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26. 수요일
춘심애비
자. 어쩌다보니 이번에도 어그로다.
2014년 11월 23일(일) SBS <K팝스타> 시즌 4의 첫편이 방영됐다. 지난 3개 시즌에서 <K팝스타>는 다른 음악관련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을 슬며시 딛고 올라서는 양상을 보였던 바 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슈퍼스타K>를 <K팝스타>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한 것. 나머지는 이슈메이킹에서나, 시청률로나, 참가자의 유명세로나 이 둘을 따라잡긴 힘들었다.
<K팝스타>가 우세를 보이게 된 이유로 공중파와 케이블의 차이를 들어볼까 했지만 MBC의 <위대한 탄생>이 망해버리는 바람에 패스. PD의 역량을 원인으로 꼽기엔 <슈스케> PD들의 역량을 대체로 낮게 평가하기 힘들다. 가장 유력한 이유로 '3대 대형기획사의 캐스팅'을 꼽을 수 있었지만 지난 시즌 3에서 SM이 나가고 안테나뮤직이 들어오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그 영향인지 어쨌는지 실제로 시즌 3에서는 버나드 박, 샘 킴, 권진아와 같이 아이돌이 아닌 뮤지션 색체가 강한 참가자들이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결국 그냥 잘나갈만 하니까 잘나간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올해, 간만에 <슈스케>도 곽진언과 김필 같은 뮤지션적 참가자들이 강세를 보이고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낸 바로 직후에 <K팝스타> 시즌 4가 시작했다. 여러 맥락에서 시청자들의 기대를 모으기 충분한 환경이 조성돼 있었던 셈.
실제로 첫방은 꽤나 화제를 끌고 있다. 양현석과 박진영의 혹평 속에 비주류 감성을 이해한 유희열, 지난 시즌 참가자의 동생, 국적 문제로 3년 전 입국할 수 없었던 실력파 참가자, 6살의 역대 최연소 춤꾼, 그리고 놀라운 음악성으로 극찬을 받은 인디뮤지션. 그러는 한편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리고 많은 언론에서 <K팝스타>시즌 4 첫방을 존나게 까대는 분위기 또한 형성되었다.
물론 대세는 호평에 가깝고, 실제 방송에서 극찬을 받은 이진아는 음원차트 상위권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소수의 비판여론은 공고해져만 간다. 아니, 비판여론이라는 말 보다는 '불편여론'이라는 말이 더 맞겠다. 딱히 뭘 잘못했다는게 아니라, 뭔가 참으로 별로인걸 봤을 때의 반응에 가깝다. 찝찝함, 씁쓸함 등등.
그런 불편여론을 보다보니 이번엔 내가 불편해졌다. 뭔 소리냐고? 그 얘기를 해보련다.
1. 불편여론의 핵심, 시작과 끝, 홍찬미와 이진아
방송의 시작은 홍찬미. 이번 시즌 본선 무대의 첫 참가자였다. 그녀는 청아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감정을 표현해냈고, 많은 관객 및 객원심사위원( 각 기획사 임직원 및 가수들이 심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번 시즌에서 도입되었음)들이 숨죽여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그러던 중 박진영이 노래를 끊었고 혹평이 이어졌다.
박진영과 양현석의 연달은 혹평은 사실 지난 3개 시즌에서 꾸준하게 일관성을 유지해 온 지적사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승전결이 없다, 한방이 없다, 지루하다 등등.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시작부터 끝까지가 한결 같이 조용하거나 한결같이 기교 일색인 경우 이들은 늘 같은 반응을 보였다. 시즌 1 우승자인 박지민도 같은 이유로 슬럼프를 겪었고, 시즌 2의 '라쿤보이즈'로 알려진 맥케이 김과 브라이언 신도 같은 지적을 받았다. 시즌 3의 버나드 박과 샘 킴도 초반에는 같은 맥락에서 '파워풀한 고음'을 주문받기도 했으며, 꽤 좋은 자작곡을 선보였던 듀오 'Something'은 이 고비를 넘지 못하고 탈락했다.
이에 대해 유희열이 반기를 들고 와일드카드라는 룰을 이용하여 홍찬미를 합격시킨다. 이 직전 과정에서 유희열과 양현석의 짧은 논쟁이 등장, 유희열은 흥하고 양현석은 욕먹는 상황이 발생한다.
