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광주 고무통 살인사건 (어버이날 아버지의 가슴에 카네이션 대신 칼을꽂다)
게시물ID : panic_1028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99콘
추천 : 10
조회수 : 3100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22/05/15 13:39:56

광주 고무통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40대 남매가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어버이날 아버지 B씨(당시 78세)를 살해하고

해외도주까지 계획했지만 실패하고 경찰에 검거된 사건이지요


아버지를 처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락스에 담궈 놓았다는 사실과

재판과정에서 뻔뻔함으로 일관해 대중들이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재산 때문에 아버지를 살해하고 해외도주까지 계획한 사건이라 

사망한 아버지 B씨가 상당한 재력가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B씨의 재산이라고는 20년이 넘은 감정가 6~7천만원의 낡은 아파트와 

매달 국가에서 지급되던 기초연금 40여 만원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 돈을 빼앗겠다고 70이 넘은 아버지의 목과 가슴에 칼을 꽃은 사건이지요


남매는 검거 이후에 아버지를 가정폭력범으로 자신들은 피해자로 포장했고 

자신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과거 트라우마가 폭발해 

우발적으로 발생한 정당방위 성격의 살인이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C씨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도 없었고

아버지 B씨의 시신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는데 몸에는 10군데가 넘는 자상과 

둔기에 맞아 얼굴을 알아 볼 수도 없었다고 하지요 


40대의 건장한 남성이 78세 노인에게 생명의 위협을받아 살인을 저질렀다는

남매의 주장은 누가봐도 말이되지 않는 이야기죠 


어버이 날 집을 찾은 자식이 가슴에 카네이션 대신 칼을 꽂았을때의 심정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참 가슴이 아픈 사건입니다.




시작하겠습니다.


2016년 5월 9일 오후 5시경 광주 북구 모 지구대에 70대 여성 A가 방문했습니다. 

자신을 B씨(남 당시 78세)와 연인관계라 밝히며 B씨의 안부를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죠


B씨는 광주 북구에 위치한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부인과 남매 네식구가 함께 살았지만 부인은 사망하고

자식들은 집을 나가 살게 되면서 홀로 지내왔다고 합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오후 6시경 B씨의 아파트 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자

B씨가 고령이라는 점때문에 119의 협조를 얻어 약 30분뒤  복도방범창을 뜯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경찰의 눈에 들어온 B씨의 집안은 잘 정돈되어 있는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경찰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꽃가루가 한참이던 5월 안방을 제외한 모든 창문과 방문은 열려 있었으니까요


더 이상한 점은 집안에 락스냄새가 났는데 냄새의 진원지는 유일하게 닫혀 있던 안방었습니다.

안방 문을 열자 피비린내와 락스가 섞인 냄새가 그들의 코를 찔렀고 

안방의 불을 켜자 그들의 눈에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안방의 침대와 방바닥은 말라버린 핏자국이 낭자해 있었고 

피묻은 둔기와 흉기는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으니까요.


침대 옆는 빨간대야 혹은 고무대야라 부르던 성인 2명이 들어 갈 수 있는 

크기의 고무대야가 있었는데 피묻은 이불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락스냄새는 고무대야에서 나고 있었고 상황파악을 해야 했던 경찰은

최악의 상황만은 아니기를 바라며 고무대야 안의 이불을 하나씩 걷어내었습니다.


대야 안에는 무려 10개의 이불이 들어 있었는데 마지막 이불을 걷어내었을때 

연인 A씨와 경찰의 걱정은 현실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집주인 B씨가 등을 위로 향해 웅크린 자세로 락스에 잠겨 사망해 있었으니까요.


70대 노인의 시신이 락스에 담궈져 있다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시신의 상태는 더욱 처참했습니다.


B씨의 목에는 드라이버와 과도가 꽃혀있었고(4곳에 흉기가 꽃혀 있었다는 기사도 있음)

팔과 가슴 복부에 등에 흉기에 베이고 찔린 자상도 10군데가 넘었으며

둔기에 맞은 곳은 뼈가 부러지고 안면은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B씨의 시신은 어금니 몇개를 제외한 나머지 치아가 모두 없었는데 

노화로 인한 치아상실 아니라 살해과정에서 부러지거나 강제로 뽑은 것 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시신의 훼손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현장에서 발견된 고무통은 같은층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던 통이었는데

주로 김장철에 배추를 절일때 이용되던 통이라고 합니니다 

 

살해 방법이 잔인하고 공용으로 사용하던 고무통이 집에서 발견된 것을 보아 

피해자와 가깝고 아파트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을 용의자로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아파트 CCTV영상에서 유력한 남녀 한쌍의 용의자를 발견합니다.

