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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동화] 키재기
게시물ID : panic_1025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젤넘버나인
추천 : 6
조회수 : 106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1/12/03 1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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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문기둥에 새겨진 표시를 본 남자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남자의 허리 부근에서 시작해

팔꿈치까지 촘촘히 간격을 두고 새겨진 표시는

남자의 7살 난 아들이 자신의 키를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마을 끝자락의 작은 오두막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사는 남자는

목수로 일하며 잦은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지만

 남자 없이도 무탈하게 자라는 아들이 대견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 안의 마구간을 수리하기 위해 출장을 떠나

사흘 만에 집에 돌아온 남자는

마지막으로 보았던 지점에서

한 뼘이나 위로 새겨진 표시를 발견했습니다.


 

아들의 성장이 아무리 빠르다 하더라도

사흘 만에 이렇게 컸을 리는 없고

아들 역시 보기에는 그다지 자란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남자가 아들에게 표시에 대해 묻자

아들은 친구의 키를 표시한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후에도

아들은 자신의 키와 친구의 키를 문기둥에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꾸준히 자라는 아들의 키와는 달리

친구가 자라는 속도는 비정상적으로 빨랐고

어느새 남자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습니다.


 

상상속의 친구인 걸까…


 

또래 아이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남자는 꺼림칙한 기분을 떨치지 못한 채

옆 마을로 출장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한주가 걸려 일을 마친 남자는

돌아오는 길에 아들에게 줄 선물도 샀건만

집에 도착하니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녀석이 어딜 간 걸까…


 

한참을 기다려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아들을 찾아 밖으로 나선 남자는

뒤뜰의 나무 그루터기에 흥건한 피를 발견했습니다.


 

엄습하는 두려움에 남자의 두 다리가 떨렸고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는 바닥에 난 핏자국을 따라 숲으로 향했고

숲의 초입에 들어서자 코를 찌르는 악취에

두려움이 배가 되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신이시여…

제발 우리 아들에게 아무 일도 없기를…


 

창백한 얼굴이 되어 핏자국을 따라가던 남자는

얼마 가지 않아 악취의 원인과 마주쳤습니다.


 

목이 잘린 채

나무에 못 박혀 썩고 있는 쥐의 사체…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숲 곳곳에 목 없는 쥐나 새 같은 작은 동물의 사체가 가득했고

숲의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닭이나 토끼, 너구리

죽은 동물의 덩치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악몽 같은 풍경 속에서 남자를 등지고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아들을 발견한 남자…


 

남자의 인기척을 듣고 고개를 돌린 아들은

남자를 보자 환한 얼굴이 되더니

허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친구가 저렇게 커졌어요.

배가 고파 작은 동물로는 만족을 못하겠답니다.


 

남자는 아들의 작은 어깨너머 보았습니다.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개 한 마리를…

칼로 난자되어 도저히 눈뜨고 보기 힘든 그 모습을…


 

그렇습니다.

숲에 못 박혀 죽은 동물들의 사체는

모두 남자의 아들이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비록 남자는 아들이 말하는 그 친구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두 가지 사실만은 확실했습니다.


 

그 친구라는 괴물이 아들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과

괴물이 커지는 걸 막지 않는다면

아들이 더 큰 먹이를 찾아 나설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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