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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베란다에서 밤하늘 보다가 눈물이 났다.
게시물ID : bestofbest_1032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akenC
추천 : 581
조회수 : 43996회
댓글수 : 6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3/03/20 03:43:37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3/20 00:30:02


계속되는 야근과 철야에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쳤다.

아직도 핸드폰에 남은 아버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상대방의 요청에 의해 당분간 착신이 중지되어...

다시 아버지 번호로 문자를 찍어봤다. 아버지, 거긴 따뜻한가요? 거긴 아픈 것도 없나요? 행복하세요?... 전송이 안됐다. 상대방의 요청에 의해 당분간 착신이 중지되어...


우리 가족은 쉽게 말하자면 빈민층이었다. 아버지는 레미콘 운전을 하셨지만, 차로 하는 일이 다 그렇듯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오고,

돈은 많이 받아도 대부분 차 수리비로 나갔다. 언제나 한달 벌어 한달 사는 생활이었다.


아버지는 참 말이 없었다. 감정표현도 없었고, 웃음도 없었다. 내가 성적표를 받아오는 날이면, 넌 아빠처럼 살지말아라. 아빠처럼 실패한 인생을 살지 말아라... 그래서는 안된다고, 그게 아버지 입버릇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 4년제 대학에 합격했다. 그리고 곧바로 휴학을 했다. 미친듯이 일했다. PC방, 도서대여점, 막노동, 별 희한한 일들 닥치는대로 다 했다. 그렇게 1년 반을 일했더니 통장에 3천만원이 모였다.


그리고 군대를 갔다. 휴가를 나왔더니,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내가 중학생일 무렵 아버지는 당뇨에 걸렸고, 그 당뇨는 원래 몸이 약하셨던 아버지의 육신을 엄청난 속도로 잠식해갔다. 심장에도 문제가 있었고, 신장에도 문제가 있었다.


살아나신다면 기적이라고 했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당뇨 때문에 보험 가입이 안되어 수술비는 순수히 우리가 메꿔야 했다.

모아놨던 돈을 오롯이 어머니께 밀어드리곤 복귀를 했다. 



제대를 했다. 제대한 날, 아버지는 새까매진 얼굴로 날 반겨주셨다. 우리 아들 왔나, 2년 동안 고생했제. 욕봤다 우리 아들. 

방에 들어와 책상 서랍을 열었더니, 필립 모리스 담배 두갑이 들어있었다. 꼬불꼬불한 아버지의 손글씨 편지도 한장.

담배 너무 많이 피우지 마라 아들아, 피더라도 좋은 거 펴야한데이.

그 필립 모리스 두갑은 비닐도 안뜯은 채 아직도 내 서랍에 들어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연애를 하고.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평온하지 못했다. 당뇨로 시력을 잃으시고, 야윌대로 야윈 몸은 볼 때마다 가슴이 메어졌다. 회사 워크숍으로 스키타러 갔다가 다쳐서 다리에 깁스하고 목발 짚고 겨우 돌아다닐 때, 아버지가 심근 경색으로 쓰러지셨었다. 

목발이고 뭐고, 아직 땅에 발 디디면 안된다는 의사 경고도 모르겠고 아버지를 태운 앰뷸런스에 냅다 뛰어올라갔다. 결국 붙어가던 다리가 도로 부러졌었다. 하하.


어찌어찌 테크를 잘 타서 대기업에 들어갔다. 우리 아들, 우리 아들... 아빠 소원 풀어줬네 장한 내새끼... 훌륭한 내새끼... 어디 내놔도 안부러울 내새끼...


그리고 한달 후 아버지는 췌장암 판정을 받으셨다. 말기. 6개월...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이제야 좀, 이제서야 고생 좀 끝나시려나 했는데. 


정말로, 거짓말처럼 6개월이 지난 2013년 1월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야윌대로 야위어서 몸에 살이라곤 없이 뼈만 남은 몸으로, 병원에 찾아갈 때마다 내 새끼, 내 아들 왔느냐고 반기시던 아버지는, 놀라 뛰어들어간 내 얼굴 한번 보시고, 어머니께 평생 당신만을 사랑했다는 한마디를 유언으로 남기시곤 세상을 떠나셨다.


나도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된 몸으로, 홀로 되신 어머니를 모신 몸으로, 이제서야, 정말 멍청하게도 이제서야 가장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 이 바보같은 놈.


그 새벽에 집을 나서 한밤중에 귀가할 때, 왜 아버지 고생하셨네요 추운데 욕보셨습니다 한마디 제대로 못했을까.

아들은 필립 모리스 사주셔놓고 정작 당신은 디스 피우시는데 왜 아버지한텐 좋은 담배 한갑 못사드렸을까.

이름뿐인 대기업이랍시고, 일이 바쁘답시고 흔한 제주도 한번 못 모셔갔을까.


...1년만 먼저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갔더라면 이렇게 허망하게 아버질 보내지 않았을거다. 왜 나는 그 생각을 못했을까.

왜 그랬을까.


몰랐다.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는, 자식된 도리로 나는 힘들겠지만 아버지는 평온하실거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울지 않았다.


그랬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게 아니다. 어깨에 짊어진 가장이라는 무게가, 삶이라는 무게가 날 짓누를 때마다 난 왜 진작 아버지를 챙기지 못했는지 더 잘하지 못했는지 후회만이 가득하다.


정말이지 딱 한번만, 단 한번만 더 아버지를 뵐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텐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오늘도 철야가 예정된 밤, 혼자 회사 베란다에 나가 담배 한대 피우고선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눈물이 날 거 같아서, 아버지한테 전화를 해봤다. 지금 거신 번호는 상대방의 요청에 의해 당분간 착신이 중지되어...

문자를 찍어봐도 전송이 안된다.


아버지, 거기는 평온한가요. 아버지 추위도 많이 타시는데 거긴 따뜻합니까.

이 못난 아들놈은 계속 후회만 하며 아버질 그리워합니다. 왜 지난 다음에야 이럴까요.

계실 때 더 잘하지 못한 게, 너무 가슴에 사무칩니다.

아버지, 아버지. 못난 아들이라 죄송합니다. 어디 털어놓지도 못하고, 어디서 마음놓고 울지도 못하는 이 아들을 용서하세요.


인터넷이라는 익명에 숨어서, 고민게시판이라는 그늘에 가려서라도 털어놓습니다.

세 글자로 불러봅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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