그들은 8일 새벽 2시경 큰 가방을 메고 엘레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비상구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 약 7시간 뒤인 오전 9시경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내려오는 모습이 찍혀 있었는데 이용자도 없는 새벽 큰 가방을 메고 

계단을 이용해 올라는 모습은 누가 봐도 수상한 행동이었습니다.


그자리에는 B씨의 친척이 함께 있었는데 영상속의 남녀는 CCTV를 의식한 듯 

모자와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영상을 본 B씨의 친척은 단번에 

영상속의 남녀가 B씨의 자식들이라 말했습니다.


경찰은 즉시 B씨의 남매 아들 C씨(당시 43세)와 딸 D씨(당시 47세)를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소재확보에 나섰습니다.


남매는 광주 봉선동 소재의 모 오피스텔에 함께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경찰을 급파해 다음날 5월 10일 오전 오피스텔을 빠져나가던 아들 C씨와

미쳐 빠져나오지 못 하고 오피스텔에 남아있던 딸 D씨를 긴급체포 합니다.


남매는 처음 자신들의 범행을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

CCTV의 영상속의 남녀가 자신들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영상이 찍힌 날의 자신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아들 C씨가 사건 일주일 전 출입국관리소와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출국 절차와 항공권 구매를 문의를 하고 오피스텔 주인에게 연락해 

보증금 반환을 요구했다는 사실까지 알게되어 경찰은 그점을 집중 추궁했습니다. 


결국 남매는 자신들의 범행을 인정하고 그날 오후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어버이날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락스에 시신을 담궜다는 내용과

어버이날 아버지의 가슴에 카네션 대신 칼을 꽂았다는 자극적 제목의 뉴스를 내보냈고

이를접한 대중을 분노하게 만들기 충분했는데

남매는 대중과 언론을 조롱이라도 하듯 취재를 나온 기자들 앞에서

마스크와 모자를 벗으며 자신들은 죄가 없으니 신상을 공개해도 좋다는 

돌발행동으로 경찰의 제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조사에 의하면

아들 C씨는 서울의 명문 사립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0여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임용에는 실패했는데

이 후 C씨는 아버지 B씨의 집으로 내려와 누나와 따로나가 살기 전 까지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며 몇 년의 시간을 보내며 지냈다고 합니다.


딸 D씨는 15년간 모 교회 전도사로 일해 오다 2011년 전도사를 그만두며

이후 생계가 막막해지자 그녀도 아버지 B씨의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게 되었는데

남매는 경찰에 구속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망한 B씨의 아내는 1990년 교통사고로 지체장애 1급의 장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2000년 중반 치매까지 앓게 되면서 20년이 넘는 긴 간병에 지친 B씨가 

부인을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는 문제로 남매와 사이가 벌어지면서 

남매는 어머니를 모시고 따로 살게 되면서 B씨는 혼자 지내왔다고 합니다.


남매는 수사과정에서 엄마와 자신들은 가정폭력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는데

가정에서 상습폭력을 당했고 어머니를 성적학대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B씨는 평소 가정에 소홀했는데 어머니가 장애를 가진 이후로 어머니의 간병을 외면했고 

요양병원에 보내겠다는 아버지와 다툼이 생기며 자신들을 집에서 쫒겨나

갈 곳이 없던 남매는 오피스텔을 구해 그곳으로 어머니를 모셨다고 했습니다.


남매는 아버지 B씨의 폭력성에 대한 근거로 

가정폭력으로 경찰이 출동해 네 차례 경찰조사를 받은 사실과

법원의 접근근지 명령을 어기고 집을 찾아오고 연락해 벌금을 사실을 근거로 들었고

D씨는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지내왔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남매의 주장인데 남매의 주장이 맞다면 

부인에게 성적학대와 자식들에게 폭력을 일삼던 가장이 자식들에게 살해 당한 사건이라 볼 수 있겠지만


경찰이 조사를 하면 할 수록 나오는 증거들은 남매의 주장과는 달랐습니다.