* 국내 방송사가 유튜브상의 방송클립 시청을 12월부터 금지하기로 하여,
부득이 방송클립을 끼워넣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란다.(필자 주)
(박진영과 양현석의 혹평 및 탈락버튼 선택 이후)
유희열 : 저는 좋아요. 다 노래 잘하고 발성 열리고 막 그런 가수만 있어야 되는건 아니니까.
(여기서 양현석 똥씹은 표정 줌인)
유희열 : 되게 수줍고 소박하고 막 목소리도 가녀리고, 아까 같이
(같은 표현을 먼저 했던 박진영을 쳐다보고)
구름 위를 걷는 거 같이 하면서 그냥 내 얘기를 하는 그런 노래들도 있어야죠.
양현석 : (나무라듯) 근데 그런 노래를 만약에 콘서트에서 스무곡 부른다고 생각해보세요.
유희열 : (생각하며) 어...
양현석 : (하던 말에 이어서) 한곡만 듣기에는 들을 수 있는데,
유희열 : 맞아요
양현석 : 다음노래 다음노래 스무곡을 그렇게 부르면
유희열 : 대표적인 친구가, 그렇게 노래를 스무곡씩 하는 친구가 있어요.
저희 회사는 거의 다 그래요. 루시드폴이란 친구.
하지만 그 이야기를 그냥, 정말 속삭이는 얘기를 듣고 싶어서 앉아계시는 분들도
생각보다 꽤 많아요. (라고 하면서 양현석을 부드럽지만 단호한 눈빛으로 쳐다봄)
(박진영은 이새끼 어쩔라고 이래 하는 눈빛으로 이 광경을 바라봄)
결국 유희열의 와일드 카드로 홍찬미는 합격한다. 유희열은 "내가 말한 건 다 잊고 이 두 분이 말한 것만 염두해야한다" 는 당부를 남기면서 따뜻하면서도 현실감각이 있는 캐릭터를 형성함과 동시에 양현석과 박진영이 느꼈을 수 있는 뻘쭘함도 신경써주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만 끝났으면 양현석이 다소 상업주의적인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제작자, 유희열이 서브컬쳐의 감성과 시장성을 이해하는 혜안을 지닌 제작자로 정리되면서 넘어갔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방송의 맨 마지막 참가자로 나온 이진아의 무대로 인해 이번 불편여론은 불이 지펴진다.
우연찮게도 (혹은 의도적인 편집에 의해) 홍찬미와 이진아는 묘한 대칭을 이룬다. 둘 다 고운 가성으로 예쁜 목소리를 사용하는 보컬이자, 키보드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여성 참가자. 이 둘이 방송의 시작과 끝에 나왔다. 이 같음과 다름의 절묘한 조합에 대한 화룡점정은 홍찬미는 결국 의외의 혹평을, 이진아는 의외의 대극찬을 받으며 방송을 마무리했다는 사실이다.
일부 시청자들이 의아하게 생각한 부분은 사실 홍찬미의 보컬에 대해 박진영과 양현석이 쏟아부은 혹평은 대부분 이진아의 보컬에도 적용된다는 데서 기인한다. 곡의 차이를 제외하고 보컬만을 놓고 봤을 때 이진아의 보컬도 속삭이는 듯 구름 위를 흘러가는 듯 한곡 내내 비슷한 톤과 흐름을 유지한다. 그러면서 둘 다 청아한 목소리와 정확한 음정, 깔끔한 음처리가 돋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마터면 탈락할 뻔한 홍찬미와 셋 모두의 극찬을 받은 이진아의 대비가 일부 시청자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물론 홍찬미는 다니엘 파우터의 <Free Loop>이라는 기성곡을 불렀고, 이진아는 본인의 자작곡을 불렀다는 차이가 있다. 그 자작곡이 코드 진행의 세련미나 안정적인 연주력 그리고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참신한 가사를 지닌, 매우 뛰어난 곡인 것도 맞다. 하지만 지난 시즌들에서 자작곡 참가자들을 대했던 모습을 볼 때 이 방송의 심사 기준에 자작곡 가산점이 딱히 있다고 보긴 힘들고, <Free Loop>이라는 곡이 홍찬미의 보컬에 딱히 부적합했다고 보기도 좀 애매하다.
바로 이 지점. 분명 둘 다 잘 한거 같은데, 한 명은 탈락 위기를, 한 명은 엄청난 극찬과 함께 만장일치 합격을 맞게 됐다는 이 대비. 이 대비가 이 불편여론의 시작점이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점점 커져간다.
