글 text by Joon Hyung Seo
이완복=사진 photograph by Wan Bok Lee



부천 SK, 김한윤

새로운 발견

‘새내기’ 국가대표 김한윤이 ‘떴다’. 언론에 이름이 부쩍 자주 오르내리고 인터뷰 기사도 심심찮게 목도된다. 눈에 익지 않아 낯설던 이름이며 생경하던 얼굴이 대중 속으로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흔히들 하는 말대로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하는 듯 보인다. 역시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4· 5차전에 출장, 기대 이상의 능력을 드러낸 덕분에 세간에 크게 어필한 것으로 풀이할 만하다. 지역예선을 치르는 내내 최대 취약지구로 지적받은 수비라인은 지난 원정 2연전에서도 호평받지 못했으나, 그 와중에도 김한윤은 ‘새로운 발견’으로 평가됐다.

수비 칭찬에 인색한 전문가 다수도 김한윤에 대해서는 너그러웠던 게 사실이다. 요컨대 대저 세상은 실력자를 언젠가는 알아보게 마련이다. 요사이 김한윤처럼. 말수가 적고 꽤나 내성적인 편이라는 사전 정보를 숙지한 후 만났다. 과연 그러했다. 우선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신 생각은 깊게 하는 듯 보였다. 음성도 나긋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집중, 또 집중해야 겨우 들린다.

한데 특이할 점은 위트가 있다는 것이다. 자못 점잖게 한마디씩 내놓는데, 그 중에는 듣는 이의 입가를 한순간 벌려놓는 유머가 종종 숨어 있다. 시간을 두고 대화를 나눠보니 “밥 먹을 때 가장 큰 웃음소리가 나는 테이블에는 언제나 한윤이가 있다”는 구단 프런트의 귀띔이 십분 이해가 갔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이제 알아보는 사람이 더러 있을 것 같은데요?” “…없는데요.” 질문의 초벌 답변이 보통 이렇다. 뭔가 들으려면 다시 물어야 한다. “정말 단 한명도 없었다는 말씀인가요?” “음... (뒤늦게 기억났다는 듯)인천공항에 도착해 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려는데, 어떤 분이 제 팔을 붙잡고 사인을 해달라고 하신 게 유일해요.” “그럼 사인해 주실 때 기분이 어땠나요?” “안했는데요.”

이런 반전이 수시로 나온다. 이어지는 답변도 걸작이다. “그냥 축구협회 직원이 라고 둘러대고 냅다 후닥닥 도망쳐 버렸어요. 제가 원래 그런 걸 잘 못하거든요. 왠지 창피하기도 하고요.” 김한윤의 성격을 헤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단초를 소개한다. 별명이 ‘응삼이’인데 본 인도 그 출처나 배경은 확실히 짚어내지 못한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주위에서 하나 둘씩 ‘응삼이’ 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설사 실제 별명이 ‘응삼이’일지언정 대외적으로는, 특히 취재진에게는 조금 더 그럴싸한 닉네임을 말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김한윤은 전혀 거리낌 없었다. 단지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를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그래서 능력 있는 축구선수 이전에 순하고, 소박하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진하게 받았다.

포기했던 꿈을 이루다

이미 수 십 차례 보도된 것처럼 김한윤은 1974년생이다. 만으로는 31살, 한국 나이로 치면 32살이다. 재차 언급하지만 이 나이에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일은 쉬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누구보다 김한윤이 더 잘 알고 있다.

“맞아요.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은 이미 오래전에 포기하고 살았어요. 아마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슴에 태극마크 새기는 일을 상상해 봤을 거에요. 저도 물론 그 중 하나였어요. 하지만 시간이, 속절없는 세월이 불같던 열정을 식게 만들 더라고요. 정말 나이 서른 줄을 넘겨서 10대 시절의 꿈을 이룰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래서 저도 신기해요.” 정해성 부천 감독은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김한윤의 효용 성을 습관처럼 역설하고, 또 역설했다. 올 초부터 쭉 그랬다.

