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내가 진정으로 좋아했던 남자들은 죄다 ‘누나 많은 집의 막내외아들’이었다. 즉 ‘딸,딸,딸,아들’ 혹은 ‘딸,딸,아들’의 조합 중 막둥이 고추. 위에 형이 끼어 있어도 안 되고 밑으로 동생이 있어도 안 된다. 즉 아들 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부모가 애써 뽑아낸 아드님들. 귀하게 얻은 아들이라 과잉보호 마마보이로 클 것 같지만 그게 또 안 그렇다. 아들 하나 낳았다는 안도감에 긴장 풀리고 그 사이 부모는 많이 늙고, 늦둥이 아들 낳아 유난 떤다는 지적 받기 싫어, 상상 외로 이들은 자유롭게 큰다. 대가 없는 사랑만큼은 넉넉히 받으니 의무감과 콤플렉스도 없다. 커서는 누나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으니 ‘혼자놀기’를 터득하면서 다양한 관심사와 호기심으로 자기세계가 확고해진다. 누나들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고 크다 보니 여자도 ‘쫌’ 알고.
이 ‘누나들 많은 집의 막내외아들’의 매력은 그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마인드’였다. 자기세계를 구축해서 살아가는 소년은 타인에게 작용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 드는 권위 따위엔 관심이 전혀 없다. 나는 여자로서, 연인으로서 그들과 작용하며 연애한다기보다는 나는 나, 너는 너,의 상태에서 서로를 관찰하고 소통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었다. 덩달아 희한하게도 추가 공통점이 있었는데,그들의 아버지가 모두 선생님, 하급공무원 아니면 목사라는 딱딱한 직업에 종사했다는 점이었다.전통가치가 소박함과 만났을 때 나오는 반듯함과 공정함 같은 것(부모님의 영향)이 독창성과 자유로움(본인의 자발성)과 함께 섞이면 그거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래, 나는 그들을 love라기보다는 adore에 가까운 느낌으로 좋아했던 것 같다.
허나 실은 연애장르로 쳤을 때 나의 가장 앙칼진 연애상대들은 ‘아들,아들’집의 장남들이었다. 겉으로 허우대는 가장 멀쩡했지만 장남이라는 무게감과 못누렸던 응석이 섞인 불안한 영혼들은 여자와의 ‘작용’을 통해 자꾸 상대의 무언가를 앗아가려 했다. ‘아들,아들’ 조합에선 엄마는 차남보다 장남을 더 사랑함에도 불구, 장남은 그 사랑이 남동생한테 옮겨가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다. 자존심도 세고 예민하고 타고나기를 여자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통제하려 드는 이 장남들은 황홀한 만큼 고통스러웠다.
한 편, ‘아들,아들’ 집의 둘째 아들, 차남들은 형과 딴 판이다. 형처럼 즉흥적이라기보다 한 발 물러서서 상황을 인식하는 현실적이고 냉철한 남자들이었다. 성실한 노력파들이라 대개는 형보다 나중에 더 성공하기도 한다. 형만한 아우 없다, 이거 아니던데? 돈과 정성을 쏟아 부은 쪽은 장남인데, 막상 차남은 물 안 줘도 혼자 쑥쑥 잘 크는 떡잎이었다. 여자도 진중하게 사귀고 자상한데 다만 혼자 생각 많이 하며 과묵하게 커온 바라, 여자 입장에서는 좀 외로울 수도 있겠더라. 이들과 연애로는 발전이 안 됐지만 항상 호상간에 인간적인 존중과 호감이 존재했다. 이렇게 내 인생에 관여한 남자들은 더도 말고 딱 이 세 유형이더라는 건데….
지금 난 공교롭게도 ‘딸,딸,딸,아들’ 집의 선생님의 아들과 결혼해 9년째 살고 있다. 그는 여전히 철부지 소년 같고 혼자 잘 놀며 머리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내인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마초근성으로 아내를 다스리려 한 적 없고 장남기질보다는 막내기질이 강해 효자 다행히 절대 아니다. 또한 늘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너무 자유로워 가족의 미래가 다소 걱정되기도 하지만 나 또한 아무 생각 없는 막내다 보니 솔직히 그냥 이대로 살란다. 그리고 ‘아들,아들’집의 장남들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어떻게 주소를 찾아내는지 가끔 정신 나간 집적대는 이메일을 다 보내주시고, 또한 어쩌다 보니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는 외간남자들은 모두 ‘아들,아들’집의 차남들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