2. 인디, 서브컬쳐, 매니아, 그 미묘한 이름
이진아는 실제로 약 1년 전에 MNET <튠업> 이라는 신인뮤지션 등용문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고, 1집 앨범 <보이지 않는 것>을 발매한 바 있는 인디뮤지션이다. 즉, 이번 <K팝스타> 방송에서 노래했고 현재 음원차트에 올라가 있는 <시간아 천천히>라는 곡은 1년 된 기성곡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박진영의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 이라는 취지의 발언. 소위, 박진영표 호들갑.
물론 방송인이 방송에서 어느 정도 오바하는 건 당연하다. 일반인의 관점으로 볼 때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에서의 하하라던가 아침마당에서의 이금희는 비현실적인 오지라퍼에 오바쟁이가 될테지만 분명 방송이라는 맥락에서는 그러한 리액션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유독 이번 박진영의 극찬 발언이 불편여론을 만들게 된 건 이 곡이 '이미 발표된 곡'이라는 점 때문이다. 최근도 아니고, 1년 전에 말이다. 이 불편여론은 마치 10년간 옆에서 지켜보며 짝사랑했던 상대가 어느날 갑자기 완벽한 이상형을 찾았다며 그동안 어디있다 이제야 나타났냐고 사랑고백 하는 꼴을 보는 것과 같은, 분명 좋은 상황이지만 뭔가 좋지만은 않은 느낌과 같다. 한걸음 뒤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 그대~, 그동안 시발 내 모습을 한 번도 못봤다고 이 씹쌔야? 이런 느낌과 닮은 꼴.
여기서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격으로 "에스페란자 스팔딩처럼 그루브가 없는 음악은 못 듣는다"는 박진영의 발언이 얹어지면서, 불편여론이 한결 더 강화된다. 에스페란자 스팔딩은 첼로 및 베이스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미국의 재즈뮤지션으로, 이진아가 오디션 지원서 내 존경하는 뮤지션 란에 적은 뮤지션 중 하나.
에스페란자 스팔딩 - I know You know
박진영은 이진아를 칭찬하기 위해 "내가 평소 에스페란자 스팔딩 같이 그루브 없는 음악은 못 듣는데, 이진아는 그런 재즈적 감성과 소울적인 그루브를 절묘하게 섞어냈다" 는 류의 말을 한다.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실 그런 재즈적 감성과 소울 그루브를 절묘하게 섞었다는 표현은 에스페란자 스팔딩이라는 뮤지션에게 딱 적합한 표현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베이시스트인 뮤지션이 그루브에 약하긴 힘들다.
자, 여기서 한번 환기를 시켜보자.
어딘가에 어떤 시청자가 있다.
그 시청자는 평소 음악에 대한 자신의 취향이 확고한 편이고 국내외 인디음악이나 구하기 힘든 클래식, 재즈, 소울, 월드뮤직을 찾아서 듣는 사람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점차 천편일률화 돼가는 한국의 음악시장에 염증을 느낀지 십수 년이 넘었고, 같은 관점에서 대형기획사 및 아이돌 시장에 그리 고운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K팝스타> 시즌 1~2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시즌 3에 유희열이 나온다는 말에 한두번 찾아보다가 버나드 박, 샘 킴, 권진아를 보면서 우호적인 태도를 갖고 시즌 4도 지켜보게 된다.
이런 시청자라면 일단 시작에서 홍찬미에 대한 혹평이 쏟아질 때 '아... 시발 대형기획사는 저 선을 못넘는구만'하고 씁쓸해하다가, '역시 유희열' 이라는 생각을 갖고 좀 더 지켜보게 됐을거다. 중간에 스타킹 출신 6살 춤꾼 참가자가 나왔을 때 잠깐 눈살을 찌푸렸다가 그레이스 신, 박윤하 등을 보며 굳이 채널을 돌리진 않게 된다.
그러다가 이진아가 나온다. 노래는 들어보지도 않고 합격을 누르는 유희열과 박진영을 보고 이 사람은 1차 의아함을 느낀다. 물론 이진아의 도입부 연주는 제대로 훌륭했지만, 아니 유희열이? 유희열이 이정도 코드 진행에 이정도 연주를 평소에 못 들어봤다고? 노래를 들어보기도 전에 합격을 누를 정도로 엄청났다고?