묘하게도 한동안 초야에 묻혀 지낸 베테랑 수비수 최진철을 발굴한 지도자 또한 바로 정 감독이다. 정 감독은 김한윤을 향해 시종 변함없는 신뢰를 보이며 “K리그 수비수를 통틀어 최근 컨디션이 가장 좋은 만큼 긴장만 하지 않는다면 대표팀에서도 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 을 것”이라고 말했고, 결과적으로 그 전망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오늘의 제가 있 기까지는 역시 정 감독님의 힘이 컸어요. 말주변이 없어서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 네요. 매우 감사드려요.” 5월19일 우즈베키스탄 쿠웨이트 원정에 참가할 국가대표팀 명단이 확정, 발표된 후 김한윤의 핸드폰은 그야말로 ‘불이 났다’. 평소 하루 5, 6차례 정도 울리던 전화벨이 느닷없이 50차례 이상 빨간 불을 뿜어댈 지경이었다고. 하나같이 축하 전화였다. “하루에 그렇게 많은 전화가 걸려올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초등학교 동창이라며 혹시 기억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종종 있었는데, 그때는 참 난감하더라고요.” 바로 물었다. “아니 왜요?” “…기억이 안 나니까요.” 각급 대표 팀과는 원체 인연이 없었다.

웬만한 국가대표선수라면 통상 거치게 마련인 유소년대표 또는 청소년대표는 고사하고 지역대표 한 번 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다 10년 전 천 금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러시아 출신의 비쇼베츠 감독이 이끈 올림픽대표팀에서 불현듯 호출한 것이다. “대학(광운대) 3학년 때였는데 생각도 못하고 있다 불려갔어요. 거기서 한 달간 죽어라 훈련했죠. 합숙기간 트리니다드토바고와 평가전을 치렀는데 후반 10분이 남았을 때쯤 잔디를 밟게 됐어요.” 그러더니 말이 없다. 후속 스토리를 이야기해달라는 눈빛을 보냈으나 묵묵부답이다.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그 다음은요?” “네? 그게 끝인데요.”

엉뚱한‘응삼이’

‘깜짝 카드’ 김한윤 발탁에 반신반의한 일부 전문가들은 그래도 선발 출장은 힘들 것으로 점쳤다. 초반에는 김한윤 스스로도 그리 생각했다. “애초에 주전으로 뛸 욕심은 전혀 없었어요. 같은 포지션에 실력있는 후배들이 여럿 있으니까요. 운이 좋으면 1경기쯤 경험해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했었죠. 그런데 연습경기에 계속 선발로 뛰면서 나름대로 희망적인 예감을 가지게 됐어요.

막상 우즈베키스탄전을 코앞에 두고 발표된 출전선수 명단에 제 이름이 올라있는 걸 확인한 후엔 오히려 마음이 덤덤해지던데요.” 꽤 긴장되고 떨렸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을까. “욕심 부리지 않고 신인의 자세로 임한다는 각오를 밤새 했는데, 직접 필드에 서니까 역시나 많이많이 떨리더라고요. 심호흡도 해가면서 지속적으로 ‘괜찮아, 잘 할 수 있어’라는 혼잣말로 맘을 잡으려고 노력했어요. 별다른 실수없이 10, 20분을 지내니까 그때부터는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초반 긴장감만 뺄 경우 프로경기에 나설 때와 그다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원정 기간 경기장 밖 생활은 어땠을까. 아무래도 대표팀에 처음 들어가는 것이라 친분있는 동료도 없었을 것 같은데. “(웃으며)정말 거의 혼자 지내다시피 했어요. 밥도 구석에서 혼자 먹고, 후배들과 특별히 어울려 뭔가를 하지도 않았고요. 내성적인 데다 일단 제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요.

그나마 나이차 적은 (김)상식이,(김)영철이가 많이 챙겨줘 좀 나았어요.” 김상식 김영철(이상 성남)과는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뭐...친분이라기 보다 안면이 있다고 해야겠죠.” “안면이라면?” “K리그에서 함께 경기하다 보면 가끔 눈도 마주치고 그러잖아요.” 또 나왔다. 김한윤표 재치 만담. 이야기를 나눌수록 ‘참 엉뚱한 구석이 많다’는 느낌을 주는 인물이다.

들어보니 축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도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놀라지들 말길. 축구 입문계기 는 순전히 빵과 우유 때문이었다. “독산초 3학년 때였어요. 하교 길에 친구 한명을 만났는데, 빵과 우유를 게걸스럽게 먹는 거에요. 너무너무 부러워서 어디서 생긴 거냐고 물었더니 축구 부에서 나눠 준 거래요. 그때 마음먹었어요. 등록 신청을 할 수 있는 4학년이 되면 기필코 축구 부에 가입해 빵과 우유를 맘껏 먹겠노라고요.