남매가 아버지 B씨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근거라며 말했던 

법원의 접근근지 명령을 어겨 벌금을 낸 것은 집을 나가 살고 있는 남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다 경비실에 맡겨 놓고 간 것으로 확인되었고

딸 D씨가 연락금지를 어겼다며 증거로 내민 문자는 

너희들을 사랑하고 엄마를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 있을 뿐 

남매가 주장하는 폭력성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증언들도 자식들의 주장과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B씨의 평생을 옆에서 지켜보았다는 친척이 말하기를 

누구보다 책임감 있고 가족을 끔찍히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젊은시절 독일에 광부로 일을 하러 가기도 했는데 

남매의 주장처럼 만약 B씨가 폭력적이고 가정에 소홀한 사람이라면

그 먼곳에 고생스럽게 일을 하러 갈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지요


평소 B씨 부부를 보아온 아파트 입주민들과 주변 지인들이 말하기를

인품이 훌륭한 분이라 입주민 추천으로 아파트 동대표를 맡기도 했는데 

젊은 사람들도 하기 힘든 병수발을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20년을 넘게 하는 것을 지켜봐왔는데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부인에게 짜증한번 내는 일 없이 항상 손을 잡고 다니며

부인을 위해 밥을 손수 먹여 줄 만큼 부부사이가 좋았다고 했습니다.

 

남매가 주장하는 가정폭력과 성적학대는 말도 않되는 이야기고

B씨가 부인의 간병을 외면해 자신들이 간병을 해왔다는 남매의 주장과는 다르게

간병은 B씨의 몫이었고 오히려 남매가 어머니에게 소홀했다는 증언만 있었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람들과 섞여 살다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B씨가 만약 밖에서는 좋은 사람이고 가정에선 폭력적을 일삼는 가면을 쓰고 살았다면

남매의 주장대로 가족이 아닌 사람은 그의 본 모습을 모를 수 있다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부인과 남매에게 성적 학대와 가정폭력을 일삼다 

일반인도 힘든 부인의 간병을 홀로 20년 이상 맡았다는 점을 생각해 해보면

B씨는 무엇을 위해 그런 행동을 했고 그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었을까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것을 단번에 알 수 있고 

남매의 주장은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누구나 알 수 있을겁니다.


남매의 범행 당일의 행적은 이러했습니다.

남매는 5월 7일 오후 아파트 근처 마트에서 범행에 사용할 

케이블 타이와 청테이프를 구입하고 밤11시경 1차 방문을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B씨는 집에 없었고 새벽 2시경 근처 편의점을 방문해 락스와 배관 용해재를 구입해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버지 B씨는 다음날 8일 아침 7시가 넘어 귀가했습니다.

이때 남매는 집에 귀가한 아버지에게 아파트를 팔아 자신들의 몫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아버지 B씨 자신이 죽으면 모두 너희것이 될 것인데 서두르지 말라며 남매를 진정시켰지만 

막무가내로 폭언을 하는 남매와 언쟁이 붙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들 C씨는 둔기로 아버지 B씨의 머리를 때렸는데

쓰러진 아버지 B씨에게 남매가 달려들어 미리 준비한 흉기와 둔기로 난도질을 한 것이지요


이때 과도와 드라이버로 B씨의 심장을 찌르고 목을 찌른 것이죠


이들의 악행은 B씨가 사망한 뒤에도 이어졌습니다.

아들 C씨는 집안있던 망치로 B씨의 얼굴을 내리쳤는데 얼마나 심하게 공격했던지 

안면은 함몰되고 어금니 몇개를 제외한 치아는 모두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버지 B씨가 사망한 것을 확인한 남매는 공동으로 사용하던 빨간고무대야를 집으로 들고와 

B씨를 대야에 넣고 락스와 배수관 용해제 부은 뒤 이불로 덮은 뒤 아파트를 유유히 빠져나갔습니다.


검찰은 남매의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무기징역을 구형했는데

남매는 재판과정에서도 일말의 양심조차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살인은 인정하지만 자신들은 가정폭력의 피해자라 주장했으며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로 일어난 우발적 살인이라는 진술로 일관했으니까요


재판과정에서 

범행 전 항공사와 출입국관리소에 항공권 예매와 출국문의를 한 점에 대해

아버지를 모시고 해외로 이민을 준비중이었고 필요한 돈은 

아버지의 아파트와 오피스텔 보증금으로 해결하려고 했다고 했습니다.