다소 이상한 기운을 느낀 이 시청자에게 있어서 박진영의 '듣도 보도 못한' 드립과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드립, 그리고 '에스페란자 스팔딩 그루브’ 드립은 마치 울고 싶은 사람 싸대기 후려갈겨 주는 격으로 농도 졸라 높은 불편함을 제대로 느낄 기회를 제공할 거다. 이미 발표한 노래에 대해 저렇게 말하는 건 평소에 인디신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고 해석될 수 밖에 없겠고, 에스페란자 스팔딩의 그루브를 논한다는 건 그냥 그녀의 음악을 안들어봤다고 여겨질 수 밖에 없다.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유희열도 되려 미워진다. 이진아가 별로라는게 아니라, 인디신에 다른 뮤지션들 중에 비슷하게 잘하는 뮤지션이 얼마나 많은데 나름 중간세계에 있는 유희열이 덩달아 호들갑 떨면 안되지 싶다.
그러고 나서 보니 이진아가 바로 음원차트에 오르는 이 상황, 각종 SNS에 이진아 클립이 돌아다니는 이 상황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아니 내가 들어온 인디 뮤지션 중에 이만큼 잘하는 팀이 얼마나 많은데 다들 평소엔 관심도 없다가 <K팝스타>가 뭐라고 그거 한방에 이렇게 다들 난리야.
다소 과장하긴 했지만 꽤나 개연성 있는 이 시청자의 상황. 인디문화/서브컬쳐/매니아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공감할 이 상황. 이 상황은 바로 인디/서브컬쳐/매니아 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문화와 작품을 주류문화에서 섣불리 다뤘을 때 느껴지는 불편함 말이다. 이 특징적 반응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니들이 이거에 대해 뭘 알아?
그리고 <K팝스타> 시즌 4 첫회는 이 특징을 제대로 후벼팠다.
3. 분석 또는 쉴드
일단 불편여론의 기반이 되는 홍찬미와 이진아의 대조 부터 보자. 과연 이 둘에 대한 혹평과 극찬은 그 이유가 뭔지. 3명의 심사위원이 각자 자신의 회사를 대표하는 제작자로서 앉아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프로그램 전체에서의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은 '상품으로써의 가치'다.
물론 이 말은 기분 나쁜 말이다. 사람을 상품이라니. 하지만 모두가 한편으로는 이해하고 있을 거다. 모든 노동자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고용주에게 판다. 방송 이름 자체가 <K팝스타>인데 여기서 상품 가치를 배제한 휴머니즘을 기대하는 건 모순이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이 냉정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보다 높은 상품 가치를 지니는 사람을 발굴해 내는 목적을 지닌다.
그런 면에서 홍찬미와 이진아의 첫 본선 오디션 무대는 확실한 차이를 지닌다.
그건 바로 이진아의 무대를 특정하여 묘사하기가 훨씬 쉽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대체제를 찾기가 힘들다.
이진아의 무대는 웬만한 프로 키보디스트 수준의 연주력, 프로 재즈뮤지션 수준의 화성진행, 아기 같은 목소리, 나이다운 귀여운 가사 등의 키워드로 설명 가능하고, 이 모두에 함께 해당하는 다른 여성 뮤지션은 언뜻 생각할 때 잘 떠오르지 않는다.
반면 홍찬미의 무대는 안정적인 연주력, 청아한 목소리, 섬세한 감성으로 설명 가능하지만, 이 모두에 함께 해당하는 다른 여성 뮤지션이 졸라 많다. 물론 똑같은 뮤지션이 많다는 얘기가 아니다. 홍찬미의 무대는 윤하와도, 박새별과도, 권진아와도, 아이유와도 다르다. 다만 저 주요 키워드들의 조합이 비교적 낯설지 않다는 거다.
이러한 유니크함의 차이는 상품가치의 차원에서 큰 차이가 된다. 이진아와 같은 목소리도 찾아보면 많고, 그정도 연주력도 찾아보면 많지만, 그 둘의 조합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태지의 보컬에 비해 케이윌의 보컬이 기술적으로는 더 뛰어나겠지만, 서태지 목소리의 대체제는 없고, 케이윌은 휘성이나 환희로 어.느.정.도 대체된다. EXID 멤버들이 2NE1보다 더 쭉쭉빵빵하더라도, EXID의 <위아래>는 섹시컨셉의 걸그룹으로 어느정도 대체되지만, 2NE1의 <컴백홈>은 현재 국내에는 대체제가 없다. 대체제가 없다는 사실은 잘하고 못하고와는 다른 차원에서 그 상품가치를 높인다. 대체제가 없는 가운데 잘하기까지 하고 게다가 그게 대중적이기까지 하다면 그 상품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그런 관점에서 이진아의 무대는 홍찬미의 무대보다 월등히 유니크했다. 물론 다음 무대에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렇다면 이제 박진영의 '에스페란자 스팔딩 그루브' 드립과 '듣도 보도' 드립 차례.