그리고 1년 뒤 결국 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지요.” 이후 김한윤은 문일중·고를 거쳐 광운대 졸업 때까지 수비수, 센터포워드, 수비형MF 등으로 시시각각 업종 변경을 하며 축구인생을 이어갔다. 본인은 “특별할 게 없어 눈에 띄지 않았다” 고 말하지만 니폼니시 감독 시절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드래프트 1순위로 부천에 입단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지닌 내공이 보통은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내일을 이야기하다

벌써 프로 9년차. 또 K리그 통산 200경기 출장을 목전에 두고 있다. 현재 부천 소속 플레이어 중 200경기 이상을 소화한 선수는 조현두 뿐이다. 어느덧 클럽의 리더격으로 활동하고 A팀에도 적을 두게 되는 등 ‘김한윤’ 이라는 존재감은 이제 확연히 뿌리내린 인상이다.

거저 얻은 성과는 아니다. 지금같은 따사로운 날이 오기까지는 말 못할 시련도 숱하게 겪었다. 김한윤이 터놓는 대표적인 고난 사례는 1999년 불어 닥친 뜻밖의 포항 이적. “어깨를 다쳐 수술을 받고 3개월 동안 훈련을 하지 못했어요. 몸을 다시 추스르는데 예상 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고요. 좀 더 조심하지 못한 제 자신에게 화가 났고, 팀에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함도 컸어요. 그러던 차에 당시 코칭스태프가 저를 내보내기로 결정했나 봐요. 더 이상은 쓸모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요. 머리로는 이해를 했지만, 마음은 다르더라고요. 섭섭했어요. 멀쩡하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혼자 쓸쓸하게 포항 공항에 내렸는데, 정말 암담하대요. 슬프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속이 텅 빈 듯 했어요...”

김한윤은 1년 만에 다시 부천으로 복귀했다. 이적 후 원소속팀으로 되돌아가는 일도 흔치는 않다. “사실 그때도 마음이 심란하긴 마찬가지였어요. 보낼 때는 언제고 다시 불러들이는 것은 또 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당시 지휘봉을 잡고 있던 모 감독님 말씀이 -내 입장에서도 널 다시 부르는 것은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내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니까. 하지만 내 자존심을 고집스럽게 틀어쥐고 있는 것보다 너의 필요성이 더 절실했다. 우리 지난 일은 다 훌훌 털고 앞으로 잘해보자-였어요.

길지만 잊기 어려워 외우고 있어요. 다행히 그 말에 그간의 서운한 감정이 스르르 녹아내렸으니 됐죠 뭐. 누구를 원망하는 마음은 없어요.” 2002시즌 중반에는 전남 수비수 김태영과 볼을 놓고 경합하다 부딪쳐 오른쪽 무릎이 부러졌다. “정말 하늘이 핑핑 돌더라고요. 지금 돌이켜봐도 황당한 것은 무릎이 부러진 상태로 2분을 더 뛰어 다녔다 는 점이에요. 그리고 응급실로 바로 직행했죠. 그때는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순수 ‘응삼이’ 김한윤은 더는 과거에 매몰되고 싶지 않다. 건설적인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게 추억을 곱씹고 있느니보다 몇 배 생산적일뿐더러 현명한 선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더불어 앞으로는 더욱 자신있게 세상과 맞서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있다고 한다.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김한윤이 A매치 신고식을 치른 후 얻은 가장 알찬 열매는 다름 아닌 무한 자신감이다.

“참으로 오랜 만에 승부욕이 생겼어요. 제게 찾아 온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승부욕, 내년 6월까지 계속될 무한 경쟁시스템에서 살아남고 싶은 승부욕, 그래서 결국에는 기어이 독일 땅을 밟겠다는 승부욕이에요. 더 이상 힘없이 물러서지는 않을 각오에요. 가진 힘을 몽땅 쏟는 한이 있어도 이 도전은 당분간 브레이크가 없을 거에요.”

본기사의 저작권은 베스트일레븐(www.besteleven.co.kr)에 있습니다.
김한윤 화이팅!! 짤방은 임클스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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