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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게시물ID : freeboard_10299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쥬딩
추천 : 0
조회수 : 8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8/21 10: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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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처음 그 고양이를 본건 어느 여름날에 퇴근길이었다. 오후 5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지만 나무 그늘 아래로 쏟아지는 햇빛이 기분 좋은 날이었다. 집 근처에 한사람만 걸어가도 빽빽한 좁은 골목길이 있었다. 그 골목길 중앙에 눈처럼 하얀 장모를 가진 눈에 띄는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뭔가에 홀리듯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흠칫할 정도로 내가 이제껏 본 고양이들 중 가장 못생긴 고양이었다. 밝은 노란색의 날카로운 눈동자는 뱀을 연상시켰다.  스코티시 폴드 비슷하게 코는 납작했고 전체적으로 아주 심술궃게 생긴 인상이었다. 아름다워보였던 하얀 장모도 가까이서 보니 어딘지 꾀죄죄했다. 내가 접근해도 도망가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야옹하고 이빨만 한번 드러낼뿐,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자 이내 기분 좋은듯이 가만히 있었다. 도망가지 않는 녀석이 신기해서 나도 가만히 옆에 쭈구려 앉아서 그렇게 한참을 쓰다듬어 주었다. 낮게 갸르릉 거리던 녀석은 살며시 일어나 내 주위를 빙 한번 돌고 내 다리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마치 더 해달라는듯이. 사람의 손길이 그리웠던걸까. 한참을 멍하니 쓰다듬어주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집에 가서 해야할 일들이 떠올라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집으로 향했다. 발걸음을 멈추고 흘끗 뒤를 보니 그 고양이는 다시 처음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멀어져가는 나를 빤히 바라만보았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건 내 쪽이었을까. 

 그 뒤로도 몇번씩 그 녀석이 보일때마다 바쁘지 않으면 다가가서 으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집으로 가곤 했다. 그런데 어쩐지 볼때마다 그 하얗던 털은 점점 윤기 없이 거뭇해졌고, 조금 야위어 가는것 같기도 해서 주인이 없는 고양이인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애완동물을 버리는 일은 호주에서 흔치 않은 일이니까 그럴리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던거다. 혹여 버려진 고양이라 하더라도 내가 데려가서 키울만한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마음에 부담감을 그렇게나마 무마시켜보고 싶었던것이다. 아무것도 해줄수 있는게 없다는 죄책감 비슷한걸 버려두고 부디 녀석의 주인이 잘 케어해주길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왔다. 하지만 그때를 마지막으로 그 녀석은 좀처럼 다시 나타나질 않고 있다. 어쩌면 오늘은 다시 그 자리에서 또 사람 손길을 그리워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출퇴근길마다 고개를 돌려 그 골목길을 쳐다보는게 습관이 되었다. 
아마 오늘도 그 길목은 비어있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또 고개가 돌아간다. 
아직도 텅 빈 그 길이 허전하다.

 -습관-
 2015년 8월 



http://todayhumor.com/?animal_114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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