 

테이프와 케이블 타이를 구매한 이유에 대해서는

테이프는 이민에 필요한 짐을 정리하기 위한 용도도 구매한것이며

케이블 타이는 아버지 집의 오래된 전선을 정리 하기위해 구매한 것 이라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살해하게 된 경위에 대해선 

C씨는 평소 수면장애가 있어 술을 먹고 잠이 드는 버릇이 있는데 

사건이 있던 날도 해외이민을 상의를 하기 위해 집을 방문했지만 아버지가 귀가하지 않아

아버지를 기다리다 소주 2병을 마시고 잠들었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들어오셔서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아버지와 이민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신 문제를 자신들을 매우 질책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분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가 갑자기 주방에서 과도를 들고와 옆에 있던 누나를 죽이려했고 

말리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과도를 빼앗았는데 이에 더욱 흥분한 아버지가 

망치를 들고와 자신을 공격해 신변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과거 가정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폭발해 우발적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습니다.


공용으로 사용하던 고무대야를 집으로 들고온 이유와

배관용해제와 락스를 구입하고 시신을 넣고 락스를 부어놓은 이유에 대해서는

고무대야는 아버지 집에 밀려 있던 이불빨래를 해드리기 위한 의도였고

배관용해제는 막힌 세면대를 뚫기 위한 용도로 락스는 청소용으로 구입했으며  

고무대야에 시신을 넣고 배관용해제와 락스를 부은 이유에 대해

아버지가 다시 깨어나 또 자신을 공격할까봐 겁이나 그런것인데 

당시 술에 많이 취해있서 당시의 상황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테이프와 케이블 타이 등을 준비한 것을 근거로 검찰은 계획살인으로 보았고

계획살인 혐의에 대해서 남매는 과거 나쁜 기억들은 모두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해외이민을 계획하고 있던 자신들이 

아버지를 살해 할 이유가 있느냐며  반문하면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일 뿐 

계획살인 혐의에 대해 억울하다며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


판사는 C씨에게 아버지 B씨에게 공격을 받아 생명의 위협받는 상황에서 

방어를 하던 중 발생한 우발적 살인에 대한 주장하고 있는데 

공격을 받았다면 몸에 상처가 남는 것이 일반적인데 상처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말도 않되는 소리로 횡설수설 하기도 했습니다. 


선고 전 최후진술에서 자신들은 가정폭력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그 점을 감안해 달라며 판사에게 눈물(?)의 호소를 했지만 

남매가 내세웠던 증거들중 과거 경찰조사 기록과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제외하면 

거짓으로 판명되거나 증명이 불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피해자의 폭력성과 왜곡된 성 가치관을 부각시켜

자신들의 죄를 합리화 하고 있는데 이는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라고 볼 수 없다고 밝히며 


아들 C씨에게 20년 딸 D씨에게 18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합니다.

하지만 국민감정과 괴리가 큰 형량에 법원이 욕을 많이 먹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뒷이야기와 사건속의 사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B씨의 부인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두고 어느 프로파일러가 말하기를 

어머니가 사망한 사건이 미심적인 부분이 많아 범죄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길했는데

어머니가 사망하고 경찰과 보험사에서 형식적인 조사만 진행되고 보험금이 쉽게 지급되어

큰 돈이 생긴 것이 학습효과가 되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도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는데

진실은 남매만이 알고 있겠지요....


남매는 집을 나가 어머니를 오피스텔에 모시지만 약 한달 뒤 사망하는 일이 생깁니다.

하지만 B씨의 부인을 잘 알고 있는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로는 

고령의 중증장애, 치매까지 있었지만 건강상태는 양호 했다고 합니다.

더 이상한 점은 스스로 집문도 못나서는 지체장애 1급의 치매 노인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점이지요


거기에 남매는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알리지 않고 장례를 치뤘고

어머니의 죽음을 아버지의 소홀로 건강이 악화되 돌아가셨다며 

어머니의 죽음을 아버지의 탓으로 돌렸다고 합니다.


B씨에게는 부인의 사망 보상금으로 9천만원이 나왔는데 

하지만 남매는 사망보상금을 아버지 B씨가 수령했다는사실을 알고

B씨에게 사망보상금을 자신들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합니다.


