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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치다'라는 표현에 대한 고찰
게시물ID : phil_115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람이불때
추천 : 2
조회수 : 144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06/05 11: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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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우리가 흔히 관용구로 많이 쓰이는 표현 중에,

"** 뺨 칠 정도"

라는 표현이 있다.

최근엔 조금 변형이 되어서, 비속어를 가미하여

"싸다구를 후려친다"

라던가 혹은 정도를 과장해서

"양 뺨을 번갈아가면서 난타 할 정도"

라고 표현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원어는 어쨋든 "~~의 뺨 칠 정도"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내가 고찰할 것은 바로 이 표현의 의도이다. 혹은 뉘앙스[느낌]이라고 해도 좋다.

과연 사람들은 이 표현을 '긍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내가 본 (인터넷의 개인적인) 글들은 이 표현에서 '비교대상'에 해당하는 ** 부분에 특정 개인의 이름을 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개인'은 흔히 공인으로 분류되는 연예인의 이름들. 이러한 표현들은 내가 아닌 다른 이들도 많이 읽어 보았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과연 글쓴이들은 어떤 느낌으로 이러한 표현을 쓴 것일까. 노골적으로, 혹은 구체적으로 그 의미를 공시하거나 주석해 두지 않은 이상 그 확실한 의미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문맥상으로 나는 분명히 이런 느낌을 받았다.

"???는 *** 뺨 칠 정도다." => "???는 ***보다 대단하니까(혹은 뛰어나니까) ***의 뺨을 쳐도 할 말 없다(괜찮다)."

그리고 대부분의 "연예인 뺨 칠 정도"라는 표현에서 나는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표현에서 작성자들의 글어귀에 숨겨진 정서는 분명하다. 바로 '우열'이다. 구체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열등한' 사람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고 하는, 너무나도 저열하고 이기적이며 개인주의에 젖어든 무서운 정서적 생각이다.

혹자는, '하지만 실제 해당 표현에서 전자의 사람은 후자의 사람보다 뛰어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중 양자 간의 관계가 이 표현의 의도까지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관계와 상황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저건 맞아도 싸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능력은 재각각이며 그것들은 분명히 차이날 수 밖에 없다. 특정 분야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분야에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하며, 재능이 있는 사람들의 무리에도 그들의 능력의 차이는 있을 수 밖에 없다. 노력의 차이와 상관없이 그것은 분명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사실이 그들간의 '가치'의 차이를 만들어 내거나, 상호 인간들간의 '평등'을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그 '재능'을 활용하는 공동체에서 '재능' 자체에 대하여 가치를 차등부여할 뿐 그 '인격' 자체에 부여하는 것은 결코 용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비록 이 기괴한 사회가 그리 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누군가가 자신보다 못한 누군가의 '뺨'을 후려치며 내려다 보는 것은 틀림없는 '인격모독'에 준하는 행위이며 이는 당연시 여겨서는 안되는 중한 범죄행위이다. 단언컨대, '누군가의 뺨을 후려치는 행위'는 의도적으로 일으키거나 일어나서는 안된다.

그렇기에,

"**의 뺨을 칠 정도"

라는 표현을 의사(의식적인 사건)의 표현으로 써서는 안된다. 특히 "뺨을 치는"행위를 "멱살을 잡는(벌금 100만원)" 행위 이상의 인격모독에 준하는 행위로 인식하는 오늘날은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뺨 칠 정도"라는 표현은 과연 어떨 때 써야 옳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사람이 보통 다른 사람의 뺨을 언제 칠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간단히 찾을 수 있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 고려해야할 중요한 전제는 바로 '보통'이라는 단어이다. 왜냐하면 썩고 곪은 사회에는 언제나 저 '보통'에 해당하지 않는 상황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진이 만만한 아이를 불러놓고 뺨을 툭툭 친다던가, 특히 자의식과잉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모욕하기 위한 의도로 뺨을 마구 쳐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본다.

이럴 때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아, 저** 너무한다."

