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겨여왕, 방콕 공항에서 쓰러지다.
우리 시간 7월 8일 7시쯤 방콕 국제공항에서 피겨여왕 김연아가 의자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 누웠다. 거의 실신에 가까울 정도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단을 실은 KAL 전세기 9964편이 잠시 경유하는 동안, 승객들이 잠시 기내 밖에서 휴식을 취하러 탑승구 앞 의자에 모여들 때였다.
평소 같으면, 김연아의 상태에 대해 취재를 시작해야 했지만 기자들 사이에는 서로 공감의 눈빛이 돌았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쉬도록 놔두자는 암묵적인 합의였다. 카메라를 잡았던 카메라기자들도, 취재기자들도 애써 그 자리를 떠나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렸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반에서 돌아오는 기내 상황을 취재하고 있어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지만, 최소한 피겨여왕의 품위랄까? 스위스 로잔에서 아프리카 토고의 아노카(ANOCA) 총회, 그리고 더반 IOC총회까지 피말리는 긴장감속에서 최선을 다한 김연아의 지친 모습을 득달같이 달려들어 취재하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 더반 현지에서 거의 이틀 밤을 세며 취재하고 방송하느라 방송기자의 생명인 목이 부어, 목소리가 흔히 하는 말대로 ‘공룡목소리’로 들릴 만큼 갈라졌고, 코감기까지 들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콧물이 줄줄 흘러....동병상련이랄까 조금이라도 쉬게 놔두고 싶었다.
김연아는 사실 이미 더반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앵꼬상태’ 거의 모든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났을 것이다. 그러나, 막강한 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조금 쉬면 좋아지겠지 하는 조금은 믿는 구석도 있었다.
그러나 김연아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아졌다. 아예 탑승구 앞 대기실 의자를 침대삼아 아예 누워버렸다. 물조차 잘 마시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김연아의 매니저는 김연아를 먹을 따뜻한 물을 찾아 공항을 해매고 다녔다. 상황이 악화되자 한의사인 윤석용 장애인체육회장이 김연아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절대안정하라는 진단결과를 내렸고, 유치위원회 관계자들을 불러 다시 한번 김연아의 몸상태를 강한 어조로 설명했다.
김연아에게는 다시 비행기에 오르면 불과 다섯 시간 뒤에 귀국 기자회견 등 빡빡한 일정이 남아있었다. 특히, 공항에서 진을 치고 기다릴 팬들을 생각하면 적어도 기자회견에는 참석해야 하는데 유치위 관계자들의 표정에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모두 같은 결론을 내렸다. 김연아의 휴식에 합의했다.
2. 뮌헨의 딴지, “김연아! IOC 규정위반이다.”
김연아는 지칠 수 밖에 없었다. 강철같은 체력과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더반에서 일찌감치 병원신세를 졌을 것이다. 프레젠테이션 등 유치활동도 부담이었지만, 경쟁 상대인 뮌헨이 전방위로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더반에서 김연아의 일거수일투족은 뮌헨과 안시 등 경쟁도시들의 감시 대상이었다. 우리가 독일의 토마스 바흐 IOC부위원장과 뮌헨 유치위를 이끄는 카타리나 비트에 기울이는 관심 이상이었다. 뮌헨은 카타리나 비트가 있어 자신만만했지만, 막상 더반에 상륙해보니 김연아의 영향력이 비트를 능가했기 때문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김연아 효과는 거의 매일 눈에 보일 만큼 나타났다. 평창의 의욕적인 프로젝트의 하나인 드림프로그램을 경험한 남아공 피겨선수가 프레젠테이션 준비에 바쁜 김연아를 찾아와 만나고, 이런 관심이 IOC총회가 열리는 더반에 입소문으로 번졌다.