일단 에스페란자 스팔딩 부터 보자. 아래는 아까 본 영상과 다른 곡이다.
에스페란자 스팔딩 - Junjo
느껴지는가. 이 하드한 재즈. 당장이라도 쌔근쌔근 잠들 것 같은 난해함. 2005년에 만들어진 첫 솔로앨범 <Junjo>는 전체가 다 이렇다. 반면 2012년 발표된 <Radio Music Society>는 에리카 바두 앨범 중 가장 대중적인 트랙들을 연상시킬 정도로 훨씬 소울풀하다. 이렇다면 이 뮤지션을 그루비한 소울에 재즈를 접목한 뮤지션으로 볼 것인지, 하드하고 실험적인 재즈를 하는 뮤지션으로 볼 것인지는 순전히 청자의 자유다.
다른 예로 대입 했을 때 누군가가 ‘저는 성시경 같은 한국식 발라드를 못들어요' 라고 한다면 여기다 대고 '이런 ㅂㅅ이 모다시경의 미소천사를 몰라? <우린 제법 잘어울려요>가 한국식 발라드야?' 라고 하면 어떨까. 또는 바비 맥퍼린을 재즈의 거장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고 'ㅂㅅ아 바비 맥퍼린이 클래식 지휘하는거 모름? 어떻게 재즈 뮤지션이라고 함?' 이라고 한다면?
어차피 모든 뮤지션은 말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고, 우리 모두는 세상 모든 뮤지션을 다 들어볼 수 없다. 그러므로 재즈를 별로 안듣는 사람이 데뷔 당시 하드한 재즈를 구사한 에스페란자 스팔딩에게 '딥한 재즈 뮤지션'이라는 생각을 갖게돼서 이후의 앨범을 쭉 안들었다는 건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듣도 보도' 드립도 마찬가지. 이진아의 <시간아 천천히>라는 곡의 멜로디, 코드진행, EP연주, 가사, 목소리를 모두 따로 떼어 놓으면 실음과 출신 인디뮤지션들 앨범과 인디포크 앨범에서 각각 비슷한 케이스를 찾아볼 수 있겠다만 저게 저렇게 조합된 건 이진아 한 명밖에 없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자칭 인디팬을 자처하는 사람에게 '너 시발 내가 제작한 곡 다 들어봤어? 그것도 다 안들어보고 인디 팬이야?' 라고 하면 졸라 쳐맞아야 되듯이 박진영이 1년전이 아니라 10년전에 발표된 인디 앨범이라도 안 들어볼 수 있다. 심사위원 3명 각자가 어떤 인디 앨범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충분한 비판의 여지를 만들진 않는다.
결국 하나하나 따져보면 방송이 그렇게 된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도의적 측면에서 이미 앨범 낸 뮤지션에게 너무 호들갑 떤데 대한 사과를 해야했다고 치더라도, 유희열이 '들을 음악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게 아니라 들을 음악을 우리가 찾지 않았다'고 한게 그 사과로써의 기능을 충분히 한다.
4. 불편함이 불편하다
쉴드는 대충 다 쳤는데 아직 기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이유는 이 얘길 하고 싶어서다.
<K팝스타> 시즌 4 첫회에 대해 비판을 하는 분덜이 위에서 언급한 각각의 사정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냥 싫었을거다. 에스페란자 스팔딩을 제대로 듣지도 않은 사람이 이상한 오해를 만드는 게, 마치 인디신에 다른 잘하는 뮤지션이 없는 거처럼 보이는게, 무엇보다도 뮤지션이 상품가치로 환원되는게.