반면에 이런 경우를 떠올려 보자. 어떤 남자가 양다리를 걸치다가 걸린 경우 양다리의 피해자 여성의 행동, 개념없는 고딩이 밤늦게까지 놀다가 술에 찌든 상태에서 집에 들어와 홀로 TV를 보고 계신 할머니에게 주정부리는 아들을 목격한 아버지의 행동, 지하철에서 여성의 신체를 더듬던 치한에 대한 피해자 여성의 행동이 어떠한가. 거침없이 상대의 뺨을 향해 손을 날린다. 그 스피드와 파워는 분명히 예의 '너무한' 행동에 비해 강하면 강하지 약하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렇게 생각한다.

"저건 맞아도 싸지."

이 판단에는 대개의 경우 일고의 망설임도 없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앞서 표현한 '인격모독'에 해당하지 않는 정당한 '뺨치는' 행동이다.


우리는 우리말임에 분명한 '** 뺨칠 정도'라는 표현의 원래 의도를 바로 이러한 정당한 행동에서 찾아봐야만 한다. 물론, 이 표현상의 "뺨일 치는 이"와 "뺨을 맞는 이"간의 유열을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이를 위하여 우리는 앞서의 '정당한' 행위에 해당하는 "뺨치는" 행동의 원인을 살펴보자. 그들은 과연 왜 '저도 모르게' 상대방의 뺨을 향해 손을 날렸을까. 그리고 왜 하필 그 손이 날아간 위치가 상대방의 뺨이었을까.

우선 그들이 저도 모르게 손을 날린 이유는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바로 '분노' 때문이다. 쉽게 말해 화가 났기 때문인 것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분노할 경우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것을 활용해 분노의 대상을 배제하려고 한다. 이 경우 악어나 개는 이빨, 닭은 부리와 발톱, 소는 뿔인 것 처럼 사람은 그것이 손일 뿐이다.

그리고 그 위치가 뺨인 이유는, 사람의 자존감을 타격하는 가장 보편적인 위치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뺨을 치는 행동이 인격모독에 준하는 행동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맞아도 싼 앞의 세 가지 행동의 예를 들어 볼 때 뺨을 맞는 이들은 자존심을 내세우면 안되는 위치이다. '이 발정난 개 같은 놈! 넌 남자도 아니야!''이 개 만도 못한 놈! 어떻게 네 할머니에게 그런 짓을...''야 이 개**야! 너 같은 것은 한 10년간 전자팔찌를 차 봐야 정신을 차리지!'와 같은 훈계를 들어야 하는 위치인 것이다. 때문에 그들의 자존감을 깎아 그 인격에 걸맞은 위치로 격하시킬 필요가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알고 있고 그게 바로 뺨을 타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분명하다. 상대방을 보다 효율적으로 '훈계'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렇듯 뺨치는 표현의 정당한 느낌과 의도는 '분노'와 '훈계'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많이 쓰는 "** 뺨 칠 정도"라는 표현 역시이와 같은 느낌과 의도로 쓰는 것이 정당하다.

그렇다면 과연 "** 뺨 칠 정도"라는 표현을, 이 표현의 양대 관계자 간의 유열관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정당한 느낌과 의도인 '분노'와 '훈계'의 정서로 사용이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예를 들어보자. 요리사가 있다. 그리고 요리를 잘하는 A라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A는 요리사 뺨 칠 정도다"라는 표현을 당연하게 쓴다. 이상하다 여기지 않으며 이 표현은 누구라도 정당하다 생각한다. 왜냐하면 A는 요리를 요리사보다 잘하니까.