부인의 보상금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B씨에게

주변에서 자식들에게 주지말고 그 돈으로 남은 여생을 편하게 살라며 걱정해줬지만

부인의 목숨값으로 받은 돈을 도저히 쓰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하지요


며칠을 고심하던 B씨는 부인의 장례식에도 부르지 않은 자식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1천만원을 얹어 5천만원씩 나눠주었는데

그 날 이후로 남매는 5년 넘게 연락을 끊고 살았다고 합니다.


B씨의 행동은 가정폭력에 가족을 등한시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죠

 

차라리 그렇게 부모자식간의 연을 끊고 살았더라면 나았겠지만

왕래가 끊긴지 5년여 이라는 시간이 흐른 2016년 3월 말 

B씨는 딸에게서 집으로 들어가겠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자신들이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며 보증금을 요구하는 전화였습니다.

하지만 가진돈이 없었던 B씨는 돈이 없으니 자신의 집에서 같이살자는 말을 했고

그러겠다는 딸의 말을 들은 B씨는 5년만에 자식들이 집으로 돌아온다는 기쁨에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식들이 집에 돌아 온다는 말을 하며 기뻐했지만 

B씨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같이 살겠다는 말은 B씨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이었고 

남매는 다음날 B씨가 잠시 외출한 사이 돈이 될 만한 패물과 집문서 등을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들쑤셔 놓고 다시 집을 나갔으니까요


그 사건 이후로 B씨는 집문서를 친하게 지내던 사촌에게 맡겼습니다.

그날 이후로 남매는 아버지 B씨에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남매는 B씨에게 폭언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남매의 행동이 점점 도를 넘어섰는데 남매는 수시로 B씨의 집으로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며 협박했고 집에 없을 경우 전화로 폭언을 하며 

집요하게 아버지를 괴롭혔습니다.


그렇게 남매에게 얼마남은 돈까지 준 뒤 남매는 아버지 B씨가 가진 돈이 

다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되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남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버지 B씨가 살고 있던 낡은 아파트였습니다.


그때부터 남매는 B씨에게 아파트 지분을 내놓으라며 아버지 B씨를 괴롭혔는데

집으로 찾아거나 전화로 협박을 하기도 했고 그 방법이 통하지 않자

아파트를 팔아 그 돈으로 편하게 모시고 살겠다는 회유를 하기도 했는데


아무리 자식을 끔찍히 생각하던 B씨 였지만 그것만은 해 줄수 없었겠지요


계속된 남매의 패악질에 참다 못한 B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남매가 쫒겨나는 사건도 있었는데 

그날 이후 B씨는 집에는 가끔식 들르며 대부분의 시간을 

가까이 지내던 A씨의 집에서 머무르며 남매들을 피해 지냈다고 합니다.


사건이 있던 날은 A씨가 챙겨준 물건을 집에 가져다 놓기위해 

잠시 집에 방문했다 화를 당한것이죠

 


그리고 딸 D씨가 전도사를 그만두며 집에 들어오던 해는 

아버지 아버지 B씨가 정년퇴직을 하던 해 였는데

전도사를 그만두던 해가 B씨가 정년퇴직을 하던 해라 참 묘한 부분이지요


남매는 40이 넘도록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 본 적이 없고 전해집니다. 

즉 가족들의 생계는 B씨의 몫이었다는 이야기지요

 

B씨에게는 기초연금과 생계급여 등으로 지급되던 약 40만원이 전부 였는데 

그 돈으로 70대 노인이 40대 자식들을 부양하고 산 것이지요.

아니 40대 자식이 70대의 아버지에게 기생했다는게 맞는 이야기겠지요


모 언론사에서 C씨와 같은 구치소 방을 쓴 사람을 인터뷰 하기도 했는데

C씨에 대해 말기를 친부를 살했다는 죄의식 따위는 없었다고 합니다. 

사람들과 잘어일리고 즐겁게 지내 그의 죄명을 알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길 했고 

유치장 밥이 아주 맛있다고 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지요

 

B씨의 친척이라고 밝힌 사람이 인터뷰에서 

남매가 어떤 처벌을 받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사망한 B씨는 그곳에서도 자식들이 처벌 받지 않기를 바랄꺼라고 

원래 그런사람이라고 말했죠...


돈때문에 가족의 가슴에 칼을 꽂는 이런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고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말이 참 짠하게 느껴지는지.....

 

이번 사건으로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빌며 이야기를 마칩니다... 



끗...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