또, 김연아의 기고문이 현지 신문에 기도문을 보냈는데 현지 반응이 뜨거웠다. 개최지 투표 이틀 전인 현지시간으로 4일, 남아공 일간지인 데일리 뉴스(the Daily News)에 ‘세상을 향해 아시아를 열며(Opening Aisa to the World)’ 라는 김연아의 기고문을 실렸다. 김연아의 기고문이 뮌헨을 지지하는 독일 출신 NBA 농구스타 더크 노비츠키보다 4,5배 큰 사진과 함께 실렸다.
김연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부담을 느낀 라이벌 뮌헨이 김연아에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김연아가 프레젠테이션 준비에 빡빡한 일정을 통해 남아공 더반의 작은 아이스랭크에서 이곳 꿈나무들을 한 수 지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린 김연아가 미셸 콴의 연기를 보고 꿈을 키운 것처럼 이곳 어린이들도 자신을 만난 계기로 꿈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꿈나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김연아는 어린 선수들에게 기념으로 목도리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목도리에 영문으로 평창이라고 씌여있었다.
김연아가 너무 유명한 게 탈이었다. 외신들이 앞다투어 김연아와 어린이들의 만남을 취재했는데, 방송카메라 취재가 신기한 참여한 어린이들이 이 목도리를 흔든 것이 뮌헨의 심기를 자극했다. 뮌헨 유치위는 곧 평창 유치위에 규정위반이라고 딴지를 걸어왔다. IOC가 정한 국제 홍보 활동 금지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IOC 윤리규정에 따르면, 총회가 개최되는 남아공에서는 개최지 투표일 3주 전인 6월 15일부터는 어떤 선물도 줄 수 없고, 홍보물을 배포하거나 현수막 등도 걸 수 없다. 김연아 평창 유치위 홍보대사인 상황에서 목도리를 나눠주었고, 그것을 받은 어린이들이 흔들고 놀면서 평창이라고 외친 것은 그야말로 걸면 걸리는 것이었다. 유치위는 서둘러 뮌헨의 지적을 받아들인다고 회신하고, 한국 미디어에 해당 화면과 사진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흔히, 하는 말로 그림이 좋았는데, 한국의 모든 미디어가 이 장면을 뉴스에서 뺐다.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과정에서도 과테말라 지방정부가 만든 홍보책자를 평창이 만들어 배포한 것처럼 잘못 알려져, 금지활동 위반에 휘말릴 뻔해 홍역을 치른 유치위와 한국 취재단의 발빠른 대처였다.
아무리 강철같은 김연아라도 본인의 이름이 언급되고 유치위가 분주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봤을 때는 당황했고 부담도 느꼈을 것이다.
3. ‘다시는 못할 짓‘ 홀가분해서 울었어요.
결전의 날, 자크 로게 위원장이 2018년 개최지로 평창을 호명하는 순간, 유치단 맨 앞에 서있던 김연아는 눈물을 보였다. 마치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금메달 시상식에서 울었던 것처럼...
발표를 마치고, 김현우 기자와 함께 가장 먼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흐르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나 고생한 사람들! 너무나 기대하는 사람들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라고 간신히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안정된 김연아를 만나 다시 물었다. 카메라가 꺼진 줄 알고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다시는 못할 짓인 것 같아요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났어요. 지금은 홀가분해요”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근데 또 해야 된다면, 아마 또 할 것 같아요”
역시, 김연아는 김연아다. 아직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성급하게 IOC선수 위원이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올림피언이라면, 주저없이 김연아에 한 표를 던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최종 더반으로 가기 직전 일정이었던 스위스 로잔에 이은 아프리카 토고행. 그런데 스위스 총회때와 달리 토고 총회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이유는 기자들이 안가서 ㅋㅋㅋㅋㅋ 예방주사 맞아야 해서... 멀쩡히 건강한 사람도 맞으면 온몸이 아프다는 예방주사4대나 맞고 또 바로 더반까지... 저러니 쓰러지지. 그래서 유일한 토고 사진은 현지 주민이 올려주신 저 사진 한장 뿐이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