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폭력과 유기.
게시물ID : animal_1306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게코
추천 : 10
조회수 : 47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6/11 23:20:26
1b37ce7f121150f8549bc85e15d17193.jpg
 
 
 
 

 
 
몇주 전 담벼락에서 주인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샴고양이를 봤다.
발견하자마자 급한대로 사진을 찍은 후 물과 캔을 따서 줬는데 고양이는 결국 먹지 않고 가버렸고,
걱정이 되어 바로 고양이 카페 유기묘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글을 올려 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아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그 뒤로 같은 고양이를 두번이나 더 보았다.
 
한번은 얼마 전 집 근처 골목에서, 한번은 방금 대문 앞에서.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기 때문에 평소 머무르던 그 반경을 잘 벗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기르던 고양이가 집을 나가면 대개 두 시간 ~ 최대 일주일 안에는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유는 고양이라는 동물의 특성상 절대 넓은 생활권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만약 당신이 고양이를 잃어버렸다면 당신의 고양이는 무조건 잃어버린 그 지점에서 1~2km 반경 내에 있다는 소리다.

누가 차를 타고 먼곳까지 와서 유기한 게 아닌 이상(그렇다고 해도 유기된 그 장소에서 맴도는게 태반이고),
가출을 하였어도 이 상황은 마찬가진데, 방금까지도 그 고양이가 내 눈에 띈 걸로 보아 이것은
필경 누군가 버렸거나, 최소 가출을 했다손 쳐도 주인이 자신의 고양이를 찾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에 지금 몹시 화가 난다.



거주지가 단독주택이고 동네가 바닷가 주변이라, 우리 집 근처에는 고양이들이 참 많이 산다.
대부분 어미에게서 낙오된 새끼들이거나, 혼자서 삶을 꾸려가는 길 고양이들이다.
대개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야생의 상태지만, 그렇게 길 위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 중에서도
가끔 유달리 사람에게 살갑게 다가오는 녀석들이 있다.

그런 녀석들을 마주칠때면 나는 열 번중 네 번은 밥을 챙겨주고, 여섯 번은 무시한다.
밥을 주는것도 주기적인 게 아니라 아주 긴 텀을 두고 띄엄띄엄.

매번 같은 장소에서 같은 녀석에게 같은 시간 밥을 챙겨주다보면,
그 고양이는 언제나 밥이 거기 있을 것을 기대하고 매일 그 자리에 와 나를 기다리게 되어 있다.
설령 당신이 오지 않을 때도,
그리고 더이상은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무언가를 거둘 수 없는 상황에서 무책임한 동정으로 사람의 손을 거치게 하고 
그 친절의 댓가로 고양이가 얻은 인간에 대한 학습이, 인간과 동물 사이에 어떤 드라마틱한 연결고리나
디즈니 애니메이션같은 우정을 제공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며 또한 당신이 놓친 치명적인 맹점이다. 

세상엔 생명의 가치를 두고 시간을 내어 고민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고,
더군다나 그 대상이 집 주변에서 매일같이 울어대는 길고양이일때는 그들에게 더한 무자비함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사람의 손에 길들여져 자생능력이 없는 동물들이 길위로 내몰렸을때 인간에게서 받는 학대와 폭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당연히 언제나 동물보다 사람이 우선이고, 그래야만 한다.
그렇기에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혹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비인간적이라고 매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순간의 배고픔이라도 달래주려 누군가가 건네는 500원자리 소시지를 비난하고자 함도 아니다.

 
한 생명을 거두고 길들이는 일이, 당신이 반려동물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기대하는 즐거움의 크기보다
더 엄중한 무게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자신과의 타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이 반려동물을 인생에 끌어들이게 되면,
당연한 얘기지만 피해자가 되는 쪽은 여과없이 짐승 쪽이다. 

왜 세상엔 이렇게 못된 사람들이 많을까.
동물을 학대하는 쪽보다, 유기하는 당신의 졸속과 비열함이 더 나쁘다.

길고양이들의 수명 평균 3년, 유기된 고양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6 개월 정도다.

 
이럴 때면 동정심이라는 게 없었으면 좋겠다.
그게 비록 우리 삶을 공존과 상생을 통해 가치있게 만들어 주는거라고 해도,
그 대상을 도울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무력함이 자꾸 나를 아래로 끌어당기고 질책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애 같은 소리지만, 이건 그것을 바라보는 나 같은 제3자에게도 명백한 폭력이다.
그래, 나는 화를 내고 있다.
고양이를 유기한 당신에게, 그리하여 괜찮을 수 있었던 오늘 내 하루를 망친 당신에게.

 
밥이나 주러 가야겠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