이 표현에 조금 더 깊숙하게 들어가 보자. 당신이 A라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다른 요리사 B가 존재한다. 요리사 B는 매일매일 주방에서 요리를 하며 마찬가지로 요리를 잘하는 A가 요리를 하기 위해 주방에 들렀다가 요리사 B가 요리를 하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당연히 A는 B보다 요리를 잘한다. 만일 A가 요리를 그저 잘하는 사람이라면 요리사 B가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무얼 만들든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A가 요리를 좋아한다면? 무수히 많은 요리만화에서 요리를 잘하며 좋아하는 요리사의 재료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많은 소설과 만화가 사실에 근거해 만들어 진다는 것을 생각해 볼때, 너무나도 일관적인 이러한 모습은 사실에 충분히 근접할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당연히 A에 있어서도 재료는 매우 소중할 것이다. 반면에 요리사B를 생각해 보자. 그에게 있어 요리는 그저 일상이며 직업이다. 어쩌면 그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으며 그저 노동으로 생각할 수 있다. 때문에 재료는 그냥 재료다. 모든 요리사가 그렇다는게 아니라, 요리사 B가 그런 이라고 가정해보자는 것이다. 그런 요리사B는 아마 재료를 평범하게 다루며 레시피에 있는 대로 평범한 요리를 만들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귀한 재료를 아무렇게나 다루며 아무런 요리를 만들려는 요리사B를 바라보는 A. A가 그 재료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고 그것을 통해 B가 만들려는 요리보다 훨씬 값지마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면? 재료를 함부로 다루는 요리사B의 태도는 당연하게 A의 화를 부를 것이며 요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A는 요리사B의 정신머리를 고쳐주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가 매우 클 때, "A는 요리사B의 뺨을 후려칠 정도다"라는 표현이 성립한다. 당연히, 같은 요리사들 사이에서는 대놓고 재료와 요리를 모독한 B는 맞아도 싼 놈이다.

이것은 요리 뿐 아니라 수많은 기능직이나 예체능 모든 분야에 대해서 성립할 수 있다. 단적으로 우리는 저 언젠가의 동계올림픽을 떠올릴 수 있으며, 우리나라의 유명한 K양과 대립각을 이룬 R국의 S양을 떠올려 볼 수 있다.

K양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무대를 선보였고, 그에 못 미치는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R국을 등에 업은 S양은 초라하고 볼품없는(K양에 비해서) 무대임에도 R국의 힘에 의해 그 무대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고 금매달을 차지했다. 그 사실이 분명하며, 그 자신 또한 충분히 알고 있을 것임에도 그녀는 어떠한 반성이나 겸양없이 K양을 비하하며 자신의 금매달을 당연시여겼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며 스포츠정신을 그 얼음바닥 아래 쑤셔박은 행위였다. 더군다나 그날의 무대는 K양의 은퇴무대였던 만큼, 그녀의 자존심과 인격을 매도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K양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S양의 뺨을 쳐도 할 말이 없는 상황. 실제 K양이 S양의 뺨을 쳤다면, 외국에서는 무슨말을 하더라도 한국에서 만큼은(그리고 뭇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세계인들 만큼은) S양이 뺨을 맞아도 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사 "K양은 S양의 뺨을 칠 정도"라는 표현은 성립될 수 있다.



사회적, 직위적, 능력적 우위를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뺨을 치는게 당연한 사회. 이것은 더 이상 '모든 사람은 법 아래 평등하다'라는 일반법이 사라진 사회이며, 모든 법이 힘의 우위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우리는 그런 사회를 바로 '지옥'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가 "**뺨 칠 정도"라는 표현을 "우열"의 의미와 정서로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리고 이러한 표현을 확산시키는 것은 이 사회를 지옥으로 만드는 것이다. 말은, 사람의 정서의 표현이며, 한편으로 전달 수단이기 때문이다. 잦은 이와 같은 표현은 결국 이 사회를 그렇게 물들이게 될 것이며, 이 사회는 계속해서(지금과 같이) 지옥으로 영락해 갈 것이다.

이것이 옳은가.

이것이 바람직한가.


이 글을 읽는 이들 만이라도 이와 같은 작은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가려 씀으로서 우리의 사회를 올바르게 변화시켜 나가는 지식인이 되길 소망한다.

출처 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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