그래 뭐 라디오헤드 팬으로서, 아직까지도 <creep>으로만 기억하는 사람을 보면 좀 짜증나는 건 있고, 수많은 이승환 팬들이 이승환을 라커가 아니라 발라드 가수로만 보면 짜증나듯이, 한 뮤지션이 다소 왜곡되는 건 분명 짜증낼 수 있다. 인디신에 대해서도 유희열이 이진아를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 좀 아쉬운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불편여론에서 느껴지는, 뮤지션의 상품가치를 논하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역으로 나를 불편하게 한다. 불편여론에 다소 동참했거나 공감했던 분덜은 좀 억울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저항감이 대단히 모순적이고 일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뮤지션의 상품가치에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음악을 상품으로써 소비하기 때문이다. 아마 더 억울해졌겠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상품가치라는건 어떤 빅브라더가 '시발 이게 젤 중요하니까 다들 시키는대로 해!'라는 식으로 만든 강압적 규칙 같은 게 아니다. 시장이라는 건 결국 총 수익을 최대화하려는 의도들의 총집합이고, 수익의 최대화는 '더 비싸게, 더 많이' 로 해석된다. 대중음악 공연 티켓이 30만원이 넘고, 앨범 하나가 10만원이 넘으면 당연히 장사가 안되기 때문에 결국 대중음악이라는건 '더 비싸게' 보다는 '더 많이'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대중음악에서의 상품가치는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구매할 음악'이 된다. 기꺼이 구매를 한다는 건 좋아한다는 말이다. 결국 상품가치란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아이돌을 착취하는 회사를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아이돌이 범람하는 이 시장을 기획사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안드로이드폰이 많이 팔리면 윈도우폰은 적게 만들고, 붕어빵이 잘 팔리면 국화빵 가게는 줄어들 수 밖에. 아이돌은 음악이 아니라 비주얼과 성의 상품화라고? 감히 누군가가 '음악이라는 예술이 섹시한 안무와 비주얼보다 우월한 예술'이라고 단언할 수 있나?
그런 면에서 나는 인디신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인디/서브컬쳐/매니아문화 애호가들 중에서 '인디 좋아하는 나나 아이돌 좋아하는 너나 똑같지 뭐'라는 태도가 아니라 '인디 좋아하는 나는 아이돌 좋아하는 너와 달라'라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불편하다. 그 태도에는 '나는 이 작품의 가치를 즐기지만 너는 그냥 소비할 뿐이야' 라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아이돌 좋아하니까 정상이고 너는 이상한 인디 좋아하니까 비정상이야'라는 태도도 마찬가지로 졸라리 불편하다. 어떻게든 내가 필연적으로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건 폭력적이다.
그 문화의 가치를 알고 작가와 공감한다는 사실이 소비를 소비가 아닌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어쨌든 한 사람이 한 작가의 작품을 사랑하고 즐긴다면 그에 대한 댓가가 지불돼야 하니까. 서로가 다른 형태의 가치를 주고 받는건 결국 소비 그 자체다. 아이폰을 애플매장에서 사나 통신사 매장에서 사나 소비라는 행위임은 똑같듯이 라디오헤드 앨범을 사이트에서 직접 사나 스마트폰에서 아이돌 앨범을 쿠폰으로 구매하나 소비라는 행위 형태의 본질은 같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비주류 문화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은 그 상품 자체의 가치에 더해서 '희소성'까지 덤으로 얻는 셈이다. 고백하건데 나는 이번 미국 출장에서 샌프란시스코의 한 구석탱이에 박혀있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고, 나는 단지 이발이라는 서비스만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한 구석에 있는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자르는 남자'라는 희소성을 의도적으로 산거다. 30불이라는 가격과 10불이라는 팁을 주고서. 이 사실이 나의 소비를 블루클럽 가는 사람이나 준오헤어 가는 사람의 소비와 다르게 만들 수는 없다.
이러한 희소성의 소비 그리고 그 소비로 인한 정체성은 결국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고, 그 아비투스의 계급화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주류문화만을 비판하는데 쓰여야 하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취향 그리고 그 취향과 경제적 처지의 조합에서 발생하는 소비행동은 서로 가치가 다를 수 없다. 그냥 각자 알아서 소비할 뿐이다. 물론 그 소비로 인한 행복감은 다들 다를 수 있다. 다만 내가 소비하는 방식이 남들의 방식보다 우월하다던가, 반대로 남들의 방식이 나의 방식보다 저급하다던가 하는 생각에 반대한다. 한발 나가서 내가 하면 공존적 향유, 남이 하면 저급한 소비라는 식으로 생각하는건 더더욱 쌍수들고 반대한다.
한국의 비주류문화가 척박한 건 저급한 주류문화 소비가 원인이 아니라 문화의 가치를 거시적으로 보지 못하는 사회구조 때문인거다. 그 사회구조가 주류문화를 주로 소비하고 그 상품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저급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박진영, 양현석, 유희열보다 위와 같은 이유로 그들에 대해 찝찝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찝찝하다.
물론 위와 다른 이유로 찝찝하게 생각하는 분덜에 대해서는 별로 불편하지 않다.
끝.
춘심애비
트위터: @miir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