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중심으로 보아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요인에는 '내적요인'과 '외적요인'이 있다.
-내적요인은 '나의 선택으로 인한 행위', 의지이다.
-외적요인은 '변하는 환경'과 '불변하는 환경'이 있다.
불변하는 환경이란 내 의지와 노력(내적요인)으로 절대 바꿀수 없는 일을 말한다.
변하는 환경이란 내 의지와 노력, 선택(내적요인)으로 바꿀수 있는 일을 말한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가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나를 때렸다. 나는 화가 나서 그 사람을 죽여서 감옥에 가게 되었다.) 라는 사건이 일어났다.
'모르는 사람이 나를 때린 것'은 외적요인(불변하는 환경)이였다. 내가 어떻게 해도 바꿀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죽인 것'은 내적요인인 내 선택에 의한 의지의 표출, 행위이다.
'감옥에 가게 된 것'은 외적요인(변하는 환경)이다. 내 다른 선택(내적요인)에 따라 다른 사건의 전개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모르는 사람이 나를 때린 것'은 불변하는 환경이 아니라 변하는 환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알았던 사람이 옛 학창시절에 내가 왕따를 시켜 상처를 주었던 사람이였어서 내가 그 옛날에 친구를 괴롭히지 않았었다면 나에게 주먹이 아니라 악수를 권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한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입장은 불변하는 환경의 범위를 좁게 보거나, 인과관계를 못찾았을뿐 불변하는 환경은 없다고 볼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은 현재 바꿀수 없는 불변이므로 당시 현재의 관점으로는 불변하는 환경으로 보는게 타당하다.
위는 '나'의 입장이고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학창시절에 '나'가 했던 폭행이 불변하는 환경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불변하는 환경' 때문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선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오직 '내적요인', 또는 내적요인의 영향을 받는 '변하는 환경' 때문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만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게 바로 '존재의 책임'이다.
나라는 존재는 현재의 나 뿐만아니라 과거의 나 또한 포함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이 했던 잘못은 용서 받을수 없다. 일어난 일은 시간에 박제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책임을 지게 된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이 없는 이상 잘못에 대한 책임을 청산할 수 없다. 책임을 진다는건 용서를 빌긴해도 용서를 받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용서라는건 해줄수 있지만 받을수는 없다. 마치 너무나도 과분한 선물과도 같다.
그렇기에 용서를 받겠다는건 책임을 덜겠다는 의미이고, 책임을 회피하는건 자신의 존재를 모욕하는 행위가 된다.
타인으로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자책이 되고 반성이 되며 종국에는 자아실현이 된다.
하루하루 나의 책임은 늘어나게 되며, 그 책임을 질수록 존재는 무거